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생명 얻는 회개보다 더 시급한 것은 없다!
생명 얻는 회개보다 더 시급한 것은 없다!
“나는 구원받았다”고 확신하는가?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있는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정직하게 ‘검증’을 받아라!
“너희는 돌이키고 돌이키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셨다면서 내 자아가 왕 노릇하는 자여
예수 십자가의 감격보다 세상의 돈과 명예,
즐거움을 더 사모하는 자여
회개했다고 공언하지만 생명 얻는 회개를 한 적이 없는 자여
교회만 다니면 다 구원받는 줄 아는 회개하지 않은 자여
아직 늦지 않았다, 하나님께로 돌이키라!
당신은 언제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했는가?
당신은 참된 회개를 체험한 날을 기억하고 있는가?
당신을 회개하게 한 설교를 기억하는가?
당신의 영혼이 변화되기 시작한 시점을 정확히 알고 있는가?
이에 선뜻 대답할 수 없다면
당신이 회개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진실한 회개로 당신의 영혼이 총체적으로 변화되었고
심령이 새로워졌다고 어찌 말할 수 있다는 말인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육신과 자아의 탐욕스러운 욕구로
자신을 통치하면서도,
단지 추잡하고 역겨운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도둑도 술주정뱅이도 사기꾼도 아니야!
난 교회도 나가고 기도도 한다고!
난 회개했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이런 것들을 회개로 인정하지 않으신다.
사람은 속여도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다!
당신의 마음을 잘 살펴라!!
당신이 회개했는지 그렇지 않은지
확실히 알 수 있을 때까지 면밀히 살펴라.
실제로 구원받지 못했으면서
구원의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실제로는 회개한 적이 없으면서
이미 회개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회개를 촉구하는 음성을 듣고도
자기와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진리의 길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과 영생에 대해 전혀 모른 채 천국으로 향하는 길에서
완전히 이탈해 세상과 육신을 따라 살면서도
단지 무던한 생활을 하며,
몹쓸 죄들을 피하기만 하면 자기들이 택한
그릇된 길을 끝까지 걸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고 기대하는
모든 사람이 진리의 길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을 지옥 입구에 확실히 안착시키기 위해
사탄이 가장 즐겨 쓰는 술책이 무엇인지 아는가?
당신의 눈을 가려 당신이 처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당신이 선택한 그릇된 길을 끝까지 걸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고 믿게 하는 것이다.
당신이 지금 천국으로 향하는 길에서 이탈했다는 것과
그런 식으로 계속 살다가는
영원한 형벌을 받으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 상태로 하룻밤이라도 편히 잠들 수 있겠는가?
당신이 하늘의 두려운 하나님도 가벼이 여기는데
과연 누구를 귀히 여길까?
구세주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과 보혈을 소홀히 여기는데
무엇을 중히 여길까?
하늘에 영광을 돌리지 않고 영원한 기쁨을
아무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는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나님과 인간의 수없는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옥에서도 농담이 나오고,
무저갱에서도 춤출 수 있고,
사르는 불속에서도 흥겹게 놀 수 있다고 말하는
당신의 영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믿으려고 한다면 이것도 믿어라.
모든 인간에게는 회개하느냐 아니면
멸망하느냐의 두 가지 길만 있을 뿐이다!
나는 인간들이 이 법의 진리나 정당성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들이 하나님의 법에 불평을 늘어놓는 것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아직 회개하지 않은 자여,
지옥을 직접 느끼는 것보다는
지옥에 대해 듣는 게 낫지 않겠는가?
당신이 자신의 영혼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제 하나님과 반목하기를 중단하라!
지금 즉시 회개하지 않으면
영원한 멸망을 모면하지 못할 것이다.
다른 길은 없다.
반드시 돌아서라!
그렇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
회개는 당신이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진정으로 자백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말미암은 용서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수님을 당신의 ‘주님’과
‘구세주’로 영접하고,
죄와 사귀던 심령을 철두철미하게 부수는 것이며,
죄의 본성을 지닌 인간으로서
죄와 맺었던 관계를 단절하는 것이다.
