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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땅에서 들리신 인자, `쳐다본즉 살더라!`(민 21:1-9)

삭개오2 2017. 6. 28. 19:00

1. 오늘의 말씀 : 21:1-9

1 네겝에 거주하는 가나안 사람 곧 아랏의 왕이 이스라엘이 아다림 길로 온다 함을 듣고 이스라엘을 쳐서 그 중 몇 사람을 사로잡은지라

2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만일 이 백성을 내 손에 넘기시면 내가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리이다

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가나안 사람을 그들의 손에 넘기시매 그들과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니라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을 호르마라 하였더라

4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5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6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7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2. 시작 기도

아버지...

부지불식간에 남의 탓을 하며 자기를 방어하는 자입니다.

아담의 본성이 뿌리깊게 박혀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자, 다만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바라나이다.

분주함이 가득한 채 평강이 떠난 자, 속히 주 앞에 엎드리옵니다.

어찌 죄와 부정성으로 오염된 영혼으로 말씀 앞에 서리이까?

내 영혼을 보혈로 씻어주사 정결하게 하옵시고, 정한 마음을 창조하여 주옵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사 진리의 영이 내 안에서 역사하게 하여 주소서.

하늘에서 오는 빛은 내 속의 어두움을 낱낱이 드러냅니다.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오니 죄가 나를 주관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3. 본문 주해

민수기 20~36장까지는 광야생활 40년이 끝나갈 무렵을 배경으로 한다.

민수기 20장에서 모세의 동역자 미리암과 아론이 세상을 떠난다.

모세는 본격적으로 약속의 땅을 향하여 전진하는데, 에돔 땅을 지나가야했다.

하지만 에돔은 모세의 정중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협박을 섞어가며 거절한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은 부득불 에돔 땅을 우회하여 가야 했다.

 

가나안 땅의 남쪽에 위치한 네겝에 거주하는 가나안 사람, 곧 아랏의 왕이 이스라엘을 공격한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과 벌인 첫 번째 전쟁이다.

아랏 왕은 이스라엘이 아다림 길로 온다함을 듣고 이스라엘을 쳐서 그들 중 몇 사람을 사로잡았다.

 

전쟁에서 패배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이렇게 서원하여 말한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 백성들을 넘겨주시면,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겠다고 말한다.

2,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리이다에서 멸하다’(, 카람)는 사람이나 물건을 하나님께 바치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만일 하나님이 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시면, 이 성읍을 다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서원한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호소를 들으시고 그 가나안 사람들을 그들의 손에 붙이셨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성읍들을 모조리 진멸하여 (하나님께) 바쳤다.

그러므로 그곳 이름을 호르마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호르마바침’(devotion)이라는 뜻이다.

 

21:1-3절은 언뜻 보면 문맥과 어울리지 않는다.

호르마는 가나안 땅의 남쪽 도시 브엘세바에서 동쪽으로 15km 떨어진 곳이다.

가나안 땅의 서 요르단 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호르마는 가데스에서 에돔으로 가는 이스라엘의 여정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초입에 이 말씀이 나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온전히 멸하여 바친다라는 호르마라는 지명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이스라엘은 아랏 왕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만약 승리하게 되면, 온전히 바치겠다는 서원을 하였다. 그리고 이 서원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호르마라는 이름을 설명하는 목표도 이루어졌다.

 

이스라엘은 스스로의 힘으로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께서 그 땅을 넘겨주실 때 차지할 수 있다.

그 때에 그들은 그 땅을 온전히 멸하고 그 땅을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신 땅, 그것을 이스라엘 자신이 취할 수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정복하기 시작한 가나안 땅은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예시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죽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성취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세상 임금을 멸하시고 그를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신다.

영생은 아버지와 아들을 아는 것이며, 세상에 대한 죽음과 동시에 하나님을 향한 삶이다.

아들의 죽음으로 주신 영생, 그것은 오직 하나님을 위해 다시 바쳐지는 생명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가 재림하실 때 그가 정복한 나라를 하나님께 바친다.

그때에는 최후로 멸망받을 원수인 사망을 비롯하여 모든 정사와 권세가 정복당한 때이다.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고전 15:24-26).

