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믿는 것과 행함(순종)과의 상관관계
사도행전 2:21을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만으로는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마태복음 7:21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하신 말씀처럼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는 구원받을 조건을
완전히 만족시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0:10를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
곧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 사람이라야 입으로 구주를 시인하여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에 믿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야고보서 2:14을 보면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했습니다.
마음에 믿어 의에 이르는 사람에게는 어찌하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는 행함이 반드시 따릅니다.
생명 주신 하나님과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므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시게 하지 않기 원하며 자연히 죄를 버려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의 사랑을 진심으로 믿으면
형제를 자신의 몸같이 사랑하게 됩니다.
미워하고 시기하고 판단정죄하고
자기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고 희생하며 구제하는 등의 행함으로
믿음의 증거를 내보이는 것입니다.
로마서 3:28에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진리를 행한다 해도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 아닐 때는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을 믿기 때문에 마음이 거룩하게 변화되고
그래서 행함도 거룩한 마음을 따라 온전한 행함으로 나와져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마음에 믿는다는 것은
거룩한 행함이 나올 수 있는 거룩한 마음을 이루는 것,
곧 마음의 할례를 이뤄가는 것을 의미하게 됩니다.
이렇게 마음에 믿으므로
마음의 할례를 해 나가는 사람이 말씀대로 행하면서
입으로 주의 이름을 시인할 때
바로 그런 사람에게 구원이 임하는 것이지요.
만약 이런 말씀의 짝들을 알지 못할 때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시인하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거나
"마음에 믿기만 하면 여전히 죄 가운데 살아도 구원받는다" 하는 등
진리를 잘못 알게 됩니다.
그러니 믿는다 하면서도
여전히 죄를 범하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멸망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하나의 구절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기 위해서는
그에 해당하는 말씀의 짝을 알아
온전한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야 하는 것이지요.
요한복음 6:53에 보면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구세주이심을 알고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머리로 안다 해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만 영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 인자의 살 곧 하나님의 말씀을 잘 양식삼을 때
진리의 마음으로 채워져
사람이 육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양식을 먹으며 동시에 수분을 섭취해야 합니다.
만약 건조한 음식만 먹고 수분을 전혀 섭취하지 않는다면
소화가 제대로 될 리가 없고 수분이 없이는 생명을 유지할 수도 없지요.
물이 있어야 영양소가 소화, 흡수되며 불필요한 노폐물과 독소가 배출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하신 말씀처럼
인자의 살을 먹어서 온전히 양식삼으려면
반드시 음료인 인자의 피를 마셔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인자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행해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자의 살을 먹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삼는 것입니다.
어린 양을 먹을 때는 불에 구워먹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을 때도
성령의 감동함 속에서 깊은 영적인 의미를 깨우치고
마음에 양식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듣고 읽어서 지식으로 쌓을 뿐 아니라
말씀이 마음에 온전히 임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양식을 삼는다는 것과
지식으로만 담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머리에 기억된 것은 잊어버릴 수도 있고
진리를 지식적으로 안다고 해서
그대로 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암송할 때도
입술로만 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영적인 의미를 되새기면서 묵상하며 마음에 양식삼은 것은 어떠합니까?
우리 삶 가운데 행함으로 나올 뿐 아니라
세월이 지나 정확한 성경 구절은 잊어버린다 해도
마음에 일궈진 내용은 그대로 남아 있지요.
예를 들어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 5:44)
하신 말씀을 안다고 해서
원수가 악을 행하고 자신을 핍박할 때 말씀대로 상대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머리로만 알고 마음에 이루지 않았다면
감정이 상하고 상대가 미워지며 심지어 악을 악으로 갚게 되는 경우도 있지요.
그러나 "사랑하라"는 말씀을 마음에 양식삼은 사람은
이 말씀이 몇장 몇절에 있는지는 잊어버렸다 해도
상대가 악을 행할 때 저절로 사랑과 긍휼이 우러납니다.
이렇게 인자의 살을 양식삼아 가면
비진리로 물든 까만 마음이 점점 하얀 마음으로 변하게 됩니다.
사랑과 온유함을 양식삼으면
미움과 혈기가 빠져나가고 겸손을 양식삼으면 교만이 빠져나갑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는 전혀 죄와 악이 없는 진리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의 범죄 이후로 비진리를 마음에 받아들이게 되었고
비진리가 들어오는 만큼 원래 있던 진리는 빠져나갔지요.
이제 인자의 살을 먹고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삼아가면
진리가 마음에 채워지며 반대로 비진리가 빠져나가는 것입니다.
2. 인자의 살을 잘 양식삼기 위해서는 인자의 피를 마시는 것이 병행되어야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삼으려면
사람의 힘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성령의 감동함을 통해 말씀을 깨달을 뿐 아니라
불같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받아야 하지요.
그러면서 꼭 필요한 것이 있는데,
바로 말씀을 믿고 그대로 지켜 행하는 자신의 노력입니다.
이러한 행함이 바로 인자의 피를 마시는 과정인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묵상하며
말씀을 이루고자 기도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무엇 무엇을 "지키라", "버리라", "하라", "하지 말라" 하신 성경 말씀들을
하나하나 지켜 행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으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가 없고
자신이 직접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하면
보고 들은 지식적인 믿음에서 더 나아가지를 못합니다.
야고보서 2:22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한 대로
들은 말씀을 지켜 행할 때 그 행함을 통해 영적인 믿음이 쌓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처음부터 큰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지요.
처음에는 겨자씨만한 작은 믿음이라도 행함으로 내보일 때
하나님께서는 믿음대로 은혜를 체험하게 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나면
그로 인해 더 큰 믿음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셨으니
여러분이 미워하던 사람이라도 용서하고
믿음으로 상대를 사랑하는 행함을 보일 때
마음에 사랑이 임하게 됩니다.
