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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번역 때문에 화형 당한 윌리엄 틴데일
윌리엄 틴데일(William Tyndale, c.1494-1536)은 영국의 종교개혁가이자 영어성경번역가로 우리에게 낯설지 않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가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기 위해 당시 영어에는 없는 새로운 여러 단어들을 만들고 구어적인 소박하고 우아한 영역성경을 출판함으로서 후일 흠정역(KJV)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아는 이는 많지 않는 것 같다. 그는 성경을 번역했다는 이유로 화형을 당했다는 점은 그가 살았던 시대가 얼마나 숨 막히는 암흑의 세월이었던가를 짐작하게 된다. 바로 그 암흑에서 자유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자국어로 번역되고 읽혀져야 한다는 일념 때문에 그는 성경번역가의 길을 갔고, 성경 출판은 아무도 기꺼이 할 수 없었기에 스스로 출판업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는 그 시대의 요청 앞에서 자신을 드렸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의 삶의 편력은 늘 나의 관심을 끌었다. 윌리엄 틴텔은 영국 서부지방에서 태어나 옥스퍼드 모를린대학(Magdalen Hall)에서 수학했다. 그 후에는 캠브릿지대학에서 공부했다. 월시 경(Sir John Walsh) 가문의 가정교사로 생애를 시작했으나 성직자들과 평신도들의 무지를 보고 “성경을 자국어로 읽도록 하기 전에는 그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할 수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런 확신을 런던의 주교 턴스텔(Cuthberrt Tunstall)에게 알렸으나 아무런 격려도 받지 못했다. 그가 얻은 확신은 이런 일은 어느 누구에게 위임할 수 없는 것이다. 이 확신이 그를 성경번역자로 돌아서게 만들었던 내적인 요인이었다. 그러나 성경번역은 당시 교회에서 칭송받을 일이 아니라 금지된 일이었으므로 조국을 떠나 독일로 향했다. 함부르크와 비텐베르크를 오가며 비밀히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문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구약의 일부, 곧 창세기에서 역대상까지의 일부, 요나서와 신약을 번역했고, 1525년 퀄른에서 최초로 신약성경을 비밀히 인쇄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의 습격으로 인쇄 작업이 중단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또 턴스텔, 토마스 모어(Thomas More), 켄터버리 대주교 워럼(William Warham) 등은 그를 모질게 비판하기도 했고, 그를 체포하려고 비밀요원을 파견하기도 했다. 인쇄공의 배신, 도피, 경제적인 어려움 등 숱한 방해와 난관 가운데서도 그는 비밀히 인쇄한 성경을 출판했다. 문제는 영국으로 반입하는 것이 과제였다. 그는 번역한 성경을 영국으로 수출 되는 술통과 밀가루, 혹은 짐짝 등에 숨겨 영국으로 반입했다. 그러나 밀반입된 성경이 영국교회 당국에 의해 발각되어 1525년에서 1528년 사이에 신약성경 18,000권이 소각되고 현재는 단 2권이 남아 있다. 