 

21:4-9절은 호르 산이 언급된 것으로 보아 20:22-29절에서 이어지는 말씀이다.

에돔 왕이 왕의 대로로 가는 것을 거절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에돔을 우회하는 길로 가게 되었다.

백성들이 에돔 지방을 피해가려고 호르 산을 떠나 홍해바다 쪽으로 돌아갔다.

길을 가는 동안 백성들은 참지 못하고 하나님과 모세에게 대들었다.

어쩌자고 당신들은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내어 이 광야에게 죽게 하는가?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마실 물도 없다. 이 저질의 음식은 이제 진저리가 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길을 견디지 못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들을 구원하신 역사까지 모독하며 광야에서 다 죽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들은 광야생활아 40년이 지나서도 원망을 그치지 않는다.

나아가 하나님이 주신 만나까지도 하찮은 음식’(문자적으로 경멸할만한 음식’)이라고 멸시한다(11:6 참고).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원망과 멸시는 즉시로 불뱀의 심판을 불러왔다.

여호와께서 불(스랍) 뱀을 백성 중에 보내어 많은 백성들이 불뱀에 물려 죽었다.

그러자 백성들이 모세에게 와서 자기들의 죄를 회개하며 불뱀이 물러가도록 하나님께 중재해줄 것을 간청하였다.

 

여호와께서 백성들을 심판하셔서 보낸 뱀은 문자적으로 스랍 뱀’(불뱀)이다.

광야에는 악하고 위험한 뱀들의 영역이며 거기에는 특별히 스랍 뱀들이 있었다.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스랍 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8:15).

이사야 62절에서 스랍은 날개달린 천사이며, 스랍 뱀은 날개달린 뱀을 표상한다.

그리고 광야에서 날개달린 뱀’(스랍 뱀)은 보통 뱀보다 더 나쁘다.

 

본래 광야에는 스랍 뱀과 전갈등 위험하고도 무시무시한 존재가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위험한 광야에서 안전하게 지내온 것은 하나님께서 위험한 광야를 지나게 하셨기 때문이다(8:15).

 

그러나 그들이 그 하나님을 원망하고 멸시하자,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험한 광야로 내모신다.

곧 스랍 뱀들이 그들을 물어 죽게 만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중재를 받으시고, 모세로 하여금 스랍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라고 하신다.

이에 모세가 구리로 뱀을 만들어 기둥에 달아놓았다.

그러자 뱀에게 물렸어도 그 구리 뱀을 쳐다본 사람을 죽지 않았다.

 

하나님이 명하신 구리 뱀은 그 자체로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살아있는 스랍 뱀에 물린 자가 어떻게 생물이 아닌 구리 뱀으로 인해 살아나겠는가?

그들이 죽지 않고 살아난 것은, ‘쳐다본즉 살리라는 말씀에 순종함으로 나타난 효력이다.

구리 뱀 자체에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살리는 효력이 있는 것이다.

이것을 오해한 이스라엘은 후에 구리 뱀을 느후스단’(‘구리로 만든 것’)으로 섬겼는데, 히스기야 시대에 멸절되었다.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왕하 18:4).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생활의 막바지에서 재앙을 당한다.

이들은 오직 은혜로 구원받았으나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고 다시 불신앙으로 인해 심판을 받는다.

그들은 길에 대한 원망에서 시작하여 구원에 대한 회의,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만나를 멸시하기에 이른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경험한 구원이다.

이는 열 가지 재앙이 보여주듯 전능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사건이다.

이 같은 경험은 이스라엘 백성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루어진 일방적이고 비인격적인 사건이다.

하지만 구원의 극적인 경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을 아는 인격적인 신앙으로 진전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6:6-7).

 

비인격적인 신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음으로서 인격적인 하나님이 되신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구원을 경험한 이스라엘이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언약 안에 거하게 하신다.

이렇게 그들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질 때 하나님은 인격적인 신이 되시며,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주신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보화요,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이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19:5-6).

 

이렇듯 하나님의 구원은 단회적으로 끝나지 않으며,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 즉 말씀과의 만남의 관계에서만 존재한다.

이로써 출애굽 구원의 경험은 가나안 땅에 이르는 약속의 성취를 가져온다.

