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요한복음과 관련된 몇 가지 용어(用語)의 정의(定義)
[출처] 네이버 정봉화님의 블로그
믿음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고 믿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1) 하나님의 실존을 내 영이 알고,
2) 그 하나님과 영적 교류를 통하여 하나님과 친밀해 지는 것.
3) 그 친밀 관계를 더욱 깊어지게 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것.
이 노력을 통해서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을 알다 = 하나님의 영과 내 영이 하나를 이루다. 그것을 통해 내 영이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
하나님을 아는 것이 곧 영생을 얻는 것.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17;3)
영의 동일성
하나님의 영과 내 영은 같은 영.
악령들의 영도 하나님의 영과 같은 영.
이 우주에 있는 모든 영들은 다 같은 영, 동질의 영. 창조주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영들.
하나님은 모든 영의 아버지.
이 지구상에 많은 물(水)이 존재하지만,
그 물이 어디에 있던, 어떤 상태에 있던 물은 같은 물이다.
마찬가지로,
영계에 존재하는 모든 영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영으로,
모든 영은 동일한 영, 동질의 영이다.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받은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분신.
신앙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분신인 우리의 영이 그 본체이신 하나님을 알고 그에게로 가려고 애쓰는 것, 이것이 신앙이다.
영이신 하나님과 성령, 천사와 악령과 인간의 영
악령과 천사와 인간들 피조물은 모두 그 영을 담는 그릇이 있다.
믿는 우리들 = 육신이 하나님의 영을 담는 그릇.
천사들 = 사람들 육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영체가 하나님의 영을 담는 그릇
사탄, 악령들 = 이들도 그들의 영체 안에 하나님의 영을 담아지고 있다.
천사나 악령이나 같은 하나님의 영을 가지고 있는 같은 존재다.
하나님의 영이나 인간의 영이나 친사의 영이나 사단, 마귀의 영이 모두 하나님과 같은 영이라면, 어째서 그들의 영은 악한 영인가?
그들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뜻을 거역하는 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고 하나님의 영을 나누어 받았으면서도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영은 다 악한 영이요, 멸망할 영이다.
하나님이 천사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실 때,
천사에게는 영체를 주시고, 인간에게는 육체를 주시고, 당신의 영을 그들 몸에 조금씩 담아 주셨다.
하나님의 영이나 천사의 영이나 인간의 영이나 다 같은 영이며, 질적으로 동일하다. 다만 양에 차이가 있다.
하나님은 측량할 수 없을 만큼 큰 영이시고, 그 다음의 천사들이고, 인간은 아주 작은 분량의 영을 부여 받았다.
찬사들은 그들이 창조될 때에 부여받은 양 만큼의 영을 영원히 지니고 있게 된다.
반면, 인간은 천사보다 적은 양의 영을 부여 받았지만, 인간이 몸을 입고 이 땅에서 살아 있는 동안, 성령을 받고 믿음을 통해, 그 영을 자라게 하여, 다시 말해 각자의 믿음의 분량과 깊이에 따라 영을 자라게 하여 천사보다도 더 큰 영으로 키워 나갈 수 있다.
= 인간에게 내려주신 각별한 은혜.
하나님 앞에서의 선과 악(절대적 선과 악)
하나님 앞에서의 선이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것.
우리는 이 선을 통해 생명(영생)을 얻는다.
하나님은 생명이시다.
우리의 모든 행위 가운데서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해 주는 것은 선.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생명이신 하나님을 믿는 것. 따라서 하나님 한 분만이 선하신 분.
반면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지 못하는 모든 것은 다 악이다.
하나님 앞에서의 악이란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그것이다.
이것이 절대 악이다. 인간은 이 악으로 인하여 멸망당한다.
우리를 멸망으로 빠지게 하는 모든 것은 악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이 세상의 어떤 선행으로는 인간은 구원받지 못한다. 생명이신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그 영은 계속 죽은 상태로 있게 되고 그의 육신은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 그의 영은 영원한 멸망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불신앙이 인간을 영원한 멸망으로 떨어지게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악이다.
세상적인 선과 세상적인 악(사람 앞에서의 선과 악)
사람 앞에서의 선 =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는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는 것은 다 세상적인 선.
사람 앞에서의 악 = 세상 사람들로부터 악인으로 비난을 받으며 때로 세상이 주는 형벌을 받는다.
그러나 이런 세상적인 선으로 구원받지 못하며, 또 이 세상적인 악으로 지옥 형벌을 받지 않는다.
세상에서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하나님을 안 믿으면 그는 하나님 앞에서는 악인이다.
