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부인이란...
우리는 외부의 사건과 관계
그리고 타인의 말에 의하여 마음에 자극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자극을 인하여 나타나는 우리의 반응...
화, 분노, 미움, 격동, 시기,
질투, 다툼, 억울함,
원통함,저주 등등등.......
분명 그리스도인 임에도
우리는 이러한 반응들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한다는 것은 성령을 받았다는 증거이고
삶에서 또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향기를 드러내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일면 마음을 빼앗기며 요동하며
마음을 휘둘리는 삶을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완벽하게 주님의 심장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과 반응과 마음의 움직임이
철저하게 주님의 생각과 반응과 마음의 움직임으로 채워져야 하며
성령님의 통치와 영향력 아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외부의 사건과 관계 그리고 타인의 말에 의하여
우리의 마음이 빼앗기거나 요동하며 휘둘리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주님의 심장안으로 완벽하게 들어갈 수 있는가?
그것은 자기부인입니다.
자기 부인이라는 말은 내려놓음이라는 말로도 많이 쓰이는 데
사도바울은 자기부인을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사도 바울은 자신이 죽었다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없다 라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자기 부인의 실천적 삶을 살 것인가?
우리가 주님의 심장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내가 죽어야 하는데 그 방법이 무엇인가?
가장 우선 되어져야 할 일은
내가 악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선택하든지,
무엇을 생각 하든지,
어떤 반응을 보이든지,
내 안에서 출발되어진 것은 악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는 성인이 되어서부터 관계되어진 많은 사람들 가운데
자신의 결정이나 생각이 잘못되었다거나
자신이 틀렸다라고 인정하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자신이 악하다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누구든지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과 말과 생각에 대하여
늘 정당한 이유가 있었으며
그로인하여 당연하다는 면죄부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악하다 하셨으며
우리의 중심에서 출발한 모든 생각은
늘 주님의 생각과 반대되는 것들 뿐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생각해 보았는가?
내가 정말 하나님 앞에 옳은가?
내 생각이 옳은 가?
내 행동이 옳은 가?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요구인가 아니면 내 욕망인가?
이제껏 하나님 뜻이라고 행하던 모든 것들이 정말 하나님 뜻인가?
우리는 우리의 악함을 포장할 만한
정당한 사유를 수천가지는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언제든지 우리의 행동과 생각과 마음에 대하여
변명할 꺼리를 차곡 차곡 모아두고
즉시 즉시 우리를 정당화 하며 마음껏 악함을 분출하며 살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악함을 인정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방법 만이 주님의 심장으로 들어가는 길이며
주님의 심장으로 들어가야만
주님의 보혈이 우리 안에 가득 부어질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는 마음을 빼앗기거나
요동하거나 사단에게 휘둘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단에게 마음을 빼앗기면
사단은 우리를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일 수가 있습니다.
결국 사단의 종노릇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끔직한 결과를 낳는지
성경을 통해서 잘 알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보면서 이렇게 느낍니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하고....
두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믿었고 결국 사단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만 것입니다.
그 때에 열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주거늘.....
.........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예수님의 돈궤를 맡았던 가룟유다는 왜 예수님을 팔 생각을 했을까
그의 정죄됨을 보고....라는 말을 미루어
아마도 예수를 팔아도 죄가 없는 것 때문에
풀려날 것이라 생각 했을 수도 있습니다.
제자중 하나로써 예수를 잡아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감이러라.....
물질에 대한 한없는 욕심이 결국
예수님을 팔고자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고
사단은 그를 예수님을 파는 자로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 때를 살고 있는 우리는
주님의 심장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주님의 보혈이 콸 콸 솟아 우리의 마음에 가득 채워져야 하며
그 보혈이 온 지면에 흘러 넘쳐야 합니다.
주님의 요구를 귀 기울여 들어보세요.
거룩을 요구하시며
진리안에 거하기를 요구하십니다.
경건의 자리에 이르기를 요구하십니다.
그것이 내 힘으로는 결단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주님의 심장 안으로 들어가는 길 뿐입니다.
주님의 심장으로 들어가는 길은.....
우리 자신의 악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의 생각과 마음과 행동과 결정과 선택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과 반대 되어 있는 지를 인정하는 것이고
내 중심에서 시작된 것들이 틀렸다는 것을 100%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예수님을 다시금 십자가에 못박는 결과에 이를 수 있으며
우리가 스스로의 마음에 기쁘고 합당한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너무나 가증한 것 일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돌아보아야 하며
나의 악함과 연약함과 내 중심의 죄악됨을 100% 인정해야 합니다.
나는 스스로를 정케 할 수 없으며
어떤 방법으로도 거룩케 할 수 없는 것을 100% 인정해야 합니다.
내 안에서 퍼올리는 생각과 판단은 어떤 것도 옳지 않음을 인정하며
오직 주님만이 옳으시며
주님만이 선하시다는 것을 100%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주님의 심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주님의 심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악함을 인정해야만........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