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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스크랩] 기도하지 않으면 죽는다 - 참된 기도에 능력이 있다.- EM바운즈

삭개오2 2016. 12. 16. 17:29
 
기도하지 않으면 죽는다

참된 기도에 능력이 있다.
하나님을 붙드는 기도로 영적능력을 취하라
남는 시간에 기도하지 말라

경건을 죽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것을 한꺼번에 죽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죽이는것이다.
경건의 심장을 찔러 경건을 더 확실하게 죽이는 수단은 단검이 아니라 
태만이다.
정해놓은 시간 즉 거룩한 시간을 경건에 할애하지 않는것은 
경건을 한꺼번에 죽이는것이다.
경건에 투자할 시간을 다른 일들 심지어 다른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것과
같은 일들에 투자하는 것은 경건을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죽이는것이다.
누군가 매우 바쁜 어느 가정주부에게 "기도할 시간을 어떻게 냅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매일 아침 나는 식구들 보다 1시간 일찍 일어나 아무런 방해도 받지않고 기도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은혜안에서 성장하는 비결이요 하루의 일과를 감당하는 데 필요한 
힘을 얻는 비결이다!
아무리 바쁘다 할지라도 하루의 멋진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과 거룩하고 뜨거운 
교제를 나누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다.
대제국 페르시아의 총리가 된 다니엘은 매우 바쁜 사람이었지만 하루 세번 시간을 내어
기도했다.
그에게 더 큰 유익을 준것은 그의 정치적 수완이 아니라 기도였다.
그리스도는 매우 바쁜분이셨다.
거룩한 일들을 행하시느라고 그분의 마음과 손은 늘 바빴고 시간과 쳬력은 항상 고갈되었다.
그렇지만 주님은 심지어 하나님의 일조차도 자신의 기도시간을 빼앗는것을 
허락지 않으셨다.
사람들을 죄와 고통에서 건지시기위한 주님의 일이 기도를 대신할 수는 없었다.
사람들을 죄와 고통에서 건지기 위해 노력했으므로 지극히 거룩한 기도의 의무를 
면제받을수 있다는 생각은 결코 주님의 생각이 아니었다.
예수님의 낮은 하나님을 위한일에 밤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에 바치셨다.
주님은 낮에 일하셨기 때문에 밤에 기도하지 않을수 없으셨다.
주님이 밤에 기도하셨기 때문에 그분의 낮의일이 거룩해지고 열매를 맺었다.
너무 바빠서 기도할 수 없다는 말은 그럴듯한 합리화로 들리지만 
이런식의 합리화는 결국 우리 영을 죽일 뿐이다.

기도의 기술이 능력의 비결이다

"능력의 사람들은 전부 기도의 사람들이었다"라는 코넬리우스 카일러 박사의 
말은 지당한 말이다.
이것을 뒤집어 표현하여 "영적능력과 영적결과가 빈약한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이다."라고 말해도 역시 지당하다.
물론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다른 능력들이 있을수 있겠지만 그들의 영적능력은
매우 약하다.
가장 바쁘게 일하는 그리스도인이 가장 많이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는 영적으로 가장 연약할 것이다.
신앙적 일이 늘어나는데 기도가 늘지않으면 그일의 영적힘은 자꾸 줄어든다.
루터는 "나는 할일이 너무많기 때문에 하루에 2시간 이상 기도하지 않으면 
그일들을 다 처리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위대한 업적을 이룬 사역자들의 성공비결은 그들의 기도에서 발견된다.
코넬리우그 카일러 박사는 "나는 스펄전이 기도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의 어떤 설교보다 그의 기도가 나를 더욱 놀라게 했다"라고 말했다.
기도의 기술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능력의 비결을 배우지 못한 것이다.
영적능력은 하나님에게서 직접 나오는데 기도는 하나님을 직접 붙드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오는 출구이자 그분의 능력이 우리에게 들어오는 입구이다.
하나님께서는 참된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에게서 자신의 뜻을 굽히신다.
내가 '참된 기도를 드린다'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겉보기에만 기도인 것들이 
너무많기 때문이다.
이런 잘못된 기도에는 참된 기도의 요소라고 할수있는 강력한 힘 열정 
소박함 그리고 인내가 없다.
은밀한 기도의 세계로 깊이 들어자지않는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며 
기쁨으로 충만한 빛을 발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그것은 정말로 이상한 일이다.
기도에 힘쓰는 사람은 성공할수밖에 없다.
기도에 실패하면 모든것에서 실패할 수 밖에 없다.

