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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무엇이 깨인 것이고 무엇이 잠자는 것인가...!!!

삭개오2 2019. 1. 1. 21:43

잠자는 사람과 깨인 사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잠자는 사람은 도둑이 들어와도 알지 못하여 

도둑질당합니다. 

깨어있는 사람은 도둑이 들어와도 

바로 대처할 수 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시대 최고의 권력자들이

정적으로부터 죽임을 당하는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죽임을 당하는 과정은 거의 정해져 있습니다.

독을 탄 음식을 먹다가 죽는다든지,

잠자다가 칼에 베여 죽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잠자는 과정은 이미 완전 무의식이기에

도무지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포악한 독재자들은 자신이 자는 동안 

부하를 시켜 자신의 신변을 보호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심복마저 

정적의 뀀에 넘어가 포섭되었다면

그 사람은 그냥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습니다.

나는 영적으로 깨어있느냐 잠자느냐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흔히 깨어있다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성경을 줄줄 외울 정도로 많이 읽었고, 

짐승의 표에 대하여, 

휴거에 대하여, 

프리메이슨에 대하여, 

세상 난리와 소문에 대하여, 

어떤 징조에 대하여, 

성경의 교리에 대하여...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줄줄 꿰고 있습니다. 

마치, 

이런 분들이 영적으로 깨어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런 분들이 

깨어있을 수도 있고 잠잘 수도 있는 분들입니다.

그러나, 무엇인가 많이 아는 것과 깨어있다는 것의 관계는 

절대적으로 비례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아는 것은 그저 깨어있기 위한 필요조건은 될 수 있어도 

그 자체로는 결코, 충분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많이 알아도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이는 전부 무용지물일 뿐입니다. 

성경을 머리로만 수십 번 읽고 신학 박사학위까지 있고, 

사회적으로 인지도가 큰 목사님보다

성경을 뜨거운 심장으로 읽은 산골의 순박한 농부가 

깨인 사람입니다. 

무엇을 많이 알아 육의 머리가 깨인 것과 

영이 깨인 것은 그 차원이 전혀 다른 종류의 것입니다. 

머리는 얼마든지 사람의 노력으로 깨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으로 깨이는 것은 주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사람의 속성 중에... 

무슨 이론을 많이 알면 아무 이유도 연관도 없이

그 이론에 자신을 슬쩍 끼워 넣으려는 습성들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성경 구절을 읽으면... 마치, 

내가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처럼 확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성경 구절을 읽으면

내가 이미 믿음으로 구원받은 줄 확정합니다.

휴거에 대하여 많은 지식이 있으면 

나는 당연히 휴거되는 사람인 줄 압니다. 

666 짐승의 표에 대하여 빠삭하게 알면

나는 당연히 짐승의 표를 안 받을 사람으로 인식합니다.

부디... 

이런 말도 안 되는 환상에서 벗어나셔야 합니다.

머리에 들어간 지식으로 아는 것과 나의 영적 현실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임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제자교육에 아무리 많은 시간을 투자해도 

교육받은 제자훈련에 대한 영적 삶이 없이, 

이론만 가득하여 머리만 뜨겁고 심장이 차갑다면 

그의 영은 여전히 잠자는 사람입니다.

휴거에 대하여 아무리 다양한 지식이 있어도

휴거될만한 거듭난 거룩한 영성과 삶이 없다면 

그의 영은 여전히 잠자는 사람입니다.

짐승의 표를 받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아도 그가 짐승의 표를 거부할만한 

실제적 믿음의 영성이 없다면

그의 영은 깊은 잠을 자는 사람입니다.

믿음의 교리에 대하여 머리로 줄줄 꿰고 있어도

그가 말씀대로 순종하는 거룩한 믿음의 삶이 없다면

그는 믿음과 아무 상관 없는 사람입니다.

구원의 교리에 대하여 책을 많이 읽었기에 

이론적으로는 박사라도 

그가 구원받을만한 믿음의 삶이 없다면 

그 역시 깊은 잠에 빠진 사람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머리로만 들어간 구원 교리가 우리를 구원시키지 않습니다.

