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美대선 누가 대통령 되든 '北 레짐체인지' 옵션 채택할 것"
문화일보 이미숙 기자 입력 2016.10.14. 11:35 수정 2016.10.14. 12:10
美 대표적 ‘북한通’ 김영진 조지워싱턴대 명예교수
김영진 조지워싱턴대 명예교수는 북한과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미국의 대표적인 아시아통 원로학자다. 1973년 북한을 처음 방문한 이후 지난 40여 년간 북한 인사들과 교류하며 북한의 변화상을 관찰해온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의 노력 덕분에 한·미 양국은 북한에 대한 판단 오류를 줄일 수 있었고, 북한 또한 그를 통해 변화하는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신중한 자세로 남·북한 및 주변 국가의 주요 인사들에게 정직한 조언을 해주는 자문가로도 유명하다. 한국 출신 재미학자로서 북한과 교류를 지속해오면서도 항상 북한에 대한 객관적인 자세를 견지해 한 번도 ‘친북 인사’로 불렸던 적이 없다. 그런 그가 지난 10일 숭실대 숭실평화통일연구원이 주최한 국제학술대회 주제 발표에서 “미국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든 차기 행정부는 북한 레짐체인지(regime change·체제교체)를 옵션으로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혀 주변을 놀라게 했다. 12일과 13일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만나 그가 보는 위기의 한반도 현황과 해법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숭실대 국제학술대회에서 ‘북한의 핵·미사일프로그램과 미국의 정책 대안’을 발표하면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강화, 석유 및 천연가스 대북 수출금지, 국제금융기구의 대북 압박 필요성을 말하며 미국 정부가 북한 레짐체인지를 실행하는 문제를 제기해 주목을 받았는데.
“미국의 새 행정부가 언젠가는 이 같은 선택을 검토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북한의 핵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미국 정부가 앞으로 이런 문제를 고심해 대응책으로 그런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을 얘기한 것이다.”
―발표 내용 중에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작년에 북한 레짐체인지의 필요성을 얘기했다는 대목이 있는데.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1월 미국 언론인들과의 공개적인 대화 자리에서 ‘북한의 비핵화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 레짐체인지밖에 없다’고 명백하게 얘기했다. 대통령이 그런 인식을 갖고 있으니 어느 누구도 대통령한테 북한과 대화하자는 제안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발언을 접하고 북한 측 인사들은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하고 대화할 의지가 없는 게 확실하다”며 비판했다. 진지하게 협상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데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아 이제 너무 늦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최근 들어 북한 레짐체인지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는가.
“박 대통령이 북한 레짐체인지를 공공연하게 얘기하면서 점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박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아마도 정말 북한 붕괴가 가까운 시일 내에 가능하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러지 않으면 저렇게 말하기 힘들다. 또 하나는 한국 정부가 미국과 단짝이 되려는 것 같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최근 발언을 보면 미국과 일심동체가 되어 북한을 압박하려는 것 같다. 이건 리스크를 각오하겠다는 것이다. 놀라운 건 브루킹스연구소에서 최근 나온 정책보고서에서 미국 대선을 앞두고 ‘새 정부는 레짐체인지를 철저하게 하라’는 부분이 나온다. 그에 따른 리스크로는 미·중관계 악화와 한국의 피해 가능성이 제기되는데 ‘한국은 그런 리스크를 각오하고라도 지금이 찬스라고 보고 있다’고 돼 있다. 그런데 그 리스크가 간단한 게 아니다. 내가 보기에 김정은 북한노동당 위원장(이하 김정은)은 전면 전쟁을 할 준비가 안 돼 있다고 인식하는 것 같다. 자기들이 얼마나 부족하고 후진적이라는 걸 알고 있다. 비밀서류에 그런 내용이 나온다.”
―김정은 관련 비밀서류라는 게 무엇인가.
“일본 정보당국이 작년에 북한에서 1만2000페이지에 이르는 북한군의 비밀서류를 입수했다. 거기엔 김정은이 언제 어디서 누구와 대화했는지 모두 나와 있다. 일본과 미국의 정보기관에서 일한 전문가들이 그것을 분석하고 있는데 그 안에 놀라운 사실이 많다. 북한군이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과도 얼마나 전쟁할 준비가 안 돼 있는지 잘 드러나 있다. 무기도 옛날 것이다. 그에 대해 (북한의) 일선 군인들이 불평하는데 누가 언제 어디서 불평했는지 모두 기록이 돼 김정은에게 보고서가 올라간다. 거기엔 이런 내용도 있다. 전선에 나간 군인들이 먹을 게 없자 한 중대장이 마을에 가서 음식을 훔쳐왔다는 내용이 기술되고, 그 문제에 대해 김정은이 누구 앞에서 언제 어떻게 얘기했는지 나와 있다. 미국과 일본 전문가들이 검토해서 진짜라고 판단했다. 그 분석보고서가 내달 일본에서 출판 예정이라고 들었다. 몇 달 전에 그 사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NHK에서 방영됐다.”
―미국이 북한 레짐체인지를 공식 정책으로 추진하지 못하는 것은 리스크가 크기 때문인데.
“미국이 레짐체인지를 추진하지 못하는 이유는 한국에 피해가 막심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싱크탱크들은 정책보고서에서 ‘북한이 지금과 같은 핵개발 등을 계속한다면, 미국은 대북 선제공격 옵션을 검토할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북한도 미국이 자신들을 선제공격하려는 움직임이 있을 때 ‘남조선은 물론이고 오키나와(沖繩) 주일미군들을 치겠다’는 말을 공공연히 해왔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무력 공격할 조짐을 보이는 순간 한국을 공격하겠다는 것이다.”
―현 단계에서 북한을 레짐체인지해야 한다는 한·미 양측 입장은 거의 같다고 보는 것인가.
“나는 지금 한·미 양측 입장이 거의 같다고 본다. 지금 미국 인사들도 북핵 해결방법은 레짐체인지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뿐만 아니라 주변 실무 담당자들도 다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야 비핵화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다고 본다. 그러나 미국과 한국의 입장이 다른 부분도 있다. 지금 미국과 북한이 서로 한 치도 양보하지 않고 대립하는데 이럴 경우 북한은 더 도발하려 할 것이고 갈등은 더 고조될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결국 남북 군사 충돌로 비화될 수도 있다. 이것은 미국이 원하는 상황이 아니다. 상황이 그렇게까지 되면 미국이 북한과 대화하기 위해 한국을 압박할 수도 있고, 그럴 경우 한국은 그냥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 입장이 곤란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현재는 대북압박론과 레짐체인지를 주장하더라도 ‘플랜B’로 대화 국면으로 선회 시 미국에 제안할 것을 미리 준비해 놓아야 한다. 두 개의 카드를 다 준비해놓고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레짐체인지에 대해 한·미 양국이 한목소리로 얘기하고 있지만 한국은 정말 레짐체인지로 북한을 변화시키려는 것 같고 미국은 레짐체인지와 고강도 대북제재를 하면서 협상으로 끌어내려는 것 같다.