회개는 그리스도께 달려가 그분만을 피난처로 삼고,
그분을 영혼의 생명으로 감사히 영접하는 것이다.
땅을 향했던 마음을 하늘로 돌리고
결코 꺼지지 않는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전념하는 것이다.
육신의 정욕을 좇다가 남은 찌꺼기 시간과
차갑게 식은 열정만을 하나님께 드리는 자여,
육신의 자아를 부인하지 않으며
영혼의 튼튼한 결심을 하루 만에 허물어버리는 자여,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들을 그리스도께서 요구하실 때
드리기를 거부하는 자여,
그리스도를 위해 그것을 버리기보다 차라리
그분의 뜻을 거스르는 무모함을 선택하는 자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 귀를 기울여라.
“너희는 돌이키고 돌이키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전에 이 말씀을 들어보지 못했거나 읽어보지 못했다면,
지금 이 순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
귀를 기울여라.
회개하면 틀림없이 살겠지만
회개하지 않으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
아직 회개하지 않은 자여,
나는 지금 헐벗고 굶주린 거지가 되어
음식과 의복을 구걸하는 심정으로,
그렇게 간곡하고 애절하게
당신 영혼의 구원을 구걸하고 있다.
내가 거지가 되어 음식과 의복을 구걸하면
당연히 내 청을 들어줄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도 내 청을 들어주어라.
그럴 때 나를 불쌍히 여길 것이라면,
지금도 불쌍히 여겨 내 간곡한 청을 들어주어라.
무릎을 꿇고 간곡히 청하는 심정으로 간청하겠다.
당신의 구세주의 음성을 듣고 지금 즉시
돌이켜 회개하라! 그리하면 살 것이다!
당신은 언제 생명 얻는 회개를 했는가?
엔진 없는 자동차,
앙꼬 없는 찐빵,
불 꺼진 연탄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고 싶다.
그것은 회개 없는 기독교이다. ..!
예수님의 공생애 첫 번째 말씀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4:17) 였다.
오순절 베드로의 첫 번째 메시지 역시
“회개하라”(행 2:38)였다.
그러나 오늘의 기독교는 ‘회개’를 버렸다.
‘회개’를 버리니 ‘천국’도 버리게 되었다.
회개 없는 크리스천,
회개를 망각한 기독교는 천국도 망각하게 된다.
회개를 거부하자 천국도 가기 싫은 곳이 되었다.
유일하게 붙든 것이 자아에 대한 집착,
현실에 대한 탐욕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천국)를 주시기 전에
‘나의 나라’를 포기하기 원하셨다.
나의 자아가 왕이 되어 자신을 다스리는
그 일을 하나님 앞에서 포기하는 것이 ‘회개’이다.
그럴 때 하나님이 현재 나를 다스려주시고,
장차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나를 인도하실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기독교는
나의 자아에 아무런 변혁을 요구하지 않는다.
도리어 나의 자아에 아무 부담도 주지 않으면서
나를 잘되게 만들고,
나를 치유해준다는 사탕발림의 약속을 남발한다.
오늘날 경박한 기독교의 예수님상에는
속죄의 예수님이 증발해버렸다.
오직 현실적인 문제의 해결자 예수님,
축복의 예수님만이 범람하고 있다.
내게 부담스럽지 않은 긍정의 예수님,
내게 아부해주는 예수님만을 섬기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주 예수님의 기능이 무엇인지 모르는 소리이다.
예수님의 가장 주된 기능이 무엇인가?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마 1:21)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그리스도)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행 5:31)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그리스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행 13:38)
예수님은 죄를 용서해주시는 주님이시다.
그 예수님께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통해
죄 용서는 구하지 않고,
현실적인 출세와 무병장수만을 구하니
번지수가 한참 잘못된 것이다.
수술이 필요한 중환자가
영양제를 달라는 격이 아니고 무엇인가?
회개 없는 죄 사함은 없다!
오늘 우리는 ‘은혜’, ‘은혜’ 하면서
사실은 ‘값싼 은혜’를 선호한다.
회개 없이 용서만 얻으려 한다.