머리로만 들어간 휴거 이론이 우리를 휴거시키지 못합니다. 

뜨거운 심령이 아닌... 

머리로 들어간 이론은 믿음이 아니라, 그냥 정보일 뿐입니다. 

이는 자기가 만든 허상의 믿음을 잡고 있는 것입니다.

머리로만 들어간 지식적 이론은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머리가 아닌... 심장으로 들어가야 변화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또한, 거듭난 거룩한 믿음의 삶으로 나타나는 것이 

실상의 믿음이고, 생명을 받은 증거가 됩니다.


거듭남으로 인도하지 못하는 성경의 이론은 

그냥 정보일 뿐입니다. 

성경을 왜 읽습니까... 

지식을 축적하고 아는 게 목적입니까? 

아니면... 거듭나는 것이 목적입니까... 

믿음의 삶이 없는 성경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변질시킵니다. 

항상 나보다는 남을 향해 말씀을 적용하려고 듭니다.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데 말씀을 이용하려 듭니다.

정말 조심하십시오.

내가 말씀을 가지고 남을 향해 정죄 판단하는 순간

주님은 이미 나를 향해 정죄 판단할 것입니다.

이는 거듭난 믿음의 삶이 없기에 

성령의 법이 아닌 육신의 법이 그를 이끌므로 

육의 속성으로 남을 대하기 때문입니다. 

거듭난 믿음의 삶이 있는 사람은 

육의 법이 아닌 성령의 법이 그를 이끌기에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가지고

결코, 남을 향해 정죄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으로부터도 더이상 정죄함을 받지 않습니다. 

내 안의 성령님이 성령의 법으로 나를 인도하시는데 

어찌 정죄 판단하겠습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거듭났기에) 

(로마서 8장 1-2절) 


내 영이 깊은 잠에 빠져있다면 빨리 깨워야 합니다.

영이 잠자다가는 그날을 대비하지 못해 영원한 멸망으로

나를 인도할 것입니다.


여리고 성의 앞을 못 보는 바디메오가 예수님을 불렀으나

예수님은 그의 몇 번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고 있다가

더욱더 큰소리로 간절히 불렀을 때 그를 만나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바디메오의 부름을 못 들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의 간절함을 원했기에 기다렸을 뿐입니다.


혈우병 걸린 불쌍한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무릅쓰고

처절하게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잡으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그 여인이 따라온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더욱 큰 간절함을 보기 위해 기다렸을 뿐입니다.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찾아와 귀신들린 딸을 치유해주길 원했을 때 

예수님은 그의 속사정을 이미 다 아셨으면서도 

그의 간절함을 더 끌어올리기 위해 

나는 너희 같은 이방인과는 아무 상관 없다 하며 

심지어 개에 비유하여 그녀의 자존심을 무참히 무너뜨렸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에 발끈하지 않고 자신을 더욱 낮추며

더 간절히 예수님의 은혜를 구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간절함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삭개오는 작은 키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어떡하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뽕나무에 올라가는 간절함을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의 존재와 

그가 자신을 만나려 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뽕나무에 올라가려는 간절함을 보였을 때 

비로소 그를 불러 그의 집에 가 함께하셨습니다. 


이렇듯... 이들 모두는 간절히 바라는 것을 

예수님으로부터 실상으로 얻을 수 있었습니다.


깨어있다는 것은 성령으로 거듭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부디, 성령으로 거듭남에 온 전력을 기울이십시오.

내가 스스로 거듭날 수는 없습니다.

내 스스로 거듭날 수 있다면 그것은 믿음도 아니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필요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향해 

거듭나게 해달라고 간절히 구하는 것...

그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나를 돌이켜 부인하고 회개하여 

주님을 향해 진심으로 관심을 최대한 끌어주십시오.

간절히 주님을 구하십시오.

위의 네 사람처럼 응답 될 때까지 주님께 매달리십시오. 

