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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알고 있는 형 이야기(내려놓음편)

삭개오2 2017. 1. 7. 20:27

알고 있는 형 이야기.

 

그 형은 좀처럼 자기 주변 사람을 의심하지를 않고 말을 곧이 곧대 로만 믿는 형이다.

 

나는 그의 순진무구함이 좋긴 했지만, 너무 고집스럽고 답답한 면이 짜증날 때가 오히려 더 많았다. 그의 주변에는 친구가 많긴 했지만 그의 바보 같은 면을 이용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너무 답답해서 형 도대체 왜 그래? 왜 맨날 당하고만 살아?” , 그게,,, 요즘은 흥이 안나, 병신춤도 흥이 나야 하는데, 요즘은 흥이 안나” “알면서 모르는 척 해줄수록 더욱 기승기승해지는 그들을 보면, 춤을 추다가도 멈추고 싶어.”                        

 

가슴이 먹 먹 해지는 나를 보고 형이 나지막하게 하는 말너는 잘 몰라, 남의 마음을

아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나는 그래서 나하고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온 사람들의 모습을 되도록 이면  안 봐

 

 아니 그러면, 형은 그걸 어떻게 알아? 남의 마음을?

 

, 그건, 불필요한 욕심이 없으면 돼, 나도 어릴 적에는 명예욕이 있었지, 근데 이렇게 되고 보니, 자연히 명예욕을 내려놓게 되더라고, 그리고 남들보다 성욕이 강해, 근데 그것도 깨끗이 인정하고 자신의 과거를 반추하면서, 계속 절대진리에 의존하며 사물을 제삼자적   입장 에서 자신과 타자를 관찰하니 하나하나씩 보이기 시작하더라고 실제적인 아름다움이

 

욕구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야, 절대로,,, 그걸 변형시키는 무엇인가가 문제지. 그런데, 안 좋은 욕심을 버리면 보다 멀리 그리고 정확히 볼 수 있어, 그런데 그게 무척 고통스러워,,, 나는 그게 힘들어서 표정이 안 좋다는 말을 들으면서 여태까지 지내왔지

 

그 형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나쁜 느낌과 행동은 일정한 향기 일정한 패턴이 있어 전문용어로는 악의 진부함이라고 하는데 몹시 단조로워.  그 느낌은 시공간을 초월하지. 사람마다 같은 소리를 내 심지어는 표정도 동일하지 그 섬뜩한 느낌. 그게 싫어서 그 느낌이 싫어서 처음에는 많이 싸웠었지, 그런데 이젠 알아. 맡겨야 한다는 것

그게 무슨 뜻이야? 맡겨야 한다니? (다음에 계속) 신디로퍼 True colors.

 

맡겨야 한다는 것은 창조주에게 그를 맡겨야 한다는 것이지, 내가 모든 것을 알려주고 가르쳐주려고 하기보다는 모든 사람을 그 사람답게 만드는 창조주의 선하심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

 

근데 왜 거기서 형이 당하고 있어야 해? 나는 그게 이해 안 간다는 거야

 

그건 조금 내 방식으로의 믿음이긴 한데,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셨던 것에 대한 조금이나마 흉내를 낸다 할까, 나는 내가 사랑이 그렇게 많은 사람이 아닌 것을 잘 알아.

그래서 모든 것을 참고 견딘다는 성경의 문맥이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의 방식이 아닐까 싶어서 따라 할 뿐이야. 그게 내 원 뜻 이었는데 그 후 사람들과 여러 번 교감하고 숙고해서 얻은 결론은 창조주께서는 나의 삶 또한 생각하시며, 환경과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도 내 이웃뿐만 아니라 나도 모르는 나의 안 좋은 부분과 상처를 고쳐주시는 분이라는 점이야.

 

간단히 말하면 내가 잘해본답시고 창조주께서 간섭하심을 막는 경우가 생기면 안 된다는 뜻이야. 타인의 자유의지의 존중과 창조주의 간섭하심에 대한 맡김의 2가지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데 있어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난폭하고 사나울까 하는 사람들도 시간이 흘러 남자답고 매너 있는 사람으로 변하기도 하고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소극적일까 하는 사람들도 남들을 배려하며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으로 변하기도 하는데 이는 한 사람의 힘으로는 쉽지 않아, 다 세월의 흐름에 맡겨진 그 사람의 자유의지에 대한 그분의 손길의 힘 때문이지.

 

결국 얼마나 그분의 선한 손길에 자유의지를 맡기느냐의 싸움이야

 

모든 것을 다 아시는 그 분만이 나도 모르는 나를 더 나답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더 많이 아시는 그 분께 그분의 선하심을 믿고 맡기는 것이 결국은 가장 안전한 길이고 현명한 길이라는 것은 성경에서도 말을 하고 있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나만의 방식을 많이 내려놓게 되는 나를 발견하면서도 느낄 수 있어.

 

그렇게 나 자신을 내려놓고 사람들을 보게 되면 더 많은 것을 보게 되는데, 사랑의 차원의 측면을 생각하면서 보게 돼.

 

“사랑의 차원이라니?”(다음에 계속)

 흐르는 곡 Ebony & Ibory 배경 그림 Henry Ossawa Tanner 감사를 드리는 가난한 사람들   The Thankful Poor

 

출처 : 예수님께 이끌리는 사람들
글쓴이 : 참자유를위하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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