그러나 천국 시민의 조건은 회개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마 4:17)
회개한 자만이 죄 없이함을 받는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행 3:19)
회개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은 반드시 회개해야 한다.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행 17:30)
그러면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언제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했는가?
학습문답, 세례문답, 입교문답을 받을 때 했는가?
영접기도를 기계적으로 따라 하는 자리에서 회개했는가?
직분자로 임명받을 때 했는가?
매년 수련회에서 반복적으로 결단의 시간을 가진 것이 회개인가?
도대체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하기는 한 것인가?
하나님 앞에서 정직히 대답해보자.
당신은 회개했는가?
이것은 가장 본질적인 질문이다.
그런데도 평생 예수를 믿노라 하는 우리에게
이 질문을 들이대는 사람을 쉽게 만나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사람과 종교권력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한
17세기 청교도 설교자 리처드 백스터가 무덤을 깨고 일어나
나른한 심령의 한국 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목소리로 말한다.
“오늘 당신은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했는가?
회개하지 않은 당신 머리 위에 지옥불이 이글거린다!”
습관적으로 교회생활을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회개 없이는 구원도 없다고 준엄하게 경고한다.
회개를 피해 천국에 월장(越牆)하려는
모든 시도를 그치라고 냉정하게 충고한다.
당신은 참된 회개를 체험한 날을 기억하고 있는가?
당신을 회개하게 한 설교를 기억하는가?
당신의 영혼이 변화되기 시작한 시점을 정확히 알고 있는가?
이에 선뜻 대답할 수 없다면
당신이 회개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진실한 회개로 당신의 영혼이 총체적으로 변화되었고
심령이 새로워졌다고 어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육신과 자아의 탐욕스러운 욕구로
자신을 통치하면서도,
단지 추잡하고 역겨운 죄를 짓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도둑도 술주정뱅이도 사기꾼도 아니야!
난 교회도 나가고 기도도 한다고!
난 회개했어’라고 말한다니 말이다.”
강력한 회개의 촉구를 들어보라.
“당신은 지금까지 무지와 경솔함과
억측과 고집 속에서 살아왔다.
세상사의 염려에 압도되어 하나님과 영원한 영광을 무시했다.
육신의 탐욕과 지독한 이기심과
멋들어진 옷과 쓰레기 같은 자랑거리와
헛된 자존심의 노예로 살아왔다.
살아 생동하는 믿음으로 복되신 구세주를 영접하지 않고,
그분의 사랑을 전심으로 찬양하지도
감사하지도 않은 채 살아왔다.
하나님과 천국을 가장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며 살아온 것이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기보다 당신 육신을 정성껏 위하며,
하늘에 속한 것들보다 땅에 속한 것들에 마음을 두고 살아왔다.
이제 당신 자신을 돌아보라.
회개의 은혜를 받아들이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울부짖어라!”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죄인의 회개를 강력히 촉구하는
메시지를 들어보기가 참으로 희귀하다.
지금은 내 마음에 위로가 되는 말씀만을 들을 때가 아니라,
강력한 회개의 경고를 들어야 할 때이다.
위로 받으며 지옥으로 떨어질 것인가,
가슴 찢는 회개를 하여 하나님나라로 들어갈 것인가?
짝퉁 변화를 조심하라!
교회의 본질적인 사역은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을
회개시켜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만드는 것이다.
교회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외치는 것이 본질적인 사명이다.
교인들이 회개한 사람들이 되고,
그들을 통해 이 땅에 하나님나라가 증시(證示)되고,
장차 도래할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사모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명이다.
교회 안에 회개하지 않은 자들이 우글거리고,
하나님나라의 일이 아니라,
세상나라의 일을 세상적인 방법으로 도모하니까
교회가 세상의 지탄을 받는 것이다.
회개만이 그리스도인과 교회를 진정으로 변화시킨다.
회개를 피하고 세상 프로그램을 카피하여
변화를 도모하는 것은 ‘짝퉁 변화’이다.
진정으로 마음을 찢으며 회개하라.
생명 얻는 회개보다 더 시급한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