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타락한 목사들의 헌금(실제는 교회자금) 독려하는 방법
타락한 목사들의 헌금(실제는 교회자금) 독려하는 방법
교회에 헌금이 필요하다는것은
헌금 바구니가 아무리 어색하게 보여도
교인 이라면 모두 인정할것 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무리한 예산을 짜놓고
살림을 늘리고 사업을 벌이면 성도들에게
커다란 부담이 됩니다.
더구나 사업계획들은 때로는 목회자의 개인적인
야망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성도들은 대체로 교회의 예산목표액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보다는 무거운 마음으로
주님의 이름을 한숨쉬듯 부릅니다.
그런데 교회의 헌금 목표액은 믿음의 여부에 대한
도전과 함께 독려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헌금 목표액이 현실적으로 무리하냐,아니냐가
중요한것이 아니고 그 목표액을 하나님이
채워주실것으로 믿느냐,않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어떤 동기와 목적과 절차를 통해서
세웠건 일단 목표액으로 내건 액수는 하나님이
허럭하셨다고 보는듯 합니다.
그 다음 단계는 목표액을 채우는것인데
이것은 믿음의 행위라는것 입니다.
즉,하나님이 세워주신 목표를 채우는 노력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것이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것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인도와 지혜로써 세워진 교회예산이나
사업계획 이라면 성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해야 합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헌금독려를 위한 방법이 그릇된 경우라면
예산 목표액이 달성된 사실을 놓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수는 없울것 입니다.
하나님은 목표의 달성보다도 목표의 진행과정을
더욱 눈여겨 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바라시는것은 의의 열매 입니다 (빌 1:11)
의의 열매는 동기와 방법과 목적에 두루 부합되는 성취라야 합니다 (빌1:9,10)
건전한 내용과 방법이 결여된 목표자체의 달성은 무의미한 것 입니다.
그리고 그릇된 방법으로 성취시킨 ' 하나님의 뜻 '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이제 몇가지 그릇된 헌금독려 방법을 예시해 봅니다.
다음은 최근에 어떤 목사님과 필자 사이에 주고,받은
대화 입니다.
" 목사님, 성전 건축하셨습니까?"
" 아니오. 성도들의 형편이 아직 그럴 수 있는 입장이 못 됩니다."
" 빨리 하셔야지요"...짜면 다 나와요!"
이 " 짜내기" 중의 하나가 간증수법 입니다.
대체로 가난한 사람이 큰 액수의 헌금을 한 경우를 내세웁니다.
그런 헌금자들은 거의 다 정말 어려운 형편에서
한푼,두푼 허리를 졸라매면서 모은 피땀에 젖은돈을
헌납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간증을 들으면 큰 감동을 받습니다
이런 간증을 교회에서 듣게 하는것 자체가 결코 나쁜것은
아닙니다.
바울 사도도 고린도교회가 일년전부터 예루살렘에 보낼
구제헌금을 준비해왔다.
고 마게도냐 교인들에게 자랑하였습니다.
그 결과 마게도냐에 있는 많은 교인들이 감동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고후 9:2)
그럼 무엇이 문제 입니까?
우선 헌금액수 입니다
간증용으로 사용되는 가난한자의 헌금은
언제나 큰 액수 입니다
과부의 두렙돈 이기보다는 과부의 거액이
칭찬을받습니다.
결국 가난한 과부의 거액헌금에 비추어
다른사람들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헌금을해야 한다는
결론 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액수 위주의 헌금간증은
헌금자의 자발적인 헌금액 결정에 인위적이고
심리적인 압력의 요소가 됩니다.
또한 선의의 헌금을 한 가난한 성도가 많은 액수의
헌금을 했다는 사실때문에 그 선행이
온교회에 공적으로 발표됨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은밀하게 행해진 오른손의 선행이 왼손에게 알려지게 됩니다(마 6:3).