세상에서 아무리 악하게 살았어도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앞으로 나와 생명을 얻으면 그는 구원을 받는다.
세 가지 차원의 세계
1) 땅 차원
인간이 에덴에서 범죄하고 쫓겨나서 살게 된 이 세상.
육신이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그 육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세상.
육신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한다.
땅 차원의 세상에서는 선을 행한 자는 땅에서 칭찬을 받고 악을 행한 자는 땅에서 벌을 받는다. 모든 가치기준은 물질이며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육신의 목숨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며 교회에 다녀도, 영을 모르고,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지식으로만 아는 사람들은 여기에 속한다.
이 땅 차원의 신앙으로는 아무리 열심히 교회에 다녀도 하나님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2) 영적 차원
땅에 살면서 하나님을 올려다본다.
잠들었던 영이 눈을 뜨고, 하나님을 체험하고 삶의 소망을 하늘에 둔다.
3) 영 차원
영이 성장하여 영안이 열리고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며 계속 영이 성장한다. 모든 가치 기준을 오로지 하나님 뜻에 둔다. 땅 차원의 가치 기준을 초월한다.
땅 차원의 신앙에서는 육신과 육신이 싸운다.
가령...자원봉사에 나갈까 말까...하고 내 마음이 갈등을 한다.
영적 차원에서는 내 영과 내 육신이 싸운다.
내 영의 소망과 내 육신이 욕망이 서로 제가 이기려고 내 안에서 싸운다.
영 차원에서는 내 영이 사단이 싸운다.
이 영 차원에서는 마귀가 와서 나를 시험한다. 내 육신의 편안이나 유익을 위해 내 영을 희생하도록 끊임없이 나를 찾아와서 유혹을 한다.
땅 차원의 신앙......땅에 서서 땅을 바라본다.
육신의 지식이나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또 교회를 바라보고 판단을 한다. 내 집에 서서 교회 건물을 바라본다.
하나님이 아닌 땅의 가치기준으로 교회를 바라보고 하나님을 바라본다.
영적 차원의 신앙...땅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그곳을 그리며 예수님 닮고자 노력을 한다.
영 차원의 신앙......세상이 보이지 않는다. 때때로 세상 한 가운데에 혼자 버려진 것을 느낀다. 이 이상의 설명을 할 수가 없네요.
신앙과 종교
종교란 = 나와 내 눈에 보이는 지상 교회와의 관계. 교회와 내 육신의 삶과의 관계이다.
교회에 등록을 하고, 헌금을 드리고, 모임에 참석하고, 직분을 맡고...이런 것들.
신앙이란 = 나와 영적 교회와의 관계. 또 내 육신과 내 영과의 관계이다.
종교란 무엇인가 = 눈에 보이는 건물인 교회와 조직과 교리를 가지며 사회적 존재 가치를 가져야 한다.그 교회가 무엇인가 시회에 공헌을 해야 한다. 사회적 존립 가치조차 지니지 못한 교회는 교회가 아니라 사회집단일 뿐이다.
신앙이란 무엇인가 = 오로지 눈에 보이지 않는 개인적 영적 활동이다.
예수님이 머리이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교회와의 관계이다.
영이 눈뜨지 못한 사람 곧 영이 죽어 있는(잠자고 있는)사람은 종교생활은 할 수 있으나, 신앙생활은 하지 못 한다.
종교는 신앙의 울타리
종교는 각 사람의 신앙을 위해 존재한다.
눈에 보이는 지상 교회가 존재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의 교회를 위해서다. 사람들은 영의 교회로 인도하는 것이 종교(지상 교회)이다.
신앙이 없는 종교(영적 활동이 없는 교회)는 하나님과는 관계없는 사회 집단일 뿐이다.
신앙은 종교라는 바탕(혹은 기초) 위에 세워지고 존재한다.
종교를 떠난 신앙은 변질되거나, 우상 숭배나 사교로 흐른다.
종교는 타 종교와의 타협, 교류, 상호존중, 공존... 등을 할 수 있다.
신앙은 타 신앙과는 절대 타협하거나 협력하거나 할 수 없다.
그 믿는 신이 다르기 때문이다.
영과 육신
우리의 육신은 우리의 영을 위해 존재한다.
육신은 우리의 영을 담는 그릇일 뿐이다. 그러나 육신이 없으면 지상에서는 영만 홀로 존재하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에덴에서 아담을 창조하셨을 때에 흙으로 몸 곧 그릇을 만드시고 그 그릇 안에 영을 담아 주셨다.