이처럼 범사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행해 나갈 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며,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마음에 양식삼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 성령을 받고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다 해도
행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오랜 시간 신앙생활을 한다 할지라도
영적인 체험을 할 수가 없고 마음이 변화되기도 어렵지요.
그러다가 자칫하면 그 작은 믿음조차 빼앗겨 구원과도 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요한일서 1:6-7에 보면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말씀하신 것입니다.
정말 믿는다면 반드시 행함이 따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이 땅에서도 들어오나 나가나 축복을 받고
장차 하늘에서도 너무나 영광스러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약속하셨지요.
또한 범사에 믿음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면 어떤 문제도 해결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진정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반드시 말씀대로 행하게 됩니다.
만약 부산의 바닷가 어느 지점에 가면 수억 원어치의 보물이 묻혀 있는데
서울에 있는 사람에게 걸어서 그 보물을 가져가라고 했다고 합시다.
정말 보물이 있고 자신이 가질 수 있다고 확신한다면
누구나 몇 날 며칠을 걸어서라도 보물을 가지러 갈 것입니다.
반면 그 말을 믿지 않는다면 가지 않겠지요.
마찬가지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고
입술로는 고백하지만
마음에는 온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에
여전히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영적인 믿음이 있어야만 구원받을 수도 있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여
응답과 축복 가운데 살아갈 수도 있음을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받는다'는 말씀의 의미
로마서 10:13에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했습니다.
이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하신 하나님의 한량없는 사랑을 나타내는 구절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곧 죄 가운데 사는 사람이라도
입술로 주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자신의 죄를 정당화 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결코 불법을 행하는 사람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구절이 아니며,
하나님의 말씀은 짝이 있으므로 앞뒤의 문맥을 살펴서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앞에 있는 9-10절을 보면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
무조건 주의 이름을 부르고 입으로 주를 시인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믿어 의에 이르는 사람이 입술로 시인할 때 구원에 이른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마음에 믿어 의에 이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로마서 2:13에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정녕 마음에 믿으면
반드시 말씀대로 행하게 되며,
그렇게 행할 때 의롭다 하심을 받아 의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음에 믿어 의에 이른 사람이
입술로 주를 시인할 때 구원에 이르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눅 18:8)”고 하셨던 것처럼
오늘날은 죄와 불법이 성하여져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이 되었습니다.
농부가 추수할 때 알곡만 거둬들이고 쭉정이는 불에 살라버리듯이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쭉정이들보다 한 명의 알곡이 더 중요하고
알곡만 천국이라는 창고에 거둬들이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마 3:12).
열심히 기도하며 말씀대로 행하여
육체의 소욕을 버리고 성령의 소욕을 좇아나가
성령으로 영을 낳아서
예수님의 마음인 진실 자체,
즉 온 영으로 장성해 나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살전 5:23).
만일 죄를 버리도록 누군가 깨우쳐 주지 않는다면
무엇이 죄인지조차 모르고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가다가
결국 구원받을 수 없는 쭉정이 신자가 되기 십상입니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마 3:12)
하나님께서는 알곡을 원하시기에
그의 자녀들이 참된 알곡으로 변화되기를 원하심으로
아담과 그 후손들인 인류를 통해
오늘도 인간 경작의 역사를 펼치고 있습니다.
신앙인이라면 과연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말씀대로 살아가는 알곡인지 아니면
세상을 사랑하여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속에
죄와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는 쭉정이인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합니다.
알곡은
영원한 생명을 얻어 천국에 갈 수 있지만,
쭉정이는
영원한 지옥 불에 들어가 영생을 고통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갔을 때 다 같은 장소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의 믿음과 행함에 따라
처소가 다르고 영광이 다르다는 것을 성경은 곳곳에 명시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부활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데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고전 15:41) 고 하였습니다.
이 땅에서 각 사람의 행함에 따라
어떤 사람은 해의 영광을, 어떤 사람은 달의 영광을,
어떤 사람은 별의 영광을, 어떤 사람은 별과 별의 영광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 14:15)고 말씀하셨습니다.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하라는 것은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으며,
버리라는 것은 버리고,
지키라는 것은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계명에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십계명을 비롯하여
무엇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 하는 계명들이 많이 있지요.
예를 들면 '사랑하라, 감사하라, 기도하라, 안식일(주일)을 지키라,
죄를 버리라, 미워하지 말라'등의 계명들을 총칭하여 율법이라 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계명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바로 공의로운 영계의 법칙이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13에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하였고,
갈라디아서 6:7-8에도
"스스로 속이지 말라 !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하였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심은 대로 거두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는
공의를 기준으로 모든 것을 다스리십니다.
즉 죄를 지으면
벌을 받고 사망에 이르며,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선하게 살면 생명과 영광을 얻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요한일서 5:3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말씀하시며 계명들을 지켜야 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행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요한일서 3:21-22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요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고 말씀하심으로
무엇이든지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나타내고 계십니다.
또 잠8:13를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고 하였고,
뎃전 5:22에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하였듯,
마음 중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죽도록 충성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여 빛 가운데 행하는 사람은
주님의 마음을 닮은 영의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으며,
온 집에 충성하는 온 영의 사람이 되면
새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위의 구절에서처럼
우리가 어떻게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거룩해질 수 있는 것일까요?
이것은 인간이기에 불가능한 일일까요?
막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 하시니
딤전 4: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위의 구절에서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우리가 거룩해지는 것이 가능하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롬2:6-8
그 분께서는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시리니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으로 하시고
당을 짓고 진리에 복종하지 아니하며 불의에 복종하는 자들에게는
분개와 진노로 하시리라
샤론의 백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