 

가나안 땅에 이르는 약속의 성취는 오직 하나님이 친히 이루어 가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에 순종하는 쉐마를 통해 하나님의 언약 안에 거하면 충분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들을 시험하시며 그 시험은 극한적인 상황으로 내모는 것이다.

이 시험을 통해 그들이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만을 인정할 때, 그들이 들어가는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기업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극한의 상황에서 번번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고 고발하였다.

에돔을 우회하는 길로 들어서 그들은 마음이 상하여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였다.

무엇보다 구원에 대한 회의와 하나님이 주신 단조로운 음식을 멸시하였다.

사실 오늘날 길이 보장되어 있고, 다양한 메뉴의 식사를 할 수 있고, 따뜻한 방이 있는 우리들은 이스라엘의 행태를 결코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참혹한 궁지에서 한 조각의 빵이나, 한 접시의 국이나, 굶어죽는 위기에서 건져주는 것, 그것을 하나님의 보호로 이해한 사람은 결코 그것을 잊을 수 없다.

어제 차드와 인접한 니제르, 차드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니제르, 그 나라의 난민 53명이 사하라 사막에 버려져 죽었다는 소식에 가슴을 쳤다.

 

불뱀과 전갈이 득실거리고 먹을 것이 없이 하나님의 공급하심으로 광야를 지나온 이스라엘, 그들에게 하나님의 보호하심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각별한 경험이다.

그러나 또다시 맞이한 고통스런 현실 속에서 그들은 다시 하나님을 원망하고 고발하기에 이른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보호하는 손을 놓아버리자, 그들은 광야의 스랍 뱀에 물려 죽임을 당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모세의 중재를 들으시고 구리 뱀을 달게 하시어 그것을 쳐다본즉 살게 하신다.

 

쳐다본 사람마다 살아났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나 유효하던 하나님의 구원의 행위가 최초로 개개인에게 행하여졌다

이제는 하나님의 구원의 행위가 백성 사이에서 구별이 생긴 것이다.

쳐다본 자는 광야의 위험에서 살아나고 쳐다보지 않은 자는 광야의 위험에 노출되어 죽어간다.

 

모세가 기둥에 단 구리 뱀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시한다.

하늘에서 오신 인자, 하나님의 아들은 모세가 뱀을 든 것처럼 땅에서 들리셨다.

그리고 그를 믿는 자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14-15).

 

인자가 들리는 것은, 그의 죽음과 장사됨, 부활과 승천의 사건, 곧 메시아적 행위로서 복음을 예시한다.

그가 땅에서 들리는 것은 그가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을 뜻한다(12:32-33).

인자가 들리는 것은, 그가 부활하시어 하늘로 올리우셔서 주가 되시는 것을 뜻한다(4:8).

그리고 승천하신 주는 진리의 영, 성령을 보내주셔서 진리(내가 그)를 알게 하신다(8:28, 32).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12:32-33).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4:8).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8:28)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8:32).

 

기독교의 구원은 비인격적인 사건의 경험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구원을 지속하는 삶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에서 가능하다.

신비적이고 단회적인 경험이 아니라 날마다 하나님과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일상적인 경험이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살아갈 때에 비로소 광야의 삶에서 해를 당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된다.

 

그렇다! 구원받은 자, 곧 영생 얻은 자의 삶은 위험한 광야를 지나는 삶이다.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에 비로소 멸망당하는 원수, 곧 사망이 그에게 역사한다.

날마다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지 아니하면 광야의 불뱀에 물릴 수밖에 없다.

광야의 현실은 하나님 품을 떠나면 시험을 피할 수 없다,

 

하나님이 정하신 길을 원망하고, 구원의 은혜를 멸시하고, 날마다 먹는 생명의 양식을 경멸한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대제사장 그리스도는 그런 우리를 위해 중보 하신다.

그리고 구리 뱀을 본 자마다 살아나듯, 날마다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건에 연합된 자는 살아난다.

그는 말씀 앞에서 자기의 무력함과 죄성과 부정성을 깊이 각성하고, 애통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장사됨, 부활에 연합되어 구속의 은총을 누리며 새 생명으로 살아간다.