그러므로 영이 귀한 만큼 육신도 깨끗하게 건강하게 유지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게는
인간을 향하신 “뜻”이 있으시고,
그 “뜻”을 실행하시기 위한 “능력”이 있으시며,
그 “뜻”을 반드시 실행하신다. 이것이 살아계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란“하나님의 인간을 향하신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옷을 입고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은 인간을 향해 “인간을 향하신 당신의 뜻”을 계시하신다.
따라서 인간들에게 있어 하나님이란 곧 그 분의 인간을 향하신 “뜻”이다.
하나님의 뜻 = 인간을 창조하시고 생명을 주시고 천국 백성으로 만드실 계획. 인간 구원을 위한 설계도.
이 설계도는 이미 하늘에서 완성되었고, 그것이 하늘에서 완성된 순간 하늘에서 그대로 이루어졌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아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모든 것이 이미 하늘에서는 다 이루어졌다. 인간은 시간상의 존재하기 때문에 지금 땅에서는 하늘에서 이미 이루어진 인간 구원의 역사가 순서를 따라 그대로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그 뜻을 인간을 향해 알게 하신다. 곧 인간들을 향해 하나님의 인간 구원의 설계도를 알게 하신다. 곧 계시하신다.
이것을 우리는“말씀”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이미 하늘에서 이루신 당신의 뜻을 인간들을 향해 계시하신다.
구약 시대에는 선지자들을 통해, 혹은 역사적 사건 등을 통해 계시.
그러나 이런 계시는 다 간접적인 계시였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뜻”을 인간들에게 아주 바르고 전하시기 위해, 말씀 그 자체를 인간들에게 보내주셨다.
곧 하나님의“뜻”을 인간들이 직접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알 수 있게 “말씀”을 사람의 모습이 되게 하여 이 땅에 내려 보내셨다.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다.
예수님의 육신 = 인간의 육신.
그 안에 있는 영은 하나님의 영.
그 안에 있는 뜻은 하나님의 뜻.
예수님은 당신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인간의 언어)을 통해,
또 행하심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우리 인간들에게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듣게 하시고 보게 하셨다.
그리고 당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성경 말씀(Bible)은 무엇인가?
성경이란 하나님의 뜻을 인간의 언어로 고형화(固形化)(문자로)한 것이다.
성경 말씀이란 하나님의 “뜻”(말씀)이 인간의 언어로 표현된 것이다.
곧 뜻은 있으나 형체가 없는 “말씀”을 인간의 언어라는 눈에 보이는, 형체가 있는 문자로 바꾸어 놓은 것이 성경 말씀이다.
성경책에 기록된 인간의 언어 그 자체가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말씀)을 인간의 언어로 표현한 것이 “성경 말씀”
말씀은 하나님의 뜻 그 자체요,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인간의 언어 표현한 것이다.
인간의 언어는 인간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하기 위한 도구이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생각을 하고 표현을 한다.
때문에 인간의 언어는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표현하기에는 불충분하다.
하나님의 뜻을 인간의 언어로 바꾸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그 뜻의 어느 부분이 다르게 표현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하여 하나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은 원문 아닌 자국어로 번역된 성경을 읽는다.
문화가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시대가 다르고 생활습관이나 환경이 다른 사람들의 언어로 성경이 번역될 때에 그 과정에서 또다시 그 원래의 뜻이 훼손되거나 변할 가능성이 많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읽는 사람의 믿음의 차이, 영적 능력의 차이, 문화의 차이, 지식의 차이, 언어해석 능력의 차이....등 성경 말씀을 받아들이는데 또 차이가 생긴다.
믿는 많은 사람은 가령, 홍해가 갈라졌다는 말씀을 역사적 사실로 믿는다. 그냥 믿는다.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으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면 안 되니까 그냥 믿어버리고 만다.
그러나 이것은 실은 믿음이 아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그럴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수용”이며“긍정”인 것이다.
성경 말씀은 먹어야 하는 것이다.
성경 말씀은 읽고 믿는 것이 아니라 먹어야 하는 것이다.
성경 말씀을 참으로 믿기 위해서는 말씀을 먹어야 한다.
성경 말씀을 어떻게 먹는가?
말씀을 먹는다는 말의 뜻은 예수님의 몸(살)을 먹는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몸(살)을 먹는다는 뜻은 예수님의 참 몸이신 그분의 영을 먹는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영 = 말씀. 말씀 = 하나님.
예수님의 영은 하나님의 영이요, 하나님은 “뜻”이요,
뜻은 말씀이요, 말씀은 예수님이시다.
