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의 말씀 : 민 31:13-24
13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회중의 지도자들이 다 진영 밖에 나가서 영접하다가
14 모세가 군대의 지휘관 곧 싸움에서 돌아온 천부장들과 백부장들에게 노하니라
15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자들을 다 살려두었느냐
16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따라 이스라엘 자손을 브올의 사건에서 여호와 앞에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의 회중 가운데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
17 그러므로 아이들 중에서 남자는 다 죽이고 남자와 동침하여 사내를 아는 여자도 다 죽이고
18 남자와 동침하지 아니하여 사내를 알지 못하는 여자들은 다 너희를 위하여 살려둘 것이니라
19 너희는 이레 동안 진영 밖에 주둔하라 누구든지 살인자나 죽임을 당한 사체를 만진 자는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몸을 깨끗하게 하고 너희의 포로도 깨끗하게 할 것이며
20 모든 의복과 가죽으로 만든 모든 것과 염소털로 만든 모든 것과 나무로 만든 모든 것을 다 깨끗하게 할지니라
21 제사장 엘르아살이 싸움에 나갔던 군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율법이니라
22 금, 은, 동, 철과 주석과 납 등의
23 불에 견딜 만한 모든 물건은 불을 지나게 하라 그리하면 깨끗하려니와 다만 정결하게 하는 물로 그것을 깨끗하게 할 것이며 불에 견디지 못할 모든 것은 물을 지나게 할 것이니라
24 너희는 일곱째 날에 옷을 빨아서 깨끗하게 한 후에 진영에 들어올지니라
2. 시작 기도
아버지 하나님!
어제는 예약 없이 치과를 들렀다가 5시간을 보냈습니다.
상황에 반응하는 겉사람은 나를 요동케 하고 스스로 결정한 일에 대해 격노하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에도 나의 속사람은 주를 갈망하며 시간과 장소를 초월한 안식을 갈망하였습니다.
결코 무익하고 헛된 낭비가 아니라, 내 영혼의 근저에 안식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오, 주여! 나의 겉사람은 날마다 소멸하고 나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게 하옵소서.
내 영혼을 보혈로 씻어주사 정결하게 하옵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해 주소서.
정한 마음을 창조하사 내 속사람을 새롭게 하시며 강건하게 하옵소서.
하늘과 땅에서 내가 사모할 자, 주밖에 없사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 본문 주해
모세는 마지막 하나님의 명령으로 미디안과의 전쟁을 치른다.
미디안은 언약백성 이스라엘의 원수이자, 하나님의 원수이다.
미디안 족속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한 모압과 동맹을 맺어 이스라엘을 대적하였다(민 22:7).
또한 모압 여자들이 이스라엘 남자들을 꾀어 제의적 음행을 할 때에 미디안 여인들과 가담하였다.
미디안 여인들은 발람의 꾀에 빠져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한 것이다(16절).
모세는 여호와의 명령대로 이스라엘의 각 지파에서 천 명씩 선발하여 전쟁에 내보낸다.
엘르아살은 거룩한 기구들과 나팔을 가지고 종군하였고, 전쟁은 이스라엘의 대승으로 끝났다.
미디안의 다섯 왕과 발람이 죽임을 당했고 미디안의 모든 남자들이 다 죽임을 당했다.
이스라엘 군대는 미디안의 부녀들과 아이들을 사로잡고 그들의 재산을 탈취하여 모압에 있는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왔다.
한편 모세는 승리하고 돌아온 천부장과 백부장들에게 진노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이 미디안의 여자들을 다 살려두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군대가 포로로 잡아온 미디안 여인들은 발람의 꾀로 이스라엘 남자들을 바알브올에게로 유혹하였다.
그로 인해 하나님이 미디안을 원수로 여겨 이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결국 남자와 동침한 적이 있는 미디안 여인들은 다 죽임으로써 이스라엘 남자를 유혹한 여인들에게 심판이 임한다.
또한 미디안의 사내아이들도 다 죽임으로써 새로운 미디안 세대가 더 이상 나타날 수 없도록 조치된다.
그러나 아직 장성하지 못한 여인들은 이스라엘을 위해 죽이지 않았다.
그들은 첩이나 하녀로 삼기위해 남겨두었다.
