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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영적 은사의 빛과 어두움... 그리고 분별에 대하여

삭개오2 2018. 7. 8. 20:39

은사라고 하는 것은 분명히 이 시대에도 존재합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절대주권)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고린도전서 12장 4-11절)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로마서 12장 6-8절) 


이렇게 기록되었듯 각각 은사가 존재하고 사람에 따라

주님의 절대주권으로 각기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에게

나누어주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은 이 은사 중에 반드시 

한 가지 이상이 틀림없이 나타납니다. 

억지로 뭘 해야지... 그런 마음이 아니라,

주님의 역사하심이 강하게 임하시는데,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주님의 의지로 나를 통해 은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에게 은사를 주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영광 받으시고, 피조된 사람들에게 덕을 끼치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기 위함입니다. 

즉, 마귀는 악한 교리의 누룩이나 마귀의 역사를 사람들에게

전파시켜 지옥으로 끌고 가는데 목적이 있듯,    

주님이 주신 은사는 거듭난 주님의 사람들을 통하여  

주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 사용하고

마귀와의 영적 전쟁을 위해서 반드시 은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은사가 폐지되었다는 교리를 만들고 

또 폐지되었음을 강하게 믿어서 영적인 뭐만 나타나면 모두 

귀신의 소행으로 몰아 신사도 혹은 마귀의 역사라고 주장합니다. 

마귀의 영을 받은 진짜 신사도도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귀신의 역사는 무조건 있다고 하면서 성령의 역사를 부정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이 시대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가짜인지 진짜인지 알아보는 방법의 기준은 진본입니다. 

진본이 없고 가짜만 난무하면 진짜를 가릴 수 없습니다.  

진본이 무엇입니까... 

진짜 성령님의 역사로 인한 은사가 진본입니다. 

그 진본과 비교해 그와 다른 것은 모두 가짜인 것입니다. 

아무리 비슷해도 가짜는 진본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진본인 성령의 은사는 분명 있습니다. 

은사 폐지론을 믿는 사람들은 이미 은사가 다 폐해졌다고 

교리에 의존하여 강하게 확신하므로    

어떤 영적인 뭐만 나타나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마귀의 역사나 신사도로 몰아가기에 힘쓰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성령의 은사는 없다! 라는 교리를 신봉하기에 

스스로 교리의 덫에 걸린 겁니다.  


진본이 없다고 교리로 확정했기에 다 가짜라고 정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직접 하신 말씀인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조차 부정하기 위해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이천 년 전 유대인들에게만 한정하여

전하는 것이고,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모든 말씀이

아무 상관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교리를 수호하기 위해 

예수님의 말씀마저 더하고 빼고 세대로 나눠서 

교리를 기준으로 하여 퍼즐을 맞추려고 합니다.     

그런 이유로 교리 주의자들은 성경을 세대 주의적으로 구분해서 

강제로 묶을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일을 크게 벌려놔서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고 있습니다.


누가 어떤 목사님께 말씀을 잘 전하신다고 했더니 

좋아하면서 다 주님께서 주신 능력이라고 대답합니다. 

즉 말씀의 은사를 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 목사님은 은사를 부정하는 분이고 

은사는 그 시대에 다 끝났다고 주장하는 분인데 말씀의 능력이

성령으로부터 왔다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모순을 보입니다. 

이렇게 성경을 교리에 의존하여 퍼즐을 맞추다 보면 

자기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스텝이 꼬이는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저 은사를 부정하기 위해 그 자리에 은혜라는 말로 대체하여 

주장합니다. 

은혜라는 말로 대체한다고 은사의 현상이 바뀌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의 개념 또한, 성령의 은사를 부정하니  

교리와 문서적인 지식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거듭남의 증거인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많이 읽을수록 믿음이 좋은 것이고 성화 되어간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분명한 성령의 열매가 안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이를 인정하려들지 않고 뜬구름 잡듯  

무조건 자신은 거듭났으며, 믿음으로 구원받았다고 강제로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위안이 되기에 그렇습니다.    

거듭남의 증거인 성령의 열매가 자신에게 안 나타나니  

거듭남과 열매와 순종을 말하면 단호히 부정하며 

무조건 행위 믿음이라고 정죄하게 됩니다.  

전적으로 교리에 의존하여

성령의 능력과 은사를 부정하고 지식 믿음을 소유하게 되면...  

열매, 순종, 십자가의 길, 좁은 길, 좁은 문, 회개, 자기 부인, 

성령으로 거듭남... 이런 말을 대단히 싫어하고 거부합니다. 

단지, 자신의 열매 없음을 무마하고 가려줄  

왜곡된 은혜와 보혈 피와 자유함만을 반복해서 주장하게 됩니다.

