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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개오2 2016. 6. 14. 09:03

 

불트만의 생애와 사상

(RUDOLF K. BULTMANN, 1884-1976)

 

 

 


루돌프 불트만은 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 중에도 원문으로 불과 50쪽 안팎인 ‘신약성서
와 신화론’은 그야말로 신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 속에서 주장된 ‘비신화화론’
을 두고 신학자 G. 보른캄은 “프로테스탄트 신학계와 세계 교회에서 달리 찾아볼 수 없
는 격렬함으로 논란되고 있는 문제”라고 하였다.


불트만은 신약학 부문에서 큰 업적을 남기고 있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고 신학의 다
른 분야에도 큰 업적을 남기고 있다. 그는 신약학자요 역사학자며 고대 문헌 학자인 동
시에 조직신학자요 실천신학자이기도 하였다. 때문에 그를 가리켜 가장 포괄적인 의미에
서의 신학자라고 일컫고 있다.


(가) 불트만의 생애
불트만은 북부 독일에서 목사의 아들로 출생하여 튀빙겐, 베를린, 마르부르크 등 여러
대학 신학부에서 K.뮐러, H.궁켈, A.하르나크, W.헤르만, A.율리허, J바이스 등 저명한
교수에게 배웠고 1910년에 논문 ‘바울의 설교문체 및 견유파와 스토아파의 디아트리
베’를 바이스 교수의 지도 아래 써서 학위를 받았고 1912년에는 율리허 교수의 지도 아
래 교수 자격논문 ‘모프스에스티아의 테오도로스의 석의’를 써서 신약 학자로 나섰
다. 신약교수가 된 불트만은 마르부르크대학을 출발점으로 하여 브레슬라우, 기센을 거
쳐 1921년 하이트뮐러의 후임으로 마르부르크에 돌아와 신약학 교수가 되어 51년에 은퇴
할 때 까지 그곳에서 강의하였다.


1921년에 ‘공관복음서 전승사’를 저술하여 K.L.슈미트, M.디벨리우스 등과 함께 성서
학의 양식사적 방법을 제창하였으며 1924년부터 변증법 신학 운동에 참가하였다. 그 입
장에서 1926년에 출판한 것이 ‘예수’이다. 그 무렵 ‘존재와 시간’을 발표한 철학자
M.하이데거와 친교를 가졌고 그의 실존 분석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찌 정권에 대립한 고백교회에 소속하여 일하였고 1941년 ‘신약성
서와 신화론’으로 비신화론을 제창하여 세계적인 파문을 불러 일으켰으며 같은 해에
‘요한복음’, 1948-53에 ‘신약성서와 신학’등 수준 높은 학적 업적을 발표하여 세계
신학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 외에도 주요 저서와 논문으로 ‘원시 기독교’(1949),
‘역사와 종말론’(1957), ‘그리스도와 신화’(1958), ‘신앙과 이해’ 전 3권(1933-
60) 등이 있다.


(나) 신학사상의 형성과 전개
마르부르크 대학의 신약 강사로 출발한 불트만은 엄밀하게 역사적 및 비평적 방법을 사
용하는 학풍을 강의와 연구의 기초로 삼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19세기 후반부터 일어
난 종교사학파의 흐름을 이어 신약성서를 유대교와 헬레니즘의 여러 종교 등 주변 세계
와의 관련에서 파악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러다가 1921년에 출판된 ‘공관복음서 전승
사’에서 양식사 방법을 제창하여 신약학자로서 독자적인 지위를 확립하였다.


그는 바르트의 ‘로마서’(특히 1922년 간행된 제2판)를 빌미로 하여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추진되
어 온 변증법 신학운동에 논문 ‘자유주의 신학과 최근의 신학운동’(1924)으로써 그 운
동에 참가할 뜻을 나타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히틀러에게 비위맞추는 독일
기독교인에게 반대하여 고백교회에 가담하여 독일 교회 투쟁에 참가해서 바르트와 같은
길을 걸었다. 그러나 불트만은 다음 두 가지 점에서 바르트와 다른 독자적인 길을 걸었
다.


첫째는 자유주의 신학을 비판하는 변증법 신학의 운동에 참가한 후에도 이미 연구의 기
초로 삼은 역사적 및 비평적인 태도를 버리지 않고 그것을 더욱 추진해 나아갔다. 그리
고 둘째로 ‘존재와 시간’(1927)의 하이데거의 의도를 적극적으로 평가하였다.


불트만이 1941년에 ‘신약성서와 신화론’에서 제창한 신약성서 비신화론에서는 위에 말
한 두가지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신약학자로서 출발한 불트만이 가장 포괄적
인 의미에서 신학자로 도달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특정한 시대와 환경에 한정
되었던 이를테면 지난날의 문서로서의 신약성서가 이 장소와 이 때에 살고 있는 사람들
에 대하여 현대를 향한 메시지로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밝히려 하였다.