19~20절에서, 모세는 전쟁에 참가한 자들을 정결하게 하도록 명한다.
전쟁에 나간 자들은 사람들을 죽이고 또 죽은 자들과 접촉함으로써 부정하게 되었다.
그들은 칠일동안 진영밖에 머물러야 하고,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몸을 깨끗하게 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민수기 19장의 부정성을 정결하게 하는 규례를 준용한다(19:11~12).
또한 이들이 데려온 포로들도 정결하게 할 것이다.
또 이들이 사용한 또 옷가지들, 가죽제품들, 염소(털)로 짠 것들, 나무로 만든 온갖 것도 부정을 벗겨내야 한다.
21~24절은 제사장 엘르아살의 지시대로 모든 노획물을 정결하게 한다.
이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내린 명령을 따른 것이다.
금, 은, 구리, 쇠, 주석, 납같은 불에 타지 않는 것은 불에 넣었다 꺼낸 후, 더러움을 씻는 물로 부정을 벗겨내야 했다.
또한 불에 타버릴 것은 무엇이든지 물에 담갔다가 꺼내면 정결하게 된다.
옷은 일곱째 날에 빨아서 깨끗하게 할 것이며, 그 후에 진영에 들어올 것이다.
이스라엘이 미디안과 치른 전쟁은 여호와의 전쟁이다.
그러므로 전쟁을 치른 후 사람과 물건, 포로로 노획물은 모두 정결하게 해야 했다.
이는 전쟁의 결과와 그로 인한 노획물은 오직 하나님의 것이 되도록 위함이다.
궁극적인 전쟁은 우주적인 전쟁이며 하나님과 사탄의 전쟁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죽임당한 어린양이 되셔서 전쟁에서 승리하셨다.
이는 죄로부터 승리이며 죄를 짓게 하는 마귀로부터 승리이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일 3:8).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는 사탄이 통치하는 세상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게 하였다.
그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된지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셨다.
이제 그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그와 함께 장사되며 그의 부활에 참여하면 하나님 나라를 누린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롬 4:25-5:1).
그러므로 날마다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건에 참여하는 자,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한다.
그는 자기의 옷을 벗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리스도로 옷 입는 자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 3:27).
또한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동시에 예복을 입은 택함 받은 자이다.
여전히 자기 옷을 입고 있는 자, 그는 하나님 나라를 결코 누리지 못하며 도리어 슬피울고 이를 가는 자가 되고 만다.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 22:14).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로 사탄의 세력은 무력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탄은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 완전히 멸망 받으며 따라서 여전히 활동한다.
사탄은 우는 사자가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듯이 믿는 자를 유혹하고 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벧전 5:8-9).
사탄을 대적하는 것은 세상을 향한 마음을 버리고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이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약 4:7-8).
대적자를 이기는 하나님의 은혜는 죽임당한 어린양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데 있다.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신 어린양은 짐승이 표상하는 사탄을 정복하며 그의 옷을 입고 그와 연합된 자도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한다.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계 17:14).
바울은 이러한 승리의 삶을 속사람이 새롭게 되는 삶이라고 하였다.
사도적 현실에서 겉사람이 당하는 상황은 사방으로 욱여 싸이고, 답답한 일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거꾸러뜨림을 당한다.
그러나 그의 속사람은 욱여쌈을 당하지 아니하고, 낙심하지 아니하고, 버린바 되지 아니하고, 아주 망하지 아니한다(고후 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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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겉사람이 당하는 환난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에 넘겨지는 사건이며, 그로 인해 예수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은혜의 사건이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10-11).
우리의 겉사람이 ‘날마다’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지면 그것은 ‘날마다’ 낡아진다(쇠락한다).
그로 인해 우리의 속사람, 곧 우리 안에 있는 예수의 생명은 ‘날마다’ 새롭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우리의 겉사람은 보이는 것에 반응하나, 속사람은 보이지 아니하는 생명의 근저이다.
14세기 영성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속사람을 ‘초탈’의 자리라고 불렀다.
‘겉사람은 감각기관을 통해 외부세계와 부단히 교섭하고 활동하지만, 속사람은 부동의 초탈을 유지하고 있다. 동물들처럼 오감을 외적 대상에게만 사용하는 겉사람과 달리, 속사람은 오감을 다잡아 더 높고 고귀한 것으로 향하게 한다’(‘마이스터 엑카르트의 영성 사상’ 중에서).