이것이 교리로 인한 지식 믿음의 한계이자 큰 폐허입니다. 

 

귀신의 능력을 받아 마치 주님의 역사인 것처럼 가장하는 경우가

매우 허다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분별력이 없이 지식적 교리에만 의존하여  

무조건 성령의 역사도 귀신의 역사로 몰아서는 안 됩니다.  

또한... 귀신의 능력으로 나오는 역사를 

성령의 역사로 굳게 믿고 따라가는 것은 더욱 위험합니다. 

이 시대는 성령의 은사보다,

귀신의 능력을 받은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그에 반비례해서 거듭난 사람들이 매우 적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길거리에 채이는 것이 무당 점치는 집들입니다. 

제가 하루에 걸으면서 마주치는 무당 점집이 수십 개가 넘습니다. 

이들은 공식적으로 나는 마귀의 제자인 무당이라고 

의도적으로 각인하기에 모르는 교인들이 없습니다. 

즉, 분별 자체가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당 옷이 아닌 정장을 입은 무당이 있습니다. 

이는 분별함이 없으면 매우 큰 낭패를 당합니다.   

안약을 바르지 아니하면 좀해서 분별하기 힘듭니다.

거듭남이 없으면 인간의 능력으로 분별하기에 

그 한계가 뚜렷합니다. 

지식에 의존하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떡하든 성령으로 거듭나야 내 영이 강탈당하지 않고 

온전한 믿음 생활 하다가 구원받는 것입니다. 


분별력이 없어서 귀신의 능력을 받은 자를 성령의 은사로

착각하여 찾아다니거나 따라다니게 되면

자칫하다가 자신도 귀신이 전이되어 귀신들림 증세가 나타납니다. 

이는 매우 조심해야 하는 것으로서 한번 귀신이 전이되면 

이를 떨쳐내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귀신에 의하여 사람의 의식과 마음 즉, 혼을 장악당했기에

내 의지로 여기서 벗어나려는 마음은 있지만, 귀신에 의하여 

이마저 훼방 받기에 귀신을 떨쳐내기 매우 힘들어집니다. 

이는 마치, 마약 중독자가 마약이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마약에 손대는 것과 같은 현상입니다. 


어떤 사람이

영적 갈증에 무슨 능력이 나타난다는 기도원을 찾았는데 

그 기도원 목사로부터 안수를 받은 후에

귀에서 뭔 소리가 들리니 성령을 받은 것으로 착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시도 때도 없이 이상한 소리가 들리며 마음이 불안해지고, 

환청이 자꾸 들리며, 불면증과 우울증이 찾아오고,  

어디 부분이 마비되며, 어디 누굴 찾아가서

자기가 갔던 기도원으로 데려가라는 소리가 들리고 

정신적으로 점점 피폐해지며 결국 이건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 

귀신의 역사임을 눈치채고

너무 힘들었다는 간증을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함부로 뭐가 나타난다는 기도원이나 사람을 찾아가면 

엄청난 낭패를 보게 됩니다. 

증명되지 아니한 기도원이나 그런 집회에 가면 정말 큰일 납니다. 

분명한 것은 성령의 은사보다 귀신의 능력이 훨씬 더 많이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성령님께서 분별력을 주시기에

바로 성령의 역사인지 귀신의 역사인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듭나지 않은 경우에는 한계는 분명히 있겠지만

성경에 기록된 말씀에 의지하여 

이를 분별하는 방법 외에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역사인지 귀신의 장난인지 어떤 말씀으로 분별하겠습니까...  

가장 쉽고 빠른 것이 성령으로 거듭나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생기는데 이는 성령님 즉 하나님의 성품으로서 거룩함을 나타냅니다. 

이 열매가 보이는지 안 보이는지로 분별해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가 어떤 것입니까? 


오직 성령의 열매

사랑 희락화평오래 참음자비양선충성과 온유절제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갈라디아서 5장 22-26절) 


이처럼 성령으로 거듭난 성령의 사람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숨길 수 없이 반드시 그 사람을 통해 밖으로 출력됩니다.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지속해서 계속 나타납니다.

이는 교인들 앞에서만이 아니라, 평소 일반 이방인들과 같이 있을 때도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이 있듯 반드시 밖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믿음이 삶이고 삶이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연유로 성령의 열매는 그 누구라도 금지할 법이 없으며 

이를 행위 믿음으로 몰아가는 교리 주의자들은

성령 훼방 죄를 짓는다는 것을 뼈에 사무치도록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가 있는 거듭난 사람은 이미 세상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을 박았기에 위 말씀에 기록되었듯 성령으로 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내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의지가 그 사람을 통해 나오는 것이기에 그 누구도 

성령님의 역사를 행위 믿음이라고 공격해서 금지해서도 안 되며

주님이 하시는 일이니 금지할 법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능력이 나타나는 사람이 성령의 사람인지 마귀의 사람인지 

분별하는 것은 이처럼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로 해야 합니다. 