그래야 성령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매우 간절하고, 애통하고, 가난한 심령을 요구하십니다.

이는 모두 내 뜨거운 심장에서 흘러나오는 마음입니다.

위 네 사람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과 말씀(복음)을 들었을 때

냉정한 머리로 그 소문을 소화한 것이 아니라,

뜨거운 심장으로 받았기에

예수님이 근처에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죽을힘을 다해 붙잡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 사람들 마음에는 소문으로 들었던 복음을 통하여

가난하고, 애통하고, 간절한 심령이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들의 중심을 보시고 만나주신 것이며

이들의 소원을 들어주셨던 것입니다.

이런 간절함은 결코,

성경의 정보만 가득한 뜨거운 머리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지식만 가득한 차가운 마음의 사람들은

자아가 매우 강하기에 예수님이 시험할 때 

바리새인들처럼 분노하고 실망하여 돌아서는 사람들입니다. 

간절하고 애통한 마음을 소유한 사람은 그 심령속에 

나를 높이는 자아 자체가 없습니다. 

자아는 간절하고 애통한 마음을 훼방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에 대한 간절하고 애통한 마음이 안 올라오십니까? 

그렇다면 그 마음을 달라고 매달리십시오. 

기도는 그럴 때 하라고 있는 것입니다. 

무조건 주님께 그런 거룩한 마음을 달라고 

악착같이 떼쓰십시오. 

주님은 위 네 사람의 모습을 계속 지켜보면서

그의 심중을 관찰하시다가 응답하셨듯 

우리도 계속 지켜보시다가 

때가 되면 바로 응답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모든 면에서 제일 강하고 전지전능하신 분이지만,

주님께서도 피할 수 없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그 약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거듭나게 해달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떼쓰는 심령에게는 매우 약하십니다.

그리고 약속한 바는 반드시 100% 들어주십니다.

그의 소망을 안 들어주고는 절대 못 배기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간절히 구하고, 찾고, 두드려서

주님 자신의 약점을 자극하며 들어오라는 요구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강력한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주님의 은혜를 입어

성령으로 거듭나는 가장 귀한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간절히 구하지 않는 사람은 얻을 수 없습니다.

간절히 찾지 않는 사람은 찾을 수 없습니다.

간절히 두드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열리지 않습니다.

간절히 구하고, 찾고, 두드림도 없이

막연히 은혜로 다 알아서 된다는 말에 절대 속지 마십시오. 

감나무 아래에 누워 입만 벌리고 있으면서 

간절하고 애통한 마음도 없이, 

왜곡된 은혜와 자유함을 명분 삼아 굳게 의지하여 

마음 편히 세상 속에서 계속 넋 놓고 왜곡된 자유함을 누리다가는 

그날이 되어 다 멸망으로 들어갑니다. 


주님께서 왜 간절히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하셨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런 심령들에게만 성령으로 거듭남의 은혜를 베풀겠다는 

주님의 단호한 의지적 표현입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린다는 의미는 다 똑같은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의미의 말을 세 번씩이나 강조한 이유는

그 정도로 간절한 마음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요청해야 주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거듭남의 역사가 있을 수 있다는 주님의 의지입니다. 

그 어떤 구함도 없이 그저 입술로만 '주여주여' 하면 

그 안에 모든 것이 포함되었다 하며 

그게 믿음이라는 허상에서 빨리 벗어나십시오. 


나는 지금 잠자고 있습니까, 깨어있습니까...

거듭난 믿음의 삶도 없이 이미 다 되었다 하며 

입술로만 '주여주여'하는 자입니까... 

아니면,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기에 

그 모습 그대로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사는 자입니까... 

부디, 이론과 정보를 머리로 많이 취했다고 

그걸 믿음이고 깨인 것이라 스스로 위로하지 마십시오. 

깨인 사람은... 

반드시, 깨어있다는 실상의 증거가 있습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신다면 당연히 

그리스도의 모습이 되어 실상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



랑별파파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

출처 :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
글쓴이 : 랑별파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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