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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은밀한 덫

삭개오2 2017. 1. 2. 22:13

은밀한 덫

 

 

 

 

악한 영은 우리를 직접 지옥으로 끌고 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옥에 가도록 유도 할 수는 있습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롯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이 말씀을 보면

악한 영은 우리의 생각의 영역에 영향력을

끼칠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아담과 하와의 경우

하나님의 손에 직접 빚음을 받은

가장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또 특별히 받은 존재임에도

악한 영의 꾀임에 스스로의 손으로 선악과 를 따서

입에 넣는 오류를 범했습니다.

 

만약 악한 영이 직접 선악과를 따서

하와의 입을 억지로 벌려 그 입에 선악과를 넣어서 먹게 하였다면

하와의 죄는 사함을 받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악한 영은 늘 사람들에게 접근하여

사람들 스스로 악한 일을 하도록 그 마음에 생각을 집어 넣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깨서 말씀으로 무장하고

우리안에 솟아나는 수많은 생각들 가운데

무엇이 하나님의 뜻이고

무엇이 내 뜻인지

여기에서 내 뜻은 결국 하나님의 뜻과 반대 되는 것이므로

악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내 생각은 늘 악하며

자기 중심의 생각은 늘 하나님과 반대되는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여야 합니다.

 

악한 영은 사실 누가봐도 악한 것으로는

우리를 꾈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어느날 악한 영이 교회에 잘 다니는 사람에게 접근하여

지나가는 사람을 죽이라는 생각을 넣는 다면

그 사람은  "내가 미쳤나? 왜 이런 생각을 하지?"

하면서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성도를 무너뜨리기 위하여

악한 영은 더욱 교묘한 수법으로 성도의 마음에 파고 듭니다.

 

많은 예들이 있지만 저는 오늘 두가지를 다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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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람....

 

우리는 교회에서 이루어 지는 많은 일들 가운데

보람을 느끼는 일들을 종종 경험합니다.

 

나는 청년시절, 전도사 시절,

그리고 부교역자의 아내로서의 시절을 지나 오면서

많은 봉사와 사역을 감당했었습니다.

 

큰 행사들과 대외적 행사의 총괄을 담당 했었고

십여명의 주일학교를 육십명이 넘게 성장 시키기도 하였으며

몇번의 강의도 했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그것을 보람으로 여겼습다,

많은 사람들이 대화를 하고 싶어하였고

삶의 문제들을 가지고 와서 상담을 요청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과정에서 느끼는 보람이라는 감정은

너무나 자기 중심적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보람을 느낀 다는 것은

자기가 한 일이나 말에 대하여 돌아오는

좋은 결과에 대한 느낌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보람을 느끼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끌어 올리는 것이며

보람된 일을 추구하는 것은

자신의 감정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제자들이 보고 분하여 가로되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이것을 많은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제자들이 보고 분하여 하는 말을 들어보라

얼마나 합리적이고 타당성이 있는 말인가

우리세대의 생각으로도 매우 보람있는 일에 쓰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여자가 나에게

좋은 일을 하였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보람있는 일이라 할 지라도

그것이 예수님께도 좋은 일은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다시 말하면

보람있는 일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요구를 추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요구는

때로 보람을 느끼게 하는 일 일수도 있지만

전혀 보람을 느낄 수 없는 일 일수도 있습니다.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외쳐 가로되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대소하고 굵은 베옷을 입은지라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노하여...

 

요나의 심기가 매우 불편하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요구대로 행하는 모든 것이

우리에게 보람으로 다가오지는 않는 다는

단적인 예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요구와 뜻을 행할 때에

그것이 우리의 생각으로는 이치에 맞지 않을 수도 있고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것에 촛점을 맞추어 나아가다 보면

자칫 하나님의 의도하심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악한 영은 우리의 마음에

보람이라는 달콤한 감정으로 분별력을 흐리게 합니다.

 

"봐라 !

이것이 얼마나 보람있는 일인가!!!!"