은사는 사람에 따라 주님의 주권으로 이것저것 나눠주시지만, 

성령의 열매 아홉 가지는 모두 주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열매 자체가 주님의 성품이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능력을 보이는 사람이 교인들끼리가 아닌 평소 삶 가운데

성령의 열매가 지속해서 나타난다면 그 사람은 성령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교인들 앞에서는 뭔 능력을 보이며 친절하고 미소를 보여도

평소 삶 가운데 세상의 속성이 그대로 나타난다면

그는 성령의 사람이 아니라, 귀신의 능력을 받은 사람입니다.

예를 들면...

찾아온 여성을 사특한 말로 겁을 줘서 성 노예로 삼으려 한다든지,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화려한 삶을 추구하기 위해  

헌금한 걸 축재해서 구제 사역을 하지 않고 큰 집이나,

큰 세단승용차를 구입하며, 해외 사역을 핑계하여

여행 다니길 즐겨한다든지(해외로 진짜 사역 가는 사람은 제외), 

그에게서 나오는 말이나 개인적인 습성이

화하거나 거룩하지 못하고 좀 천박하다든지, 사람들을 마치

아랫것 부리듯이 반말로 명령하듯 자신의 권위를 높이며 

인위적으로 카리스마를 만들려고 한다든지, 

자기 맘에 안 들면 분노하기를 잘한다든지,

그 영혼을 노예 삼으려 자신을 외면하고 다른 곳으로 가면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긴다고 겁을 준다든지,

기본적으로 여러 면에서 교만합니다.

자기 외에는 다 가짜라고 하면서 자신의 존엄성을 높인다든지, 

어떤 예언을 하여 사람들을 불안하고 조급하게 한다든지, 

병을 고치고 귀신을 몰아낸다는 명분으로

심하게 신체를 학대한다거나

성경에 기록됨이 없는 행동을 보인다면 

이는 틀림없는 마귀의 종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위의 모든 행동은

성령의 열매와 전혀 관계없는 마귀의 습성일 뿐입니다. 

하오니 이런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이면 

경계하여 바로 돌아서야 합니다. 


그러나...성령의 사람은 그 수가 극히 적으나

틀림없는 성령의 역사로 병 고치고 귀신을 쫓는 종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위에서 나열한 귀신의 종들에게 있는 역사와는 전혀 다르게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기본 바탕이 되어 

매우 겸손하고, 영혼을 사랑하며, 분냄이 없고, 매우 공손하며, 

겸손하고 긍휼한 마음이 몸에 배어있으며 반말하는 경우가 없습니다. 

상대를 높여야 한다는 마음이 배어있기에 늘 섬기려고 합니다. 

그리고 들어온 헌금에 대해서는 극히 적은 필수 상황만 빼고 

전액 구제 사역에 힘쓰며, 개인적으로 착복하는 경우도 전혀 없고, 

큰 집에도 살지 않으며, 큰 승용차를 살 이유도 없기에 단순히

집은 잠자는 곳이고 승용차는 이동의 수단 정도로만 생각하므로 

큰 집이나 크고 비싼 자동차에 연연하지도 않습니다. 

이들은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화려한 삶을 이미 포기한 분들입니다.

이미 인간적인 탐심과 명예욕을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교인들 앞에서 뿐만 아니라 그의 평소 삶 자체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로 풍성히 채워져 있다면

안심하시고 찾아가셔도 됩니다. 


그러므로 열매는 매우 큰 분별의 척도이므로 반드시 평소에 벌어지는 

그 사람의 열매를 봐야 분별 됩니다. 

성령의 열매 없이 입술로만 주여주여 하는 사람들에게서 멀어지십시오. 

경건함의 모양(경건한 척)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에게서 반드시 멀어져야 합니다. 

경건의 모양(경건한 척)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성령의 열매)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디모데후서 3장 5절)


그들과 같이 어울리다가는 내 영도 도둑질당하여 그들과 똑같이

동화되어갑니다. 

그러하기에 그들에게서 멀어지라고 성경에 기록된 것입니다. 

이렇듯 성경 말씀만 충실히 대입해도 어느 정도 분별은 가능합니다. 

마귀의 역사를 성령의 역사라고 굳게 믿거나,

성령의 역사를 마귀의 역사라고 정죄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분별력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 사람의 열매는 보지 아니하고 어떤 현상에만 취하여 따라가다 보면 

반드시 자신도 구렁텅이에 빠지게 됩니다. 

어떤 영적인 현상보다 중요한 것이 성령의 열매입니다. 