에크하르트는 겉사람을 뚫고 속사람에 이르는 길을 ‘돌파’라고 하였다.
돌파는 잡다한 피조물의 세계에 사로잡혀 살던 자신을 철저히 끊어버리고 자신과 세계와 하나님이 근저에서 하나이었던 경지에 이르게 한다.
속사람은 생명의 근저로써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하나님과 연합된 상태를 갈망한다.
이를 위해 인간의 영혼은 벌거벗고 순수하고 단순하고 모든 속성을 털어 버려야한다.
영혼이 입고 있는 거추장스러운 옷들을 벗어버리고 장식품들을 던져버리는 일이다.
이 옷은 우리가 의지하는 모든 것, 아니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곧 생명의 근저에서 하나님과의 연합을 가로막는 일체의 장애물, 추한 생각, 이기적 욕망, 일체의 잡된 생각과 관념, 모든 이미지들, 일상적으로 대하는 이것저것들, 심지어 성스럽다고 여기는 종교적 의무까지 떨쳐버리고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이 때 우리는 그리스도로 옷을 입게 되고 하나님과 연합을 경험하게 된다.
겉사람은 불가불 피조세계와 연대한다.
그런데 겉사람을 벗어버리는 일, 곧 모든 피조물에서 ‘돌파’하여 초탈에 이르는 길은 피조세계에서 도피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우리의 겉사람은 피조세계의 사물과 상황을 그대로 보지 못한다는 데 있다.
우리의 겉사람은 이기심과 욕심과 집착으로 인해 사물을 자기중심적으로 왜곡시켜 보게 한다.
속사람에 이르는 초탈은 이러한 집착과 소유욕을 제거하는 것이지 사물이나 세상사로부터 도피가 아니다.
하나님을 떠나 생명 없이 보는 피조물은 정녕 허무한 존재들이며 아무런 가치가 없는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겉사람은 맹목적이고 습관적인 힘으로 그것들에 집착한다.
초탈은 이러한 피조물에 대한 집착을 차단하여 그것이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겉사람이 낡아지면, 속사람으로 세계와 사물을 대하게 된다.
이렇게 ‘피조물에 대해 바로 서기만 하면’ 장소나 시간과 환경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바로 그 시간과 장소와 환경에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안식하게 하신다.
미디안에 대한 이스라엘의 승리는 겉사람의 승리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승리에 임재하실 수 없었다.
그래서 범죄한 이들을 처리하고 사람과 물건을 정결하게 하신다.
이를 통해 하나님이 그들에게 임재하시고 사람과 세계는 하나님께 속하게 된다.
곧 속사람의 승리가 완전한 승리인 것이다.
4. 나의 묵상
어제 선교사님의 소개로 구로동에 있는 치과에 들렀다.
오후진료가 시작되기 직전 2시가 조금 못되어 도착하였다.
이미 15명 남짓의 환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예약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갔었는데, 무작정 기다려야 했다.
1시간 30분이 지나서야 호명을 하여 갔는데, 인적 사항에 대해 자세히 묻고는 그만이었다.
이후로도 1시간 이상 기다려야 된다고 하였다.
그 사이 다른 사람이 자리를 차지해버려 바람도 쏘일 겸 밖으로 나왔다.
40여분을 보내고 들어갔는데, 아직도 순서가 되지 않았다.
다시 그 후로 1시간을 무작정 기다렸다.
3시간이 다 되어 가자,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였다.
나의 겉사람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고 답답해지고 격한 마음까지 올라왔다.
그렇게 시간 죽이기를 하다가 아내가 읽고 있던 에크하르트 영성에 대한 책을 폈다.
‘돌파와 초탈’ 부분을 읽어 가는데 철저히 겉사람에게 반응하는 나를 보았다.
세계와 사물을 자기중심으로 보며,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고 있는 나를 보았다.
사역의 성과, 사람들의 반응, 내가 바라는 상황의 전개들,
나는 철저히 겉사람에 사로잡힌 자이었다.
그 사이 속사람은 텅 비어 평정을 잃고 하나님이 없는 자처럼 행세하였다.