기도가 아닌 기도

기도가 아닌 기도가 많다.
사람들은 기도의 태도와 겉모습을 갖추지만 진정한 기도가 없다.
소원을 기도의 불에 담아 힘차게 하늘로 쏘아 보내는 기도가 없다는 말이다.
기도의 형식과 모양은 있지만 기도의 본질과 알맹이는 없다.
만일 기도를 통하여 진정한 유익을 얻었다면 기도라는 기계의 손잡이를 제대로
돌릴것이다.
기도가 아닌 기도는 왜곡된 기도이고 낭비된 기도이며 속이는 기도이다.
이런기도는 여기에서 끝나지않고 불신자들을 양산해낸다.
이런 기도는 응답받지못하고 은혜로운 열매를 맺지도 못한다.
기도가 아닌 기도는 단순히 몸으로만 행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이러한 기도의 공허함과 무익한 결과를 알게 된다.
다시말해서 기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유익들이 매우많고 하나님말씀에
약속된 기도응답의 결과가 지극히 귀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눈앞에 나타난 결과가 말씀에 약속된 결과와 너무 다르다는 사실을
즉시 알게 된다는 말이다.

기도의 본질이 실리지 않은기도

기도가 아닌 기도에는 참된 기도의 본질적 요소가 없다.
이런기도는 소원에서 출발하지 않았으며 열렬함과 믿음이 없다.
기도의 수레에 짐을 싣는것은 소원이고 
수레바퀴를 앞으로 힘차게 밀고나가는 것은 믿음이다.
기도가 아닌 기도에는 짐이 실려있지 않은데 왜냐하면 기도하는 사람이 
영적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도가 아닌 기도에는 열정이 없는데 
왜냐하면 믿음의 비젼과 힘과 뜨거움이 없기 때문이다.
기도하지 않고는 견딜수 없는 중압감이 없기 때문이다.
야곱과 같이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하지 아나하겠나이다"라고 
말할정도로 필사적으로 하나님을 붙들지 않가 때문이다.
필사적이고 집요하고 열정적인 간구의 고통속에서 
자신을 온전히 내던지지 않기 때문이다.
모세처럼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존녹스처럼 "네게 스코틀랜드를 주옵소서.그렇지 않으시면 제게 죽음을 주십시오"라고
부르짖지 않기 때문이다.
기도가 아닌 기도는 소원을 이루기위해 아무것도 투자하지 않는다.
투지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은 빈손으로 나아오는데 그들의 손은 빈손을 뿐만 아니라
게으른 손이다.
그들은 십자가를 붙드는 빈손의 교훈을 배운적이 없다.
그들이 생각할 때에 이 교훈은 아름다운 형제나 고운 모양이 없다.