 

우리는 보람이 있는 가 없는 가로

우리의 사역과 일을 구분하지 말고,

또한 보람있는 일은 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할 거야 라는 확신으로 좇아 가지 말고,

정말 하나님의 요구가 무엇인지

하나님의 의도하심이 무엇인지

잠잠히 서서 기다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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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

 

교회에서 환영받고 목회자가 좋아하는 성도란

열심있는 성도입니다.

 

오라고 하면 열심히 오고,

하라고 하면 열심히 하고,

무엇을 맡겨 주든지 죽을 둥 살 둥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하는 성도는

목회자에겐 가장 든든한 오른팔 일 것입니다....

 

나 또한 지나온 날들을 보면

우직하여 꾀를 부릴 줄 몰라

내 몸의 적정 컨디션을 생각지 아니하고

늘 수위를 넘쳐 열심으로 봉사를 하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열심이 사실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는 지 살펴 보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여기에서의 열심은 교회에서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본질이 사라지고

즉 예배가 사라지고 프로그램만 넘쳐나는 교회....

이것이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결국 주님을 교회 밖으로 내어 쫓는 꼴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주님이 계시지 않은 교회에서

먹고 마시며 즐거운 노래로 흥에 겨운 열심이

넘쳐나는 우리의 모습이 아닌 가!!!!!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

 

내가 이 도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사도바울은 자신을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오히려 예수믿는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였다고 합니다.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이 말씀에서 보듯이

우리는 우리의 열심이

어디에서 출발하였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죽기 까지 열심을 다하여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그것은 헛것이며

그 열심으로 오히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가 교회에서 무엇을 하고

어떤 사역을 하는 가는 중요한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내 중심에서 출발한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에게서 출발한 것인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열심을 내되 하나님의 요구와

하나님의 뜻에 열심을 내어야 할 것입니다.

 

열심을 내어 달려가다가 방향을 잃으면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위험한 곳으로

나 뿐만 아니라 나로 인하여 주변의 사람들까지도

이끌고 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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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영은 은밀한 덫을 사용하여

아주 조금씩 우리의 궤도를 하나님께로 부터 벗어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눈앞으로 다가온 주님의 재림을 알고 있는 악한 영들이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만한 21세기 선악과를 우리에게 제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무나 교묘하여

정신 차리지 아니하면 분별할 수 없을만큼

위장된 진리이며

우리로 하여금

즐겁고 뿌듯한 만족을 느끼기에 충분한 것들입니다.

 

내 마음에 흡족하다고 하여도,

내 마음에 기쁨이 된다고 하여도,

내 마음에 보람으로 다가온다고 하여도,

내 주변의 100%의 지지를 받는다고 하여도,

내 상식과 일반적 상식에서 결단코 벗어나지 않는 합당한 일이라 할지라도

내 안에서 출발한 것은 악한 것입니다.

 

무엇을 결정하고

무엇을 행하든

그것은 하나님의 요구이어야 하며
하나님으로 부터 출발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알기 위하여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무릎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달란트의 비유를 기억하세요.

달란트의 비유는

일을 하지 않음으로 책망받은 것이 아니고

하라 한 것을 하지 않았음으로 책망 받은 것입니다.

 

많은 일을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우리는

이 생각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하라 하심에 하고

하나님의 하지 말라 하심에 하지 않는

분별력있는 열심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또한 당신은

자신의 지식과 경험과 인격을 믿지 마십시오.

 

어느누구도 스스로 선할 수 없으며

어느누구도 스스로 진리안에 설 수 없음 이니

 

이는 결단코 주님으로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악한 영이 쳐놓은 은밀한 덫을 분별하여야 합니다.

그 덫에 걸려 우리의 시간을 낭비할 겨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랑되신 주님이 천사의 나팔소리와 함께

신부된 우리를 찾으러 곧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 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지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그 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 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날에 너희 주가 임할 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신부

출처 :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
글쓴이 : 랑별파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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