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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내가…… 즐거이 저희를 사랑하리니 -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 스펄전

삭개오2 2016. 11. 18. 00:09

10월 22일
 
“내가…… 즐거이 저희를 사랑하리니.”
[호세아 14:4]
 

이 말씀은 하나님의 성품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은 신학자요, 이 말씀의

충만함 속에 푹 잠길 수 있는 사람은 이스라엘의 진정한 선생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그 영광스러운 구원의 메시지를 간단히 압축시킨 것으로, “즐거이(freely)”라는 단어 속에

그 의미의 중심이 실려 있습


니다. “즐거이 사랑한다.” 이것이야말로 그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거나 값 주고 사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그 사랑을 갈망하며 찾는 것도 아닌 이 세상 죄인들에게 그 사랑을 자원해서 보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방식에 가장 어울리는 표현이라 하겠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우리 같은 사람들을 사랑하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하겠습니다. “내가 즐거이 저희를 사랑하리니.” 이 말씀 속에는 그 사랑을 받는 데

필요한 어떤 조건 같은 것이 전혀 들어 있지 않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에 합당한 어떤 조건이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필요했다면 이렇게 표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즐거이 사랑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 말씀은 “내가 저희를 즐거이 사랑하리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 저는 마음이 너무 강퍅해요”라고 불평하면 주님은 그래도 “나는 너를 즐거이 사랑한단다”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또 “그렇지만 저는 마땅히 소원해야 할 만큼 그렇게 주님의 필요성도 느끼고

있지 않은 걸요”라고 대꾸하면, 주님은 또 이렇게 대답하실 것입니다.


 “나는 네가 나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너를 사랑하는 게 아니란다. 다만 너를 즐거이 사랑할 뿐이란다.”

 “그렇지만 저는 제 영이 부드러워지는 걸 느낄 수 없는 걸요.” 그러나 우리의 영이 부드러워지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조건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데는 아무 조건이 필요없습니다.

은혜 언약은 조건부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그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전혀 없다 해도 하나님께서

 “그를 믿는 자는 정죄를 받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실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 만들어진

하나님의 약속으로 과감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우리에게 거저 주어진다는 것, 준비나 자격도 필요없고, 돈이나 값도 필요없이

항상 거저 주어진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내가 저희를 즐거이 사랑하리니.”

이 말씀은 패역한 자들, 즉 하나님을 멀리 떠난 자들에게 돌아오라고 초대하시는 말씀입니다.

정말 오늘의 본문 말씀은 특별히 그런 사람들을 위해 쓰여진 것입니다.

“내가 저희의 패역을 고치고 즐거이 저희를 사랑하리니.” 패역한 자여! 이 관대한 약속의 말씀을 듣고

즉시 가슴을 찢고 돌아와 상처 입은 하나님 아버지의 얼굴을 구하십시오.

10월 21일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고린도후서 5:14]
 

여러분은 주님께 얼마나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까? 주께서 여러분을 위해 무언가 해주신 적이 있습니까?

주께서 여러분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까? 여러분을 의의 옷으로 덧입혀 주셨습니까?

여러분의 발을 반석 위에 올려 주셨습니까? 여러분이 계속 걸어갈 수 있도록 잡아 세워 주셨습니까?


여러분을 위해 천국을 예비해 주셨습니까? 천국에 들어가 살 수 있도록 여러분을 준비시켜 주셨습니까?

여러분 이름을 그의 생명책에 기록하셨습니까? 여러분에게 셀 수 없이 많은 축복을 주셨습니까?

여러분을 위해 귀로 듣거나 눈으로 본 적이 없을 만큼 그렇게 많은 긍휼을 베푸셨습니까?


그렇다면 그 크신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예수님을 위해 무언가 하십시오. 죽어가는 구주께 말로만

제물을 드리지 마십시오. 주께서 다시 오시면 뭐라고 고백하실 겁니까?

주님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주께 받은 사랑을 그의 가난한 백성들이나 그의 일을 위해

흘려 보내지 않고 고여 있는 물처럼 혼자서만 간직했다고 고백하실 겁니까?

그 고백을 할 때 여러분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큰 사랑을 받고도 그 사랑을 나타내지 않으십니까!


생전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 그 사랑을 보고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사람들은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낫다”(잠 27:5)고 말합니다.

자기 부인이나 관대함, 영웅적 행위, 열심 등등 이런 행위를 하나도 만들어 내지 못하는 그런 약한 사랑을 보고

누가 사랑이라 하겠습니까! 주님이 여러분을 어떻게 사랑하셨으며 여러분을 위해 자신을 어떻게 내어 주셨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사랑의 능력을 아십니까? 그렇다면 그사랑이 여러분 영혼에 강한 돌풍처럼

불어 그 안에 있는 세속적인 구름들을 모두 쓸어버리고 죄의 짙은 안개를 다 걷어 가게 하십시오.


“그리스도를 위하여”, 이 목적이 불의 혀처럼 여러분 안에서 활활 타오르게 하십시오.

 “그리스도를 위하여” 오직 이 한 가지 목적에 사로잡혀 늘 기뻐하고 감격하며 사자처럼 담대하고

독수리처럼 신속하게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십시오. 사랑은 주님을 섬기는 데 빠르며 주님을 위해 열심히 수고합니다.

 그러니 요동치 않고 끊임없이 하나님만 바라보며, 하나님만 영화롭게 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가지고,

지칠 줄 모르는 열심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래서 예수님께 사랑의 강권함을 나타내 보이십시오.
주님, 주의 강권하시는 그 사랑으로 인해 우리도 주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10월 20일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에베소서 4:14]
 

영적으로 발육이 정지된 채 난장이로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해마다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성장하거나 새로워졌다는 느낌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비록 존재하긴 하지만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지는 않습니다. “이삭”으로 피어 마침내 “완전한 곡식”으로

익어야 할 때 겨우 “파릇파릇한 잎사귀”로 남아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주님 안에 있는 그 충만함을 체험적으로 좀더 알아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은 채 그리스도를 믿으니

 “나는 안전하다”고 말하는 것에 만족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면 안 됩니다.

천국 시장의 선한 상인들인 우리는 예수님을 아는 지식에서 좀더 자라가려는 욕심을 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포도원을 지켜 주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우리 자신의 영적인 성장과 성숙을 등한시하면 안 됩니다.

우리 마음은 왜 항상 겨울처럼 냉랭할까요?


우리에게도 씨 뿌리는 계절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봄철도 있어야겠지만 또 이른 추수를

보장해 줄 여름철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은혜 안에서 익기 원한다면 예수님 가까이 살아야 합니다.

그의 임재 안에서 그의 미소의 햇빛을 받으며 익어야 합니다. 주님과 늘 달콤한 교제를 나눠야 합니다.


주님 얼굴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사도 요한처럼 가까이 가서 그 가슴에 우리 머리를 기대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거룩함, 사랑, 믿음, 소망 등 이 모든 귀한 은사가 자라게 될 것입니다.

 산꼭대기를 아름답게 물들이는 일출 광경은 관광객이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광경 중 하나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의 머리에 작열하듯 비치는 성령의 빛을 바라보는 것 역시 이 세상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즐거운 광경 중 하나라 하겠습니다.


그런 성도는 사울처럼 그의 동료들 위에 영적인 거인으로 우뚝 서서, 마치 눈덮인 알프스 산봉우리처럼

택함받은 자들 가운데서 처음으로 의의 태양빛을 반사하며 모든 이들이 볼 수 있도록 그의 빛나는 광채를

드러냅니다. 이것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합니다.


출처 : 밀알나그네선교회
글쓴이 : 아가페사랑(이영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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