입술로만 구하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다

기도가 아닌 기도속에는 마음이 없다.
마음이 없는 기도는 완전히 뒤집어 엎어서 속을 다 비운 그릇처럼 텅빈 기도이다.
우리의 기도속에는 마음과 영혼과 생명이 있어야 한다.
하늘은 우리의 부르짖음의 힘을 느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절박한 상황에 공감할수 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어려움앞에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만이 유일한 위로가 될때 
터져나오는 기도 바로 이런 기도를 드려냐 한다.
기도가 아닌 기도는 진실하지 못한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기도는 마음으로 원하지 않는 것을 입으로 구하기 때문이다.
종종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간절히 원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 것을 입술로만 구한다.
지금은 천국에 가 있는 경건한 설교자 제퍼슨 해밀턴 박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 소개하겠다.
언젠가 교회에서 그는 방금 기도를 끝낸 청중에게 불쑥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며 말했다.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기도했습니까?
만일 지금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확 붙잡고 흔들며 '네가 방금 무엇을 위해 기도했는지 
말하지 못하면 죽으리라'라고 말씀하신다 할지라도 여러분은 방금 여러분의 입술로부터 
사라져 버린 기도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말씀드리지 못할것입니다."
그렇다!
기도가 아닌 기도에는 기억도 없고 마음도 없다.
기도가 아닌 기도는 형식만 있는 것이요 이질적인 것들이 잔뜩모여있는 것이요 
김빠진 혼합물이요 모여서 소리만 지르는 잡동사니이다.
기도가 아닌 기도에는 마음도 없고 목적도 없다.
이것은 판에 박은 메마른 일이요 단조롭고 지루한 일이요 재미없는 중노동이다.
기도가 아닌 기도의 나쁜점은 단조롭고 지루한 중노동이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더 나쁜것은 이것이 기도가 삶에서 유리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기도를 드리는 사람은 입술로는 세상을 반대하지만 삶으로는 세상을 향한다.
이런 사람은 겸손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만 속으로는 교만을 키운다.
자기부인을 위해 기도하지만 육신적인 것들에 탐닉한다.
참된 기도는 이세상의 그 어떤것도 줄수없는 아름다운 열매들을 맺는다.
하지만 기도가 아닌 기도를 드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전혀 기도하지않는것이 더 낫다.
기도가 아닌 기도를 드리는 것은 죄를 짓는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나쁜죄는 무릎을 끓고 짓는 죄이다.

혼신의 힘을 다 버쳐 기도하라

마치 하나님과 씨름하듯이 기도해야 가장 효과적인 기도를 할 수 있다.
이런 기도가 최고의 기도이다.
이런 기도를 드리는 것은 믿음의 싸움을 싸워서 승리하는 것이다.
이승리는 원수에게서 얻는것이 아니고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신후 
믿음의 소원들을 확장시키기 원하시는 분에게서 얻는것이다.
그분은 큰 영적유익의 획득을 우리체험의 특별한 사건으로 만들어 주시는데
이 특별한 사건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새로운 영적시대로 나아가는 과도기에 진입하게 된다.
성경의 분명한 교훈에 따르면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세력은 우리가 
가장 강력한 최고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막으려고 전열을 공고히 한다.
이 악한 세력은 하나님께로부터 충만한 은혜를 얻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우리의 모든 연약한 
노력을 무참히 짓밟는다.
우리가 잘 알듯이 씨름하는 사람은 상대방을 붙잡고 싸우기 때문에 엄청난 체력을 소모한다.
성경은 최고의 기도를 드리기위해 소모되는 엄청난 영적 에너지를 표현하기위해 
'씨름'이라는 상징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 겸손해진 사람은 씨름하듯이 기도하게 된다.
불같이 타오르는 소원을 품은 사람은 기도의 씨름을 하게된다.
오직 하나님과 기도의 씨름을 하는 것만이 영적소원을 넘치도록 이루는 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계속 영적 에너지를 투자하여 끈질기게 기도의 씨름을 하게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기도