(다) 양식사 방법의 제창
신약학자로서의 불트만이 이름을 확고하게 한 것은 ‘공관복음서 전승사’에서 주장한
양식사적 방법의 제창이었다. 그것은 궁켈이 구약성서의 연구에 적용한 유형사적 연구
를 신약성서 중 특히 공관복음에 적용한 것이었다. 그 방법은 이미 1919년에 슈미트와
디벨리우스 등에 의해 제창한 바 있으나 1921년에 출판된 불트만의 이 저서는 그것들과
는 관계가 없는 것이었다. 불트만은 그것을 브레슬라우 시대에 정리된 것으로서 연역적
이거나 구성적이기보다는 보다 분석적인 특색이 강하다.


불트만은 문화의 양식에 따라서 다음과 같이 나누었다. 아포르테그마(=짧은 이야기의 틀
에 수록된 예수의 말씀으로서 논쟁적 대화, 교육적 대화, 전기적 아포프테그마로 나누었
다), 독립된 전승으로 되어 있는 주의 말씀(=지혜의 격언, 예언적 및 묵시적 말씀, 율법
의 말씀과 교회 규칙, ‘나’의 말씀, 비유 및 그와 비슷한 표현), 이야기(기적이야기;
치유 기적과 자연기적, 역사이야기와 성자의 전기)등으로 분류하여 공관복음을 고찰하
여 각 양식을 형성한 배후에 원시 기독교단의 삶의 자리를 밝히려 하고 있다.


종교사학파의 흐름을 이은 불트만은 팔레스틴에서 성립된 원시 교단과 헬레니즘 세계에
서 성립된 원시 교단의 차이점을 받아들이고 그에 즈음하여 원시 교단의 창조적인 영향
력이 예수에 관한 전승의 형성 및 확장에 큰 역할을 수행한 사실에 주목하였다. 특히 마
가복음에 의해 창조된 ‘복음서’라는 문화 양식이 헬레니즘 세계에 성립된 원시 교단
의 선교와 예배에 뿌리를 두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불트만의 이와 같은 주장은 공관복
음을 소재로 하여 예수의 생애를 역사적으로 다시 구성하는 것이 단순하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였던 19세기 예수의 전기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동시에 각종 문학적인 양식을 낳
게 된 원시 교단의 생활을 탐색하여 복음서가 예수의 전기가 아니라 원시 교단의 신앙
의 증언 내지 선언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케리그마 신학의 막이 열렸음을 알리는 것이었
다.


(라) 신약성서 비신화론
양식사 방법이라고 하는 불트만의 신약학자로서의 독특한 주장이 제1차 세계대전 중에
형성된 것과 같이 비신화론이라고 하는 그의 가장 포괄적인 의미에서의 신학적인 주장
이 발표된 것은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 진행되던 때였다.


변증법 신학 운동에의 참가와 또한 하이데거와의 친교 등에 의하여 이미 좁은 뜻의 신약
학자의 틀 안에서 벗어난 불트만의 보다 포괄적인 신학 주장은 1933년 이래로 논문집
‘신앙과 이해’(제1권은 하이데거에게 헌정되었다. 전4권)로서 출판되어 왔었으나 그것
이 가장 단적으로 제시된 것은 그의 ‘신약성서와 신화론’의 출판에 의해서였다.


이것은 원래 1941년 여름에 남부 독일 알피스바하에서 열린 잡지 ‘복음주의 신학’의
세미나에서 그가 행한 강연이었다. 그것이 이윽고 ‘복음주의 신학 논총’ 제7권에 불트
만의 다른 논문들과 같이 출판되자 전쟁 중인데도 대단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비신화론’에 관해서는 이미 본지 ‘성서학 방법론’에서 언급한 바 있으나 다시 정
리하여 언급하기로 한다.)