따라서 말씀을 먹는다는 뜻은 예수님을 먹는다는 뜻이며, 예수님을 먹는다는 뜻은 하나님의 영을 먹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을 먹는다는 뜻은 하나님의 생명을 내 안에 받아들여 내가 생명을 얻는다는 뜻이다.
어떻게 먹는가?
성경 말씀을 들을 때, 읽을 때, 혹은 배울 때, 묵상할 때,
내 안에 있는 나의 영이 말씀이신 예수님의 영을 받아먹는다.
하나님의 영, 예수님의 영, 성령, 내 영, 모두가 동일한 영이다.
내 안에 있는 영은 작은 영이요, 미약한 영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읽을 때, 묵상할 때,
성령께서 내 안에 임하시고,
내 영을 흔들어 깨우시고,
인간의 언어로 기록된 성경 말씀을 예수님의 영으로 변하게 하시고,
내 영이 그 예수님의 영을 받아먹게 하신다.
받아먹다 = 예수님의 영이 내 안으로 들어와 내 영과 하나가 된다.
내 영이 예수님 영을 먹어 내 영이 성장하고,
그 결과 하나님을 더 가까이 알게 되고,
그것을 통해 내 영이 더욱 자라며, 더욱 커지며, 더 높은 차원의 영으로 성장해 나가는 것. 이것이 말씀을 먹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인간의 문자로 형상화된 성경 말씀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다시 하나님의 영으로 환원된다.
그러면 내 영이 그 환원된 영을 받아먹게 된다.
성경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며,
따라서 성령의 감동이 있어야 그 말씀을 먹을 수 있다.
누구도 성령의 역사 없이 말씀을 깨달을 수 없으며,
믿을 수 없으며,
먹을 수 없다.
누구도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면 성경을 수백 번 읽었다 해도,
문자적 해석 밖에는 하지 못한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먹고,
그래서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와 계시는 것이다.
태초에 말씀이 게셨다. 태초에 하나님의 “뜻”이 계셨다.
하나님의 “뜻”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땅에 오신다.
예수님의 육신 속에 하나님이 계시다.
영적 소경인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육신 밖에는 보지 못 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신성 모독죄로 십자가에 달아 죽였다.
예수님의 육신 =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입히신 옷.
예수님의 육신이 죽으시고 성경 말씀으로 변하다.
예수님 안에 게시던 하나님의 “뜻”은 지금 성경 말씀 속에 숨어 계시다.
우리가 성경을 배울 때, 읽을 때, 묵상 할 때,
성경말씀 속에 감추어져 있던 예수님의 영이 활동을 하시고 우리로 그 영을 먹게 하신다.
요한복음은 영적 복음으로 모든 성경 위에 있다.
우리가 요한복음을 배우는 것은,
이 복음서를 통해 2000년 전의 예수님을 만나고,
2000년 전에 땅에 계셨던 그 분이 지금 살아계시는 예수님으로 변하여, 내 앞에 오시고,
내 앞에 오신 영이신 그 분을 내 영이 먹고, 내 영이 자라, 더욱 그 분 가까이 가서, 그분을 따라 아버지 앞에 가기 위한 것이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요한복음을 배우는 것이다.
요한복음 14장 6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나 =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길 = 하나님 앞으로 우리를 이끄는 이정표. 방법.
말씀은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 앞으로 이끌어가는 길 안내이며, 가는 방법이다.
진리 = 그 말씀을 따르기만 하면 틀림없이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가게 되는 참 길.
생명 = 하나님은 생명이시다.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이요 생명이시다.
말씀을 머리로만 배우면 예수님은 여전히 2000년 전에 오셨던 목수의 아들로 그대지만,
그분을 내가 먹으면 예수님이 하나님이 되어 내 안에 들어오신다.
2000년 전에 인간으로 오셨던 그 분이 지금 하나님이 되어 내 안에 들어오신다. 내 영이 예수님의 영과 하나가 된다.
하나님의 영, 예수님의 영 = 생명
내 안에 생명이 있다.
내 안에 생명이 있다 = 나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 세상에 신들도 많고 종교도 많지만,
예수님만이 우리를 창조주 하나님에게로 이끌고 생명을 주시는 유일한 분이시다.
요한복음은 이 생명의 원리를 하나님의 입장에서 우리에게 설명하신다.
요한 사도, 주님이 사랑하시는 제자였던 요한 사도는 주님 바로 가까이에서 주님을 모셨다. 그래서 주님을 그 어느 제자보다도 더 잘, 더 많이, 더 자세히 아셨을 것이다.
요한복음을 천천히 읽어나가면,
예수님께서 지금 내 앞에 오셔서 말씀을 하고 게시는 것처럼 느껴진다.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이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