영적인 현상으로 인해 구원받는 게 아니라,

성령의 열매가 있는 사람이 당당하게 구원받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는 능력을 보여도 성령의 열매가 없다면 

단호히 돌아서십시오. 

그는 성령의 능력으로 행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쫒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장 22-23절)


위에 기록된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한 자들...

이들이 거짓 선지자이며 마귀에게 부여받은 능력을 가지고

주님의 이름을 앞세워 영적인 일을 보인 자들입니다.

마귀의 능력으로도

얼마든지 귀신을 쫓아내고 병 고치는 흉내를 낼 수 있습니다.

사실 쫓아낸 게 아니라, 귀신이 도망간 것처럼 위장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귀신끼리는 싸우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는 성령의 능력과 열매가 없었습니다.

열매가 없기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 정죄를 받은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이 땅에 너무 많이 깔려있습니다. 

비록 그 수는 적지만

성령의 사람은 성령님이 주시는 은사로 사역을 행하기에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늘 따라다니며 열렸던 분들입니다.

이런 분들이 주님께 붙잡혀 구원받는 것입니다.

반드시 성령의 열매가 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평소 삶에서 늘 맺는 것이 

이토록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은 그날에 열매를 보겠다고 하셨고 만약, 열매가 없으면 

천사들을 시켜 지옥으로 보내겠다고 분명히 선언하셨습니다. 

즉, 성령으로 거듭나 성령의 통치를 받지 아니하면

다 지옥에 보낸다는 무서운 선언이십니다. 


거듭난 후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신다면...

그 사람을 통해 하늘나라 확장을 위해 반드시 일하십니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관망만 하며 놀고만 있지 않으십니다. 

성령의 능력을 교리로 제한한다고 제한되지 않습니다. 

그 누구도 금지할 법도 없으며 금지해서도 안 됩니다. 

이는 성령을 훼방하는 무서운 죄입니다.       

  

덧붙여서...  

거듭남이 없이 교리에 물들어 성경의 본질을 흐리고 변질시켜서

거듭남을 방해하고 구원을 아주 쉬운 것으로 미혹하는   

교리 주의자들도 반드시 경계하십시오.  


사랑하는 자들아 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세상에 나왔음이라 

(요한1서 4장 1절) 


PS-

교리 주의자들은

자신의 악함과 성령의 열매 없음을 정당화 하고 가리기 위해  

착한 사람도 세상에 많은데 그게 성령 받은 것이냐고 비아냥합니다. 

성령 받은 사람과 세상의 착한 사람의 구분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이는 성령의 열매를 세상의 착한 사람과 적당히 물타기 해서

그 가치를 폄훼하여 흐지부지하게 만드려는 의도입니다.

오해하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착한 사람과 성령 받은 사람은 전혀 다릅니다. 

착하기만 한 사람들은 어떤 영적 상황이 닥치면 해결 능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상항에 따라 거짓말도 하게 되며 인간의 기본적인 악한 속성이 

어느 때에든 꼭 올라옵니다. 

그러나 성령의 사람은 인내와 오래 참음과 절제의 열매가 있기에

인간의 기본적인 악한 속성이 거의 올라오지 않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그가 과거에 악한 사람이었어도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순한 양이 되어갑니다. 

분명한 것은...

악한 사람이었든 착한 사람이었든 마귀의 영을 받으면 

마귀의 속성이 그대로 전이되어 악하게 변해가고, 

성령을 받으면 성령의 거룩한 속성이 전이되어 거룩하게 변해갑니다.

세상의 원래 착한 사람과 성령으로 인한 거룩한 모습의 사람은 

비교 자체가 불가한 것입니다. 


교리 주의자들이 성령의 역사로 인한 구제 사역을 세상 사람들의 구제와 

똑같다고 물타기 하며 주님의 역사를 흐리려고 시도합니다. 

즉, 행위 믿음이라고 몰아 폄훼하기 위해 그런 것입니다.  

이 둘의 차이는 전혀 다릅니다. 

세상 사람의 구제는

누군가 모함하거나 무시하거나 핍박하면 바로 포기하고 주저앉지만, 

성령의 사람은 누가 아무리 우겨 싸더라도 포기하는 법이 없습니다. 

아니 그 안의 성령께서 하시기에 포기란 있을 수 없습니다. 

일시적으로 인간적인 마음으로 주춤해도 역시 다시 강행합니다.

그리고 구제사역 자체로 끝나는 게 아니라,

영혼 구원이 기본 목적이기에 임하는 자세 자체가 다릅니다. 

이 차이는 이방인의 그것과 비교될만한 것이 아닙니다.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랑별파파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

출처 :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
글쓴이 : 랑별파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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