불트만에 따르면 신약성서의 세계상은 하늘 세계와 땅위세계 및 땅밑세계등 3계층 편성
으로 된 신화적인 것으로서 케리그마의 내용을 이루는 구원 사건은 이 신화적인 세계상
에 대응하여 언급되어 있다. 즉 하늘 세계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선재하시던 하나님의 아
들은 사람이되어 땅위 세계에 오셨고 하나님과 사탄의 여러 힘이 활동하는 지상에서 활
약하셨으며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속죄의 죽으심을 당하고 땅밑 세계에 내
려가셨다가 죽음에서 부활하셨다. 그것은 죽음과 여러 힘이 그 힘을 잃는 우주적 파국
의 시작이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세계에 올라가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고 그곳에서 땅위세
계에서 성령을 부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성도들을 인도하시며 이윽고 하늘 세계에
서 다시금 땅위 세계로 내려오사 최후의 심판을 행하시고 구원의 사건은 완결된다는 것
이 바로 3단계 편성의 신화적인 내용이다. 이와 같이 유대교적인 묵시문학과 그노시스적
인 구원자 신화에서 유래한 신화적인 세계상을 현대인에게 승인하게 하는 일은 그와 같
은 3계층 편성과는 전혀 다른 과학적 세계상 가운데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아무 의미도
없을 뿐 아니라 그것은 신약 성서가 본래 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승인을
요구하는 것은 아무 필요도 없다.


따라서 비신화화의 과제는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제까지의 비신화화가 한결같이 신화
를 비판적으로 삭제한데 대하여 불트만은 그것을 비판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제창하였
다. 이와같이 비신화화는 해석학적인 과제이며 우주론적인 신화론을 실존론적으로 해석
한다고 하는 인간학적인 과제라는 것을 명확하게 밝힌 점에 불트만의 독자적인 공헌이
있었다. 그것은 이른바 합리화가 아니다. 케리그마는 이 장소와 이 때에 있어서 신앙의
결단을 촉구하는 부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트만의 논문집 ‘신앙과 이해’가 말해주고 있는 바와 같이 지성의 희생을 요
구하는 이해없는 신앙이 아니라 이해를 수반하는 신앙이어야 하며 바로 이것이 ‘오직
믿음’이라고 하는 바울과 루터적인 칭의론 인식의 영역에 있어서의 철저함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불트만이 신약학자로서 쌓아올린 업적은 하나의 시기를 금긋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
이 널리 사상계 전체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게 된 것은 깊이 역사와 인간 문제에 관계되
어 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는 성서를 진정한 현대인의 책으로 생각하였고 그 실존론
적 해석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사건이 이 나의 구원에 있어서 무엇을 의미하는가 물으면
서 거기서 인간의 불안과 절망과 죽음의 문제와 그리고 그곳에서부터 해방된 새롭고 자
유로운 삶의 문제를 다루었다.


2000년 전의 예수의 십자가가 시대를 초월하여 나의 삶의 방법을 받쳐주고 있다고 하는
실존론적인 이해를 통하여 역사와의 대화에 들어가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 역사와의
대화에 들어갈 때에 우리는 그것을 이미 운명으로서가 아니라 참으로 인간의 역사로서
담당하는 존재가 된다고 하는 것을 나타낸 점에 불트만 사상의 현대적인 의의가 있다.

 
불트만이 하이데거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에 관하여 위에서 언급한 바 있다. 불트만에
게 있어서 인간의 기본적인 소재를 명백하게 하는 것이 하이데거의 배려와 불안의 존재
론적 카테고리이다. 때문에 성서의 신화론적 및 우주론적 표상과 언어는 배려와 불안으
로 번역되지 않으면 안된다. 더구나 불트만에게 있어서 역사를 연구한다는 것은 역사의
상세한 객관적 서술에 따른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존재 가능성과 현존재의 역사성에
대한 통찰을 깊게 하는 것이다. 역사를 배우기 위해서는 역사가 말하는 바 주제적 내용
에 대한 앞선 이해와 인간 존재의 존재 가능성 및 현존재의 역사성에 대한 관심이 필수
조건이다. 또한 그것이 역사와의 만남과 해석을 위한 문제 설정과 거점이다.
역사를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한 거점은 실존에 대한 물음으로 일관되어 있다.


“가장 주체적인 해석이 가장 객관적인 해석이며 결국 실존의 물음에 의해 감동을 받은
사람만이 본문의 요구하는 바를 알아 들을 수 있다.”


불트만은 바르트와는 다르게 하나님에 관하여 객관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은 신앙과 새로운 자기 이해를 창조함으로써 나의 자기 이해에 역사하시는 바 나에게 있
어서의 하나님이다. 불트만은 하나님의 말씀에 관하여 객관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말씀과의 만남으로 해서 발생하게 되는 신앙과 이해에 관하여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
에 관하여 말할 수 있는 것은 인간 실존에 관한 물음에 의해서이며 간접적으로 하나님
이 역사하시는 실존과의 관련에서 말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죄와 죽음의 한
가운데 자기가 돌아오게 되어야 한다. 이 불트만의 죄와 믿음에 의한 칭의(의인) 더 나
아가 율법과 복음에 관한 이해는 하이데거의 비본래성으로부터 본래성으로의 구조와 밀
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출처 : 이 시대를 향한 외침
글쓴이 : 삭개오2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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