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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진짜 성도의 삶이란...

삭개오2 2017. 1. 14. 02:19

진짜 성도의 삶이란...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벧후 3:12)

 

성도는 이 땅에 속해 이 땅에서 나오는 쾌락의 즐거움에 빠지지 않고 

성령 안에서 누리는 신령한 즐거움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성도는

이런 신령한 즐거움에 사로잡힘으로 인해 즐거워해야 합니다.

비록 자신에게 고난과 역경이 다가온다 하여도 말입니다.

 

왜냐하면 진짜 성도는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가지 않는

하늘에 속한,

그리스도께 속한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

 

진짜 성도는 주님의 소유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를 복음의 빛안으로 들어가게 하신

아름다운 덕을 전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소유자가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성도에게는 즐거운 것입니다.

자신의 주인이 든든하다는 사실이 날마다

기쁨의 존재로 살아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돌아온 탕자가 아버지의 품안에서 조건없는 죄용서와 든든함을 경험했기에

그는 이전의 혼란스럽고 유유자적하고 허송세월을 보내는 육신이 아닌

아버지의 자녀로서 아버지가 소유한 모든 것으로 누리면서

사는 것처럼 말입니다.

 

얼마나 재미있고 신나는 일인가요!

이전의 탕자는 자신이 주인이 되어서 세상에 살았지만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온 탕자는 진정한 아들로서

아버지의 소유된 자식으로서 즐겁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즐거운 것입니다.

시작과 종말을 알고 기다리며 살기에 말입니다.

시작하신 분이 종말에도 일하시기 때문에

믿음이란 즐거운 것입니다.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주님이 시작하셨으면

종말에도 주님은 여전히 시작처럼 일하십니다.

처음과 나중으로의 자격으로서 말입니다.

 

진짜 성도는 처음과 나중이 되시는 주님의 것으로 사는 존재이기에

세상으로부터 오는 두려움과 근심 그리고

염려와 걱정 속에 지내는 자가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은 알파와 오메가되시는 주님을

모독하는 사단의 속임수와 계략에 말려든 것입니다.

 

진짜 성도는 원래부터 주님의 것이기에

세상의 모욕이나 핍박 속에서도 복음으로 인해 

여전히 주님으로 인한 찬송이 나오는 존재입니다.

 

왜? 성도의 핍박이 주님의 핍박이요,

성도의 고난이 주님의 고난이요,

성도의 영광이 주님의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도가 하나님께 받은 복음으로 인한 복입니다.

 

비록 세상은 주님의 것인 진짜 성도를 향하여

핍박을 하고 모욕을 퍼붓고 있지만 말입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마 5:11)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마 5:12)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이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 사셨지만

항상 영으로 사셨습니다.

영으로 사시는 예수님에게는 육신으로 오는 슬픔과 고통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에게는 자기를 좇는 제자들(믿는 자들)에 대한

근심과 염려만 있었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셨고,

성령으로 출생하셨고,

성령으로 늘 충만하셨기에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과 영광과 기쁨으로 충만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예수님의 영으로 사시는 것을

우리의 자녀에게도 십자가 안에서 주신 것입니다.

 

죄인의 육이 죽는 방식으로

그리고 영이 사는 방식으로 자녀들에게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보내신 성령이

하나님의 자녀를 늘 하루 24시간,

1년 365일 내내 역사하시고 충만케 하신다면

그는 예수님과 닮은 영의 방식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있는 성도를

약속의 말씀으로 손잡아 주지 않으시면

영의 방식이 아닌 육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주인이 우리 자신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이 영의 방식으로 산다고 해서 살아지는 것이 아니고

육의 방식으로 산다고 해서 살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앉고 일어섬이 자신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시 139:1)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족하시오며.. (시 139:2)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시 139:3)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시 139:4)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시 139:7)

 

진짜 성도라면 늘 자신의 입장을 버리고 예수님의 것으로

하나님의 입장을 영의 방식으로 성령의 도우심을 고수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남기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아버지여, 나(아들)의 뜻대로 하지 마시고 당신의 뜻대로 되기를"

 

예수님의 기도제목은 항상 이것이었습니다.

예수님 자신의 입장이 아닌 약속의 하나님 입장에서

늘 생각하시고 사역하시고

골고다 언덕 십자가의 죽음까지 성령으로 올라가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마 12:50)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막 14:36)

 

이렇게 주님의 것으로서의 믿음의 구조가

성령 안에서 형성되어 진다면

구약의 여호와의 날이 임하기를 간구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주님의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간구하고 사모해야 합니다.

 

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사막의 신기루이기 때문입니다.

땅과 공간 속에 무엇인가 있는 것처럼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키는 신기루를 좇는 세상이 아닌

그것이 거짓이고 가짜이고 허상이고 환상임을

주님의 것으로 깨닫고

주님의 날을 사모하며 이 땅을 하늘나라의 방식으로 살아야만 합니다.

 

비록 별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구이지만

이 지구도 어느 한 순간에 주님의 약속에 의하여

하늘의 새 것으로 우리 눈앞에서 사라짐을 믿기에

주님 다시 오시는 날을 준비하고 기다리면서

믿음의 항해를 기분좋게 여는 것입니다.

 

오늘이라는 시간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회의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날마다 동행하며 주님의 날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jeremiah300

 

출처 :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
글쓴이 : 랑별파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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