최고 형태의 영적노력이 최고의 영적유익을 낳는다는 진리를 보여주는 사례들이
성경에 무수히 나온다.
그것은 은혜인데 특히 보답하고 상을 주는 형태의 은혜이다.
은혜의 계획안에는 강렬하지 않은 소원 열의가 없는 노력 그리고 게으른 태도를 위한 자리가 없다.
기도하는 사람의 소원과 노력과 태도는 뜨거워야 하고 강렬해야 하고 깨어 있어야 한다.
불타는 소원과 열정적인 노력은 하늘을 기쁘게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녀들을 영원한 것들에 대한 열정으로 불타오르도록 만들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열의없는 마음을 좋아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소심하고 우유부단하고 미지근한것을 혐오하고 그런것에 분개하신다.
이사야 선지자는 스스로 분별하여 하나님을 붙잡는 자가 없다고 한탄하였다.
그시대 사람들은 많이 기도했지만 그들의 기도는 편하게 드리는 기도요 
열의없는 기도요 자기만족에 빠진 기도였다.
그들의 영혼은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지 않았다.
거룩한 에너지를 다 모아 하나님께 나아가 그분과 씨름하여 신령한 보화를 받아 
영적인 일들에 사용하려는 의지가 그들에게는 없었다.
힘없는 기도는 어려움을 극복할 힘이 없다.
힘없는 기도에는 주목할만한 결괴를 얻거나 온전하고 놀라운 승리를 얻을 힘이 없다.
선자자는 경건의 물결이 참된 기도의 불이 타오르는 미래를 소망의 눈으로 고대한다.
파수꾼들은 낮이나 밤이나 경계를 늦추지 않고 목소리를 낮추지를 않는다.
그들의 졸박하고 집요한 노력은 온갖 영적관심들을 지속적으로 일깨우고 
하나님의 무한한 보믈을 얻어서 사용하기 위한 노력이다.
하나님께서 "장래 일을 내게 물으라 내아들들의 일과 내손으로 한 일에 대하여 
내게 부탁하라"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심으로써 하나님은 그분자신을 우리의 손에 맡기신 것이며 
그분의 열쇠를 '모든 것들을 이기는 믿음'의 권세아래 두신것이다.
하나님의 이런 자비로은 태도는 
지칠즐 모르는 기도의 힘을 우리안에서 창조하고 성숙하게 한다.
그리고 이런 힘의 기초위에서 기도할때 우리는 변화를 일으키고 열매를 맺을수 있다.

지배하고 정복하는 기도

야곱은 지배하고 정복하는 기도의 힘을 보여주는 좋은 모범이다.
그의 모범은 모든시대의 사람들이 본받아야 할 것이다.
그에게서 우리는 약한것이 강해지고 절망이 오히려 능력으로 변하고 
참고 인내하는 것이 에너지가 되고 겸손한자가 높아지고 
복종이 승리의 비결이 된다는 것을 배울수가 있다.
야곱은 그의 온힘을 다 쏟아부어 밤새도록 기도의 씨름을 했기 때문에 
문제해결의 복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가 죽을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명을 받은 이사야 선지자는 히스기야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죽음에 대비하려 죽시 준비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히스기야는 살기원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을 바꿀수 있었는가?
믿음의 힘으로 바꿀수 있었다.
히스기야의 마음은 고민때문에  무너졌고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그러나 그의눈물은 간절한 기도로 승화되었다.
그는 몸부림치며 기도했고 그의 생각을 하나님앞에 쏟아놓았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눈믈을 보시고 자신의 뜻을 바꾸셨다.
히스기야는 살아서 하나님을 찬양했고 기도의 능력을 보여주는 모범이 되었다.

