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복음성가에 대해 이따금씩 너무 편견을 가지시는 분들이 적잖이 있습니다.
요즘 젊은세대는 경계를 무론하고 음율이 좋으면 좋은대로 차별 또는 분별없이 사탄의 음악에서부터 모티브가 되는 찬송가의 리메이크된 복음성가까지 마음이 가는대로 듣습니다.
그러나 정작 찬송가는 잘 듣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기성세대중 연로하신 분들의 상당 수가 찬송가만 듣기 때문에 복음성가의 깊은 묵상을 등한시하여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은혜를 누리지 못합니다.
한 기성세대 중 연로하신 분의 말에 따르면 음정이 시끄러워서이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합니다.
어떤 맨션에 육십이 이제 넘은 한 장로님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부터인지 날마다 아침 저녁으로 옆집에서 잘은 들리지 않지만 염불하는 소리가 들리길래 처음엔 열심히 그 사람의 현재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앞으로 그 사람을 전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기를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오히려 더욱 우렁차고 힘있게 흘러나왔고 마침내 참다참다 못한 장로님이 옆집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족히 팔십은 넘어보이는 눈썹까지 백발인 노인 한분이 나오십니다.
그래서 장로님은 잠시 분을 삭이고 이때다 싶어 정중히 인사를 하며 자신이 옆집에 사는 아무개인데 시간이 되시면 인사라도 하려고 왔다고 말했습니다.
노인은 흔쾌히 들어오라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이고 장로님이 안으로 들어가십니다.
그러자 이 노인분의 거실에 작은 탁자위로 장로님의 방안에 있는 작은 티비만큼 큰 성경과 함께 구불구불한 글씨로 씌여진 성경만큼 두꺼운 책이 펼쳐져 있습니다.
영문을 모르는 장로님과 노인이 몇시간을 시간가는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고 장로님이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합니다.
노인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과거에 자신이 신학교에서 평생을 교수로 재임을 하던중 나이 오십이 못되어 암으로 부인과 사별을 하고 나이가 들어 교수직을 사임한 후 벗들과 자식들은 모두 세상을 떠나고 이제 이렇게 자택에서 홀로 히브리어와 헬라어에 음율을 넣어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하는 것이 낙이 되어 아침과 저녁으로 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 위 이야기는 실재가 아닌 창작글입니다.)
위 이야기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원래 사람의 뇌는 나이가 들 수록 자신에게 불필요하다는 선입견을 가지면 세상의 모든 소리가 잡음으로 들립니다.
어린세대들도 크게 다르지 않은 마찬가지로 간혹 찬송가는 `따위`에 지나지 않기도 합니다.
사람이 이렇습니다.
단지 작은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일정부분 하나님께 무관심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음악으로 따지면 찬송가가 으뜸이고 다음이 복음성가인 것이 분명하지만 그 외(사탄적인 음악을 제외하는 테두리 안)에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고 하나님의 귀로 듣는 모든 것이 하나님앞에 영광됨을 잊어버리는 사람이 되는 것은 어찌보면 어떤 한 부분에 있어서는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받은 은혜가 구원인 것처럼...
찬양의 사역을 명 받은 분들도 하나님께 받은 것인데 한 두가지 찬양사역자의 잘못을 봤다하여 훼방하고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폄훼하는 것과 복음성가 전체를 나쁘게 여기는 것은 자신이 받은 은혜 또한 하나님께 받은 것임을 그렇게 여기는 것과 매한가지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일은 비단(非但) 음악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삶에서 공평치 못한 자신의 판단 때문에
모든 자신에게 공평하게 돌아가야 할 은혜를
뭐든 누리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지나치게 분별하려다 불필요한 `죄`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혼탁하지는 말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의(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모든 은혜는 누리라고 있고 이 누림이 사람을 감사함까지 이르게 하며,
이렇게 감사함에 이름이 풍성해지고 강성해질 때 하나님앞에 영광이 됩니다.
준 찬송가로써의 가사를 음미하시기 바랍니다.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때에 그가 베 에봇을
입었더라.
And David danced before Yehowah with all his
might; and David was girded with a linen ephod.
ודוד מכרכר בכל־עז לפני יהוה ודוד חגור אפוד בד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함성과
나팔 소리와 함께 여호와의 법궤를
메어 오니라.
So David and all the house of Israel brought up
the Ark of Yehowah with shouting and with the
sound of the trumpet.
ודוד וכל־בית יסראל מעלים את־ארון יהוה בתרועה
ובקול שׁופר
여호와의 법궤가 다윗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저를 업신여기니라.
And as the Ark of Yehowah came into the City of
David, Michal, Saul's daughter, looked through a
window and saw King David leaping and
dancing before Yehowah; and she despised him
in her heart.
והיה ארון יהוה בא עיר דוד ומיכל בת־שׁאול נשׁקפה
בעד החלון ותרא את־המלך דוד מפזז ומכרכר לפני
יהוה ותבז לו בלבה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말하되
“이스라엘의 왕이 오늘날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마치 비천한 자가 수치도 모르고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종들의 계집종들 눈 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하니
Then David returned to bless his household. And
Michal the daughter of Saul came out to meet
David and said, "How glorious was the king of
Israel today, who uncovered himself today in the
eyes of the handmaids of his servants, as one of
the vain fellows shamelessly uncovereth himself!"
וישׁב דוד לברך את־ביתו ותצא מיכל בת־שׁאול לקראת
דוד ותאמר מה־נכבד היום מלך יסראל אשׁר נגלה היום
לעיני אמהות עבדיו כהגלות נגלות אחד הרקים
○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자식이 없으니라.
Therefore Michal the daughter of Saul had no
child to the day of her death.
ולמיכל בת־שׁאול לא־היה לה ילד עד יום מותה
(삼하 6:14~16, 20, 23)
이것은 또한
필자가 찬양사역자는 아니어도 찬송가와 복음성가라 하는 CCM을 게시할 때,
구태여 일일히 악보를 함께 올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