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스크랩] CEO에서 외판원까지 신섭 장로 “예수 믿는 재미로 삽니다”

삭개오2 2016. 6. 29. 22:45

CEO에서 외판원까지 신섭 장로 “예수 믿는 재미로 삽니다”

 

 

신섭 장로(72. 보정교회)는 180센티미터 큰 체구에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가진 장로 청년이다. 마흔 두 살 늦은 나이에 예수를 영접한 그는 늦은 회심이 아쉬워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기도하고 늦은 밤까지 간증집회와 사역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신섭 장로는 여전히 패기와 열정에 넘치는 72세 청춘이다.©뉴스미션


예수를 영접한 지 30년. 신섭 장로에게는 지난 세월이 모두 은혜요, 간증이다. 평생 기업가로 살아 온 그는 탁월한 사업 감각으로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며 사업이 어려운 이들을 돕고 있다. 그리고 신앙 간증으로 수많은 사람을 신앙적으로 재정적으로 세우고 있다.

최고 경영자에서 브리태니카 사전 외판원까지, 인생의 굴곡을 겪으며 만난 하나님의 경륜과 지혜를 세계 곳곳에 전하는 신섭 장로를 만났다.

절망의 나락에서 만난 예수님

신 장로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풍족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대학 3학년 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종로 5가에서 자전거 약 배달로 시작해 그 자신이 30대에 20여 개 회사를 거느린 최고 경영자가 됐다.

하지만 인생 최고의 정점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정치자금 연루로 모든 사업이 물거품처럼 사라진 것. 그의 나이 마흔 두 살 때였다. 흑자 도산의 억울함 때문에 자살 시도를 두 번이나 했다.

승승장구 하던 시절 싸이클연맹 회장까지 지내며 부와 명예를 과시했었지만, 모든 것이 사라지자 아무도 그를 찾지 않았다. 그 때 예수님을 만났다.

“그 전에는 예수를 믿으라는 얘기를 들어도 ‘난 내 주먹을 믿는다’고 말해 왔어요. 처음엔 기도원에 갈 생각도 안 했는데 가족들이 봉고에 태워서 보내더라구요. 여기 저기 기도원을 다니다가 어느 기도원에선가 ‘얻어 먹을 수만 있어도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구절을 봤어요. 전 다 가졌다가 잃었다는 생각 때문에 억울했는데, 두 다리가 있고 팔이 있더라구요. 그때 ‘아, 내가 나쁜 놈이었구나’ 깨닫게 됐죠. 그 후에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하게 됐어요.”

회장에서 외판원으로…다시 시작

   
신섭 장로의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에는 하나님이 깊은 개입이 있었다.©뉴스미션

그는 기도원에서 3년 반 동안 병들고 소외된 자들을 수발하면서 예수 믿는 자로서의 섬김과 봉사의 삶을 직접 체험했다. 그리고 다시 재기하겠다는 결심을 품고 세상으로 나왔다. 그리고 선택한 직업이 브리태니커 사전 외판원이다.

외판원이 된 지 한 달 만에 지하 단칸방을 얻을 만한 돈이 마련됐다. 흩어진 가족들이 모두 한 방에 모였다. 세 자녀와 부부가 모로 누워야 겨우 누울 수 있는 공간이었지만,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했다.

“눈물의 웃음꽃이 피었죠. 아이들이 3년 넘게 부모와 떨어져 각자 다른 집에서 살았으니 얼마나 할 말이 많았겠어요. 발을 서로 엇갈려야 잘 수 있었지만, 그 때 서로가 함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지 깨달았지요.”

“천국에 집이 있으니, 이 땅의 집에 미련이 없어요”

기업 회장에서 외판원으로 낮아지고 낮아졌지만, 꿈은 낮아지지 않았다. 그는 세계 최고의 브리태니커 사전 판매왕이 되겠다고 결심했고, 그 꿈을 이뤘다. 브리태니커 사전을 판매하는 54개국에서 가장 판매를 많이 하는 ‘세계서적판매왕’에 올랐다.

그 후 그의 특이한 이력은 방송에 소개되기 시작했고, 기업체에서 그를 스카웃하기 시작했다. 그는 두산 동아프라임(주) 서울사업본부 창설본부장을 시작해 한미약품, 일양약품 판매담당 사장, 엠브로약품 대표이사, 고려인삼제품 대표이사직을 역임하며 화려하게 재기했다.