기도의 수고에 동참히라

점잔빼는 얄팍한 기도는 사도 바을에게 어울리지 않는 기도였다.
그는 씨름하듯이 간절히 기도했으며 그의형제들에게 기도의 고통스런 
싸움에 동참하라고 가르쳤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롬15:30)
그는 기도에 목숨을  걸었기 때문에 장갑을 낀 손으로 기도를 다루지않았다.
그는 기도하기 위해 고통스러운 수고애 동참하기를 원했다.
바울처럼 기도한 사람이 또 있었는데 그는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군인 에바브라였다.
에바브라는 골로새교인들을 위해 치열한 기도의 싸움을 싸웠다.
그는 골로새교인들이 하나님의 뜻안에서 온전하고 완전하게 살수 있도록 
늘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의 뜻안에서 온전하게 서기 위해서라면 마땅히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이다.
초대교회의 순수성과 능력의 비결중 하나는 바로 이런 초대교화 일군들의 간절한 기도였다.
기도가 열매를 맺으려면 생명력이 있어야 한다,
큰믿음과 큰필요성과 큰소원이 우리의 영혼안에 불어놓는 기도에 힘을 공급해주어야 한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5:16)
기도이 에너지는 의인의 이모든 힘으로부터 나오는데 잠자고 있는 영혼의 힘을 깨워서 
그것에 불을 붙이는것은 성령의 내적능력과 불이다.
이러한 의인의 힘을 온전히 발휘하여 큰역사를 이룬 모범을 남긴 사람이 엘리야이다.
스로보니게 여인의 기도는 끈질긴 기도의 씨름의 모범이다.
그녀에게서 볼수있듯이 기도의 씨름은 이스트미아나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에게서 
볼수있는 역동적인 힘과 인내심보다 더큰 힘과 안내심을 요하는일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기도에 의하여 지탱된 삶이었다.
그리스도에 대해 히브리서기자는 이렇게 중거한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5:7)
모든것이 급류처럼 강력한 그리스도의 기도에 굴복했다.
주님이 밤을 새워 기도할때 자연은 침묵가운데서 멈추어 서거나 아니면 앞으로 진행했다.
하늘의 거룩한 영광 하늘의 거주자들 천사들 그리고 사람들은 지칠줄 모르는
주님의 기도의 명령에 따라 움직을 준비를 하고 있었고 또 그렇게 하기를 갈망했다.
기도의 에너지와 열렬함에 대해 그리스도께서는 명령과 교훈을 통해 가르침을 베푸셨다.
주님은 우리의 기도가 당계적으로 강해져서 결국 절정에 이르러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구해야 한다.
하지만 거기서 머물지 말고 찾아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두드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면 더욱 힘써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침묵에 직면할지라도 소원의 강도를 떨어뜨리지 말고 오히려 자기부인을 통해
영혼의 잠자는 에너지를 깨우고 영혼에 열정의 불을 붙여야 한다.

아,우리의 영혼이 가난하다

우리의 기도가 진실하다 할지라도 열렬함이 부족하면 문제이다.
하늘을 기쁘게하여 지극히 풍성한 유익을 얻어내려면 열정과 지속적인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우리의 기도에는 그런 것이 없다.
우리는 영적으로 가난하다.
이것은 우리의 기도가 우리의 영적 가난함을 드러내고 증폭시키는데서도 쉽게 알 수 있다.
입으로 큰소리를 내어 기도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다른사람들이 자기 기도소리를 듣도록 하기위해 기도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고 하늘의 모든 힘이 나서서 돕도록 만드는 기도는 참으로 드물다.
점잖은 종교행위로서의 기도 직업적으로 하는 기도 습관적으로 하는 기도 이런 기도들이 많다.
우리의 기도는 영적 갈망때문에 몸부림치는 영혼에서 나오는 기도가 아니다.
강렬한 소원의 열정속에서 태어난 기도가 아니다.
대적하는 세력과 치열하게 싸우는 고통을 이기고 전진하는 기도가 아니다.
우리의 영적 갈망은 치열한 기도의 싸움을 능히 감당할수 있을만큼 강하지 못하다.
우리의 영적갈망이 우리를 강력하게 붙잡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하기위하여 
우리의 사업을 중단하지 못하고 세상것들을 계속 추구하며 새벽에 일찍 일어나 기도하지않고
기도의 골방에서 홀로 하나님을 만나지를 않는다.
그결과 우리는 우리대적을 이기지못하고 지옥의 문턱에서 사람들을 구해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기도의 힘을 사용하고 기도를 통해 하늘의 복을
얻어내고 기도의 극한까지 볼수 있는 사람들이다.
- EM바운즈의 
기도하지않으면 죽는다중에서

날마다"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하신 말씀과 
성경의 새언약의 모든복과 이모든말씀으로 모든분들을 예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이름으로 드립니다.사랑차도 드시고 사랑충만 하세요^^

예수이름으로

				
 
출처 : 이 시대를 향한 외침
글쓴이 : 삭개오2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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