영국에서 소각 운동이 일어나는 동안 틴데일은 화란 안트웹으로 피신하여 숨어 있으면서 신약번역본 수정작업을 했고, 구약 모세오경을 번역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영국교회의 비밀요원 헨리 필립스(Henry Philips)의 제보로 체포되었고 헨리 8세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성경을 번역한 일은 칭송받을 일이지만 ‘이단’이라는 죄목으로 심문을 받고 1536년 최고형인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리고는 그가 공인된 라틴어 판 벌게이트(Vulgate)를 사용하지 않고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전에서 성경을 번역했다는 이유로 목이 잘린 그의 시신은 화형용 기둥에 묶여져 다시 불태워졌다. 이 때 그의 나이는 42세로 추정된다. 그가 죽기 전 감옥에서 쓴 편지에 보면 “따뜻하게 해 줄 옷과 저녁에 킬 등불과 히브리어 성경을 보내 달라”는 글이 남아 있다. 그는 음산하고 어두운 감옥에 갇혀 추위와 싸우면서도 성경번역을 염원했음을 알 수 있다. 윌리엄 틴데일이 번역한 틴데일역(Tyndale's Version, 1524-34)은 원어성경을 대본으로 사용한 최초의 번역 성경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인쇄된 최초의 영어성경이라는 점에서 영어성경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그가 헬라어 원전 신약성경을 영역할 때는 에라스 무스에 의해 헬라어 성경이 출판된 지 불과 9년이 지났을 때였다. 이 번역본에서 틴데일은 딱딱하고 고답적인 문어적(文語的) 표현을 피하고 소박하고 단순하고 구어적인 표현을 다수 도입하여 영어의 표현을 아름답게 가꾸었다. 그는 수많은 우아한 어구들을 후대에 남겨주었지만, 영어에 없거나 원의를 충분하게 전달하지 못할 경우는 새로운 영어단어를 만들기도 했다. 이런 전례는 이미 위클리프(John Wycliffe)에게서 발견된다. 틴데일보다 앞서 처음으로 영어로 성경을 번역했던 위클리프는 성경의 개념을 표현할 영어단어가 없어 고심하던 끝에 여러 단어들을 만들거나 조어(造語)하기도 했었는데 그 대표적인 경우가 ‘구속’이라는 뜻의 단어 아톤먼트(Atonement)였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그 ‘한 순간’ 우리를 구속했다는 점에 착안하여 ‘한 순간’이라는 의미의 At one movement를 합성하여 Atonement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틴데일도 성경 원전(原典)의 개념을 바르게 전달하고, 또 성경을 아름답게 표현하기 위해 여러 단어를 만들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문설주에 피를 바른 곳은 재앙이 지나갔다는 점에 착안하여 유월절을 의미하는 Passover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그가 조어한 경우로는 ‘화평케 하는 자’를 Peacemaker로, ‘오래 참음’을 long-suffering으로 사용하였고, 창조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아름다운’(beautiful)이란 단어를 만들었다. 특히 틴데일은 하나님을 칭하는 단어로 Jehovah를 사용했는데 이것이 영어성경에서 처음 사용된 용어였다. 그는 하나님을 칭하는 히브리어 야훼를 영어식으로 음역했던 것이다. 텐데일의 성경은 1611년에 공인된 성경으로 출판된 흠정역(KJV)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틴데일이 이단으로 처형된 지 약 10년이 지난 후 마일스 커버데일(Coverdale, 1488-1596)은 틴데일역을 좀 더 보충하여 1535년 최초의 완역판 영어성경을 출판했는데 이것이 커버데일 역(Coverdale Version, 1535)인데, 이것은 번역판이라기보다는 틴데일역의 수정판에 가깝다. 틴데일은 성경번역 외에도 1528년에 <악한 제물의 비유>(Parable of the Wicked Mammon)와 <그리스도인의 순종>(The Obedience of a Christian Man)이라는 책을 남기기도 했다.