그것도 타의에 의해서 자신이 나팔을 부는 격이므로
선의의 피해자가 되기싶고 교회전체가 위선에 빠지게 됩니다(마 6:2)
심지어 큰 액수를 무명으로 한 헌금자의 이름을
어떻게 해서든 알아내어 간증자로써 강단에 세우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그 동기와 목적을 의심하게 합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의 헌금준비를 언급했을때에
어느 개인의 거액헌금을 예로 들어 자랑하거나
직접 본인을 세워 간증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성전 연보궤 앞에서 어느 빈한한 과부의
헌금을 칭찬하셨을때에 그 과부의 거액을
언급하신것이 아니고 오히려 한 고드란트 밖에
낼수 없었던 그녀의 참다운 헌신을 지적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여기서 주목해야 할것은 예수님은
그 과부가 얼마나 어렵게 살면서 희생적으로
큰 헌금을 했는지를 제자들 앞에서
간증시키지 않았다는 사실 입니다.(막12:41~44)
그렇다면
액수위주의 헌금간증이나 그런 개인을
교회앞에 내세워 공적인 간증을 시키는것은
비성경적인 헌금 독려 방법입니다.
또 하나의 실례를 봅시다
우리나라 교회에서는 교회당 건물을 비롯하여
선교회관,교육기관,기도원등의 각종 건축사업이 많습니다.
그런데 빠른기일내에 건축헌금을 채우려면 건축물의 일부를
할당시키는 것입니다.
그중에서 강대상이 가장 잘 나가는 인기 종목 입니다.
강대상과 함께 잘 팔리는(?)것은 십자가 입니다.
이것도 지원자가 많습니다
이런식으로 할당이 되면 건축이 빠르다고 합니다
필자가 직접 경험해 본일이 아니고 항간에서 자주
듣는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얼마이상 한 사람들에게는
건축물에 헌금자의 명단을 명판으로 박아 붙여준다고 하면
헌금지원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합니다.
장안의 어느 대형교회에서는 일정액수 이상의
헌금을 하는자들의 명단을 마이크로칩에 넣어
교회당 주춧돌 아래 영구 보존 시키겠다고 광고까지 했다고 합니다.
이런 말들을 들으면 의식이 깬 분들은 금방 식상합니다
피가 뜨거운 분들은 크게 흥분하기도 합니다.
한편 , 교회를 비판하는것은 무조건 덕이 못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소위 의식이 깼다는 사람들의 이같은
식상하는 모습을 보고 오히려 언짢아 합니다.
하지만 교회일에 관한 한 우리들은 개인의 감정이나
주관이 아닌 성경말씀의 가르침에 비추어
웃고,울어야 합니다.
그럼 이러한 헌금각출 방법에 대해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한마디로 하나님께 속한 신령한것들은
돈으로 사고 파는것이 아니라 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마술사 시몬의 예를 생각해 보십시요.
시몬은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
을 듣고 세례까지 받았습니다(행 8:12,13)
그런데 그는 매우 열심이 많은자 였습니다.
"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행8:13).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나중에
사마리아에 도착하였을때 마술사 시몬의 정체가
폭로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마술사 시몬을 향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바
되었도다"(행 8:23)
세례까지 받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해
드러나는 큰 능력과 표적들을 보며 감격해 한 시몬에게
왜 이런 선언을 했을까요?
그 까닭은 마술사 시몬이 신령한것을
돈으로 사려고 했기 때문이였습니다(행 8:18)
가장 흔한 방법은 아래와 같습니다.
목사의 옷을 입은 무당들은 이렇게 헌금을 독려합니다.
자신의 입으로 독려하자니 민망하여 작정헌금 잘 우려내는 기술자(부흥사)를
초청해 맨 마직막 날 본격적으로 그 부흥회의 본래 목적을 가감없이 드러냅니다.
"부담 있으면 않내도 됩니다."
"억지로 내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주님은 작정헌금을 한 성도님에게는 30, 60, 100배로 값아주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위한 헌금은 주님이 대단히 기뻐하시고,
반드시 물질로 값아주시니 염려하지 말고 때를 기다리세요."
이렇게 말하면서 교인의 신앙적 양심을 충동해서
돈을 안내면 죄인의 느낌이 들게하고 내면 떳떳하다는 뉘앙스로
결국 작정헌금을 하게끔 교인들의 양심을 자극합니다.
절대 속지마십시오.
이들은 양복입은 무당들입니다.
이런 술책에 양심의 가책을 단 한톨이라도 느낀다면
그분은 성경에 나온 지혜의 말씀을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제대로 읽고, 그 깊이를 깨달았다면 결코 이런 술책에 넘어갈리가 없습니다.
(미상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