 

이렇듯 구원은 모두에게 은혜로 주어지지만 구원의 풍성함을 누리는 것은 개인적으로 주어진다.

날마다 아들을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 아들이 죽음으로 주신 특권 팔레시아에 복종하는 자, 그는 쳐다본즉 사는 자이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7:25).

 

 

4. 나의 묵상

나는 하나님의 구원을 크게 오해한 자이었다.

단회적인 구원의 사건에 머물렀던 비인격적인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러다보니 가시적이고 신비적인 경험을 계속해서 추구하였다.

비인격적인 신앙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그것을 재현하기 위해 기도원을 전전하기도 하였다.

 

내 영혼은 갈수록 주리고 목이 말랐다.

땅에 속한 모형과 그림자의 신앙은 마치 신기루와도 같았다.

잡고자 하나 잡을 수 없고 얻고자 하나 얻을 수 없는 신앙,

야곱의 우물을 전전하였으나 다시 목마르고 마는 자이었다.

그런 자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임했다.

 

쳐다본즉 살더라!

심판의 광야에서 생명의 말씀이 계시되었다.

모세가 단 구리뱀은 인자가 들리신 구원의 사건이었다.

아들의 죽음과 무덤, 부활에 연합한 자가 되었다.

메시아적 행위로써 복음에 연합되어 새 생명을 얻은 자 되었다.

 

단회적인 구원, 비인격적인 신앙에서 건짐 받았다.

이제는 날마다 구리 뱀처럼 땅에서 들리신 인자를 쳐다본다.

그의 죽음과 무덤, 부활과 승천의 사건에 연합된다.

구원의 감격 속에서 하늘의 만나, 생명의 떡을 먹으며 주께서 정하신 길을 간다.

 

나는 오늘도 넘어질 뻔 하는 자이다.

알람을 맞추어놓고 새벽 일찍 일어났으나, 아내가 피곤해보이니 좀 더 자라는 말에 두 시간을 훌쩍 넘겨버렸다.

일어나자마자 더 자라고 했던 아내의 말이 생각나 나를 격동시켰다.

분명 내가 더 자놓고, 탓을 하는 순간 내 속의 부정성이 걷잡을 수 없이 올라왔다.

어쩌면 아담의 죄악과 부정성이 내 안에 가득한지...!

 

분노와 노여옴의 부정성에 사로잡혀 관계를 파괴할 자!

그런 자가 엎드려 은혜를 구한다. 부정성을 씻고 새 옷을 입는다.

위험한 불뱀이 가득한 광야의 일상, 쳐다보니 살아난다.

아들의 죽음과 무덤, 부활에 연합되어 새 사람의 옷을 입는다.

 

 

5. 묵상 기도

아버지...

구원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 자이었습니다.

비인격적인 신앙으로 평생을 살려고 하던 자, 내적인 고통이 컸습니다.

처음 구원의 경험을 재현하고자 기도원을 전전하며 종교성을 고양시켰습니다.

생명을 알고 하나님과 관계 안에서 사는 인격적인 신앙에 무지했습니다.

, 주여! 그런 자를 심판하시고 영생의 길로 이끄심을 감사하나이다.

 

, 아버지...

하늘에서 오신 인자, 모세가 뱀을 든 것처럼 들리셨습니다.

아들의 죽음과 무덤, 부활에 연합되어 새 생명의 삶을 주셨습니다.

날마다 말씀 앞에서 나의 죄악과 부정성을 보며 구속의 은총을 힘입게 하시나이다.

아들을 힘입어 당신의 품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그 품에만 있는 안식과 평강, 기쁨으로 지상적 현실을 살게 하시나이다

 

아버지여...

여전히 연약한자, 위험하고 건조한 광야에서 시험에 드는 자입니다.

유혹의 욕심을 따라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이 제 안에 있나이다.

진즉 벗어버려야 할 옛 사람의 옷을 여전히 걸치고 있습니다.

광야의 위험, 뱀에 물린 자, 구리뱀을 쳐다본즉 사나이다.

시험에 든 자, 땅에서 들리신 아들을 쳐다본즉 사나이다.

오늘도 아들의 죽음 안에 거하여 아들의 생명으로 살기만을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출처 : 말씀묵상선교회
글쓴이 : 굿뉴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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