성서를 영어로 번역하고 화형 당한 ‘영국의 루터’ 윌리엄 틴데일2
자기소견대로 행하더라 ..... 구멍낸 성경
우리모두 우리가 구멍낸 구멍투성이의 누더기 성경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온전한 성경으로 되돌아 가십시다. 그 말씀을 온전히 쫏으므로, 세상과 하나님을 행해 우리의 참 믿음을 보여드립시다.그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로삼아 이시대를 향한 당신의 뜻을 이루워 가실것이요,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삶을 보고 , 비로서 우리가 전하는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믿음은 결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믿음은 반드시 눈으로 볼수있는 구체적인 실체입니다. 기도) 주님 그동안 나는 다른 사람의 믿음을 내 눈으로 보아왔습니다.그래서 사람들의 믿음을 평가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도 나의 믿음을 그의 눈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 특히 하나님께서도 보고 계신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무지했습니다. 오늘의 이땅 의 그리스도인 과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가혹 할정도로 비판과 비난의 대상이 된 것은 내 가먼저 세상 사람들에게 참된 믿음을 보이지 못한 결과요, 그까닭은 그동안 내가 내 마음대로 마구 가위질한 구멍난 성경을 쫏았기 때문임을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나는 내 마음과,내 욕망과, 내 이기심에 들어 맞는 말씀만 붙잡고 사느냐고 나머지 말씀을 모두 난도질 해버려 하나님의 말씀을 구멍 투성이인 누더기 성경으로 만들었습니다. 구멍난 성경을 쫏는 나의 믿음 또한 구멍난 믿음이어서 그 구멍을 통해 세상과 밀접하게 연합한 나의 믿음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도 참 믿음일수 없었습니다. 그러고도 스스로 믿음을 지녔다고 착각해온 나의 어리석음을 회개하오니 용서해 주십시오 하나님아버지의 은총으로, 성령님의 빛으로,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내가 그동안 난도질한 성경의 모든 구멍들을 빠짐없이 메워주십시오 주님께서 복원해 주신 온전한 성경을 온전히 쫏는 우리의 바른 믿음을 세상 사람들과 하나님께 보여드리는 참된 그리스도인 되게 해주십시오 믿음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반드시 눈에 보이는 실체임을 잊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을 통해 이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워 지게 하시고 세상사람들 의 눈에 보이는 우리의 참된 믿음이 세상 사람들 을 주님앞 으로 인도하는 교량이 되게 해주십시오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영국왕의지명수배이유
영국의 왕과 왕의 측근들은 그를 체포하기위해 유럽으로 스파이들을 보 냈지만 윌리엄 틴데일(WilliamTyndale)은 10년 동안 붙잡히지 않았다. 이 조용한사람이 무슨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기에 영국의 지명수배명단 첫머리에 놓였단 말인가? 그를 대적하는 사람들조차도 그의 삶이 거룩함의 모델임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그의 유일한 죄는 성경을 영어로 번역한 것이었다.
1500년대의 영국은 단하나의 교회: 로마가톨릭만이 있었다. 그런데 그 교회는엄청난부와권력을소유하고있었다.정부는 교회가 모든 사람에 대해 자체적으로 법을 집행하도록 허용했다. 교회는 사람들에게 많은 액수의 돈을 내라고 요구했지만 그들을 돕기 위해 한 일은 거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가난해서 빈민굴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에서 교황을 대표하는 월시추기경 (Cardinal Wolsey)은 500명의 종들을 거느리고 궁전에서 살았다.
영국에 있는 모든 성경은 라틴어로 씌어 있었다. 그리고 교회의 허락 없이 성경의 어떤 부분이든지 번역하는것은 법에 저촉되는 일이었다. 교회 지도자들은 성경을 일반인들의 언어로 옮기는 것이 어떤 식으로든 성경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또한 사람들이 직접 성경을 읽게 되면 교회의 가르침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것을 두려워하기도 했다.
영어로 된 성경을 읽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땅과 재산과 생명을 잃게 된다. 따라서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교회와 정부의 적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감히 영어로 주기도문이나 십계명을 가르치는 남자나 여자들은 즉시 화형에 처해졌던 것이다.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 드디어 신약성경 번역
윌리엄은 뛰어난 지성을 가진 사림이었다. 그는 젊은 청년시절 옥스포드 대학에 들어가 사제가 되기 전에 언어와 논리학을 열심히 공부했다. 그는 일곱개 언어에 능통한사람이었다. 그는 성경을 연구하면서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려는 마음으로 불타게 되었다. 사람들을 가르치는 많은 사제들이 라틴어를 읽을 줄 모르기 때문에 그들 자신도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몰랐다는 사실이 그를 분노케 했다.
옥스포드와 그 후 캠브리지에서 공부를 마친 후, 그는 부유한 가정의 가정교사가 되었고, 마을교회에서설교하게 되었다. 윌리엄은 우리가 행하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가르쳤다. 그의 설교가 그 지역의 지도자들을 분노케 하자 그는 런던으로 옮겼다.