잠잠히 묵상기도를 하며, 회개의 눈물을 흘린다.
영원하지 않는 것들을 ‘돌파’하여 생명의 근저에 이르렀다.
시간과 장소, 환경을 초월한 하나님의 안식이 내게 임하였다.
하늘로부터 오는 평강과 기쁨, 감사의 눈물이 솟아났다.
3시간 반쯤 지나자 다시 호명을 하였다. 엑스레이를 찍고 다시 기다려야 했다.
진료를 마치고 안내를 받고 나오니 저녁이 다되었다. 5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다시 갈 일이 없는 치과이었으나 겉사람의 실체를 뚜렷이 보게 한 귀한 시간이었다.
돌아오는 지하철, 만원이었으나 마음의 평화가 가득 밀려왔다.
지하철 안에 있는 가득한 사람들, 그들의 겉사람은 스마트폰에 사로잡혀 있다.
스마트폰으로 화투를 치는 사람, 음악에 빠져든 사람, 스포츠를 보는 사람, 겉사람의 활동이 왕성하다.
그러나 그들의 목자는 사망이요, 무덤이 그들의 거처이다.
십여 년전 내가 사역하던 제자훈련원에 조준모교수가 와서 자작곡을 불렀다.
‘영원한 집’이라는 찬양인데 가사가 지금도 뇌리에 남아있다.
‘더 큰 평수를 위하여 (쉬지 않고) 달리는 인생.
편리와 안락이라는 삶의 목표를 굳게 세우고
필요의 충족이라는 진리를 추구하네.
느낌이라는 좌우명을 (빈틈없이) 따르는 인생.
명예와 지위라는 삶의 왕을 간절히 예배하고
자아의 실현이라는 진리를 추구하네.
죽음이 그들의 목자, 무덤이 그들의 영원한 집.
죽음이 우리의 목자, 무덤이 우리의 영원한 집.
순간을 살아가는 영원의 존재들,
순간을 살아가는 목마른 존재들.’
오직 겉사람을 왕성케 하는 인생들, 사망이 그들의 목자여 무덤이 그들의 집이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이 구원하셨다. 나를 구원하셨다. 그리고 나의 속사람 안에 거하신다.
시간과 장소, 환경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안식이 임한다.
“그들은 양 같이 스올에 두기로 작정되었으니 사망이 그들의 목자일 것이라 정직한 자들이 아침에 그들을 다스리리니 그들의 아름다움은 소멸하고 스올이 그들의 거처가 되리라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져내시리로다(셀라)”(시 49:14).
5. 묵상 기도
아버지...
이스라엘은 외적인 승리를 하고도 도리어 책망을 받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승리했으나 하나님이 거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겉사람에 충실한 나의 모습이옵니다.
참으로 어리석고 미련한 자, 여전히 겉사람을 따라 행하는 자입니다.
눈에 보이는 성과에 집착하며 속사람은 텅 비어 있나이다.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면 견딜 수 없어 합니다.
상황의 포로가 되어 낙망하고 원망하고 격노합니다.
오, 아버지...
오직 겉사람으로 사는 인생들이 허다합니다.
나도 그들 중에 있으니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자, 멸망하는 짐승이옵니다.
그런 자를 불쌍히 여기사 참으로 답답함 중에 던지셨습니다.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낙망과 원망과 격동이 일었습니다.
하오나 웬 은혜인지요! 당신의 긍휼이 부어졌습니다.
선각자를 통해 깨닫게 하시고 당신의 품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아버지...
날마다 예수의 죽음에 나를 넘기나이다.
세계와 사물과 상황에 반응할 수 밖에 없는 나를 십자가에 못박습니다.
결코 영원하지 않는 것들, 그것들에게 사로잡혀 있는 나를 끊어냅니다.
아들의 죽음에 넘겨져 아들의 생명으로 살게 하소서.
날마다 겉사람이 소멸되고 날마다 속사람이 강건하게 하옵소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눈은 소경이 되고 오직 당신의 눈으로 보게 하소서,
세계와 사물, 상황을 바로 보고 모든 시간과 장소에 현존하시는 당신 안에 거하게 하소서.
내 속사람을 하늘의 안식, 평화, 기쁨으로 채우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