드라마와 같은 그의 이야기는 지난 2006년 〈7전8기의 은혜〉(하늘기획)라는 책으로 출간됐다. 이 책은 광고도 없이 3주 만에 5쇄를 찍었고, 3년이 지난 지금도 10쇄를 출판해 스테디셀러로 자리잡고 있다.

이전의 부와 명성을 되찾았지만, 신섭 장로는 이전의 그가 아니었다.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는 평생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을 갖지 않기로 다짐했다. 여전히 회장 직함이 있는 기업가지만 두 부부가 19평 임대아파트에 산다.

“사업 실패 후 예수님을 만났을 때 첫 마음을 잃지 않았어요. 돈이라는 건 숫자처럼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라는 걸 알았죠. 천국에 맨션을 가지고 있는데 이 땅에서 99칸 집이 무슨 필요가 있어요. 청소만 힘들지요. 집 살 돈이 있으면 저는 성전이라도 하나 더 짓겠다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성전인데 성전 짓는 일을 해야지요.”

지난해 간암도 치유받아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사명을 감당해 온 신 장로. 그에게는 사명이 있는 한 죽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다.©뉴스미션

신 장로는 간증 사역 중에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하지만 때마다 하나님은 그를 살려주셨다.

지난 2009년에도 갑자기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간암 진단을 받았다. 당장 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로 심각했다. 하지만 수술 전날 잡혀 있는 노숙자 쉼터 교회인 광야교회(임명희 목사) 집회를 도저히 취소할 수 없어 병원 몰래 집회 장소로 나섰다.

오한이 들어 부들거리면서도 말씀을 전하던 도중 신 장로는 아픈 부위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집회가 끝날 무렵에는 몸 전체가 시원해지면서 하나님의 치료를 확신했다. 휠체어를 타고 올 정도로 병든 몸으로 왔지만, 죽음을 각오하고 말씀을 전하는 순간 치유를 경험한 것이다.

“사명이 있는 한 안 죽더라고요. 지금은 건강해요. 콜레스테롤 수치도 제로고, 비만도 없고. 당뇨도 없으니 무엇이든 먹어도 되고 자유롭지요. 근심 걱정이 없고 병이 없으니 감사하고요. 한두 시간 자도 피곤치 않으니 은혜지요.”

“젊은이들, 빨리 하나님 만나 쓰임 받는 인생 돼라”

신섭 장로는 국내 뿐 아니라 미국, 중국 등 집회로 하루하루가 바쁘다. 요즘에도 집회가 많은 날은 하루에 네 군데를 옮겨 다니며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간증 집회에 대한 광고는 전혀 하지 않지만 성도의 신앙생활과 가정생활의 실천적인 그의 간증은 이미 해외 교회에까지 소문이 났다. 이미 미국에서만 45일간 미국 전역을 순회하는 간증집회를 3번 치렀다. 최근에는 중국, 캐나다를 다니며 하나님의 역사를 전하고 있다.

그는 특히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있다. 젊고 힘 있고 능력 있을 때 하나님을 만나 쓰임 받는 인생이 되라는 것.

“전 세계를 다니면서 나처럼 늦게 믿지 말고, 어릴 때부터 성령 충만한 열정으로 세계적인 인물이 되라고 합니다. 예수님 믿고도 변질하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나의 자화상을 하나님의 자화상에서 찾고, 하나님으로부터 온 자존감을 가지면 큰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젊은이들이 거룩한 열망을 품고 살기를 바랍니다”

복음을 전하느라 여가를 즐길 시간도 없는 그에게 사람들이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묻기도 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분명한 답이 있다.

“제가 마흔 두 살에 예수를 믿었는데요, 인생의 절반은 그렇게 지나갔지만 남은 하프타임은 푯대를 향해 달리면서 살겠다고 결심했어요. 저는 예전에 즐기던 낚시, 사냥, 골프 다 안 해요. 그것들이 죄는 아니지만 지금 저는 달려가기 만도 바빠요. 인생 무슨 재미로 사냐고 하는데, 예수 믿는 재미로 살지요.”

출처 : 우자매샬롬하우스
글쓴이 : 시온의 영광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