그리고 그는 주교의 승인을 얻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한 후 출판하려고 노력했다. 주교는 그의 요청을 단호히 거절했다. 하지만 윌리엄의 설교를 좋아하는 한 부유한 사업가가 그를 돕기로 했다. 그는 윌리엄에게 독일로건너가 그곳에서 번역작업에 매달리라고 충고를 했다. 그 후 윌리엄은 그에게 인쇄 된 사본들을 보낼 수있었고 그는 그것들을 곡식주머니에 넣어 영국으로 몰래 들여오곤 했다.
윌리엄은 지칠 줄 모르고 헬라어 신약성경을 번역하였다. 그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각각의 단어를 주의 깊게 선택하였다. 비록 그가 영국인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언어를 시용하긴 했지만, 거기에는시와 같은 아름다움과 리듬이 있었다.
윌리엄의 신약성경이 영국에 도착하자 수요가 너무나 커서 다른 인쇄업 지들이 점점 더 많은 인쇄본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사형 위기 속에서도 다시 구약성경 번역착수
그러나 교회 지도자들은 격분했다. 그들은 윌리엄의 성경을 소지한사람이면 누구든지 체포하고 투옥시키고사형에 처함으로써 그에 맞서 싸웠다. 자신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윌리엄은 구약성경 번역에 매달리면서 이곳저곳을 자주 옮겨 다녔다. 한 번은 어느 만취한 인쇄업자가 그를 찾기 위해 파견된 스파이들 중 한 사람 앞에서 그에 관해 이야기했다. 윌리엄은 아슬아슬한 때에 그 소식을 듣 고서 자신의소중한 번역본들을 가지고 가까스로 피신할 수 있었다 그는 또한 기독교의 가르침을 설명하는 책들을 쓰기도 했는데 그 중에는 헨리 8세 왕이 좋 아하는 책도 있었다. ‘그리스도인의 순종(Obedience of a Christian Man)’ 이라 이름 붙인 그 책은 사람들에게 정부가 하나님의 법을 거스리도록 요구하지 않는 한정부에 복종하라고 권고 했다. 거의 같은 시기에 헨리왕은 왕의 이혼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교황과 싸고 있었다. 그들의 논쟁이 심각해져 가면서 왕은 더욱 힘을 얻게 되었고 교회는 점점 약화되어갔다. 이혼한 후에 왕은 믿음 때문에 추방된 영국인들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래서 윌리엄은 다소 안도의 숨을 내쉬게 되었다. 그 무렵에 그는 헨리 필립스(Henry Phillips)리는 한 젊은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영적인 것들에 대해 배우고 싶어 하는 체 했다. 윌리엄은 그를 도와주었으나 필립스는 윌리엄을 덫에 걸리게 하였고, 결국 윌리엄은 체포되고 말았다. 4개월 동안 윌리엄은 벨기에의 브뤼셀 근처에 있는 차가운 지하 감옥에 쳐 넣어졌고 누구의 방문도 허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선한 태도가 간수 에게 너무나 깊은 감동을 주었기 때문에 그 간수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러나 윌리엄은 마침내 하나님의 대적자인 이교도로 정죄되어 교수형에 선고되었고, 1536년에 화형에 처해졌다. 화형 시키는 니무에 묶일 때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이것이었다.
"주여, 영국왕의 눈을 열어주소서!“
윌리엄 틴데일의 기도는 놀랍게도 응답되었다. 그의 죽음직후에 한 친구가 성경을 인쇄하여(윌리엄의 번역본전부를 포 함) 헨리 8세에게 바쳤다. 그것은 박해 없이 유포되도록 허용된 최초의 영어 성경이 되었다.
나중에 윌리엄의 번역본은 1611년에 왕에 의해 공인된 킹 제임스 성경어법의 90% 이상을 제공했다. 윌리엄의 번역본은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책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