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해서 아버지에게 찾아와서 유산을 내놓으라고 행패를 부리는 아들이 있다면 배은망덕한 인간이 틀림없다. 그래서 이런 사람이 있다면 주변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으며, 가족들로부터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그러나 늙고 힘없는 아버지입장에서 보면 난처하기 이를 데 없다. 문을 잠그자니 또 다른 심술을 부릴 게 틀림없고, 열어주자니 막장드라마를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세상의 자녀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도 있다. 하나님을 찾아오는 방식이 바로 기도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듣기 싫어하는 기도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위의 불효막심한 아들과 다를 게 없다. 그래서 오늘은 하나님의 마음을 거스르고 불편하게 하는 기도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다.
1. 욕심을 채우는 기도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오 다오 하느니라(잠30:15)
위의 잠언에 나오는 거머리는 누구인가? 바로 탐욕으로 가득 찬 사람을 말하고 있다. 성경은 탐욕이 우상숭배라고 말하고 있으므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귀신에게 사로잡혀 있는 좀비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네 교인들이 하는 기도의 내용을 잘 살펴보라. 새벽기도회나 심야기도회에서 하는 기도의 목록은, 죄다 담임목사의 목회성공을 추구하는 기도를 시작해서 자신과 가족들의 세속적인 축복을 채우는 기도로 도배하다시피하고 있다. 이들은 기도가 자신들의 욕망을 이루는 수단으로 잘못 알고 있는 셈이다. 그게 하나님의 뜻인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의 내용은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이 대표적이다. 주기도문에서 그런 기도를 하라고 요청하셨는가? 주기도문에는 하나님을 부르고 찬양하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기도를 요청하신다. 그리고 죄의 용서와 함께 악한 영에게서 싸우는 능력을 공급받게 해달라는 내용과, 악한 영의 손아귀에 빠졌으면 구해달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관심 갖는 기도의 목록이라면 세상의 필요만을 채우는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는 게, 그나마 세상적인 목록의 요청에 불과하다. 예수님은 먹고 사는 일에 아무 걱정과 염려를 말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어련히 자신의 자녀들이 먹고 사는 문제를 책임져 주지 않겠느냐고 반문하시면서 말이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는 담임목사와 교인들의 탐욕을 채우는 기도를 주구장창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이런 기도에 하나님의 응답이 내려오겠는가? 그래서 기도응답이 없는 기도회에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는 이유이다.
2. 자기만족의 기도
자기만족의 기도는 자신의 의를 드러내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도하는 것을 말한다. 집에서 가까운 교회를 마다하고 먼 곳의 자기교회에 나와서 기도하는 것도 목회자나 다른 교인들의 시선을 의식해서이다. 교회에서 무거운 직분을 맡은 자들이 그러하다. 그들은 자신이 새벽기도회에 나왔다는 눈도장을 찍기 위해 참석하는 것이다. 또한 성경에도 없는 것을 자의적으로 만든 일천번제 기도회나, 작정기도, 금식기도 등의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동반하는 기도도 자신의 희생행위를 드러내어 하나님을 옥죄는 수단으로 삼는 기도방식이다. 이런 기도행위는 무당들이 하는 기복신앙에서 교회 안에 파고 들어왔다. 무당들은 목욕재계하고 이른 새벽에 기도하거나 많은 돈을 내어 제물을 차리고 치성을 바쳐서 기도하는 것을 주문한다. 백일기도 천일기도가 여기에서 나왔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 집에서 기도하는 것보다 새벽에 교회에 나와서 기도하는 것이 더 믿음을 보이며, 헌금을 드리면서 기도하는 것이 빈손으로 기도하는 것보다 영험하고, 금식하면서 기도하는 것이 밥을 먹으면서 기도하는 것보다 응답이 신속하게 내려올 것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형식적인 신앙행위를 보기 이전에, 깊은 속내와 동기, 목적을 불꽃같은 눈동자로 살펴보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기도가 자신의 희생적인 종교행위를 자랑하고 다른 이들에게 칭찬받고 인정받으려는 행위이라면 하나님 앞에 가증스러울 뿐이다. 그래서 그런 기도는 아무런 하나님의 응답을 기대할 수 없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그랬다. 그들은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며 기도했고,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으며, 사람들이 우글우글한 시장에서 큰 소리로 기도하기를 즐겼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독사의 새끼라는 저주를 퍼부으셨다. 독사는 귀신의 또 다른 이름이다. 결국 그들의 기도행위는 하나님께 한 것이 아니라, 희생행위를 앞세워서 자신을 자랑하기 위한 종교행위에 불과했던 것이다.
3. 형식적인 기도
형식적인 기도는, 말 그대로 마음이 들어가 있지 않는 기도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식사기도가 형식적인 기도이다. 안하면 찝찝하고 다른 사람이 교인들이 보고 있으니까 습관적으로 하고 있다. 시끌벅적한 삼겹살집에서 큰소리로 식사기도를 하는 것은 그야말로 코미디가 따로 없다. 필자는 예전에 기도훈련을 하기 전에 식사기도를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하고 있다. 그러나 형식적인 기도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며 마음을 드리고 있다. 그러나 기도하기 어려운 분위기라면 주저 없이 생략하거나 다른 이들에게 각자기도를 요청한다. 우리네 교회에서 여는 각종 기도회에 참석하는 것도 형식적인 기도가 되기 십상이다. 새벽기도에 참석하기 위해 일찍 일어나서 오가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인다. 그러나 정작 기도하는 시간은 1,20분에 불과하다는 게 이상하지 않는가? 이 같은 모습은 새벽기도에 참석했는지가 중요하지, 하나님께 마음을 쏟아부어가며 기도하는 게 중요하지 않다는 증거이다. 이런 기도를 평생 하는 교인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들의 기도는 응답이 없으며 영혼이 건조하며 냉랭하고, 삶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는 증거나 변화, 능력이나 열매가 없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형식적인 기도행위에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당신의 기도가 응답이 없으며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가 없다면 위의 세 가지 기도 중에 하나였을 것이 분명하다. 기도란 내 영혼과 하나님의 영이 깊고 친밀하게 교제하는 통로이다. 그래서 쉬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가 필수적이며, 찬양하고 감사하며 회개하는 기도가 뒤따라야 한다. 하나님은 그런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며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싫어하는 기도를 그만 하시라. 어차피 시간방비, 돈 낭비, 에너지 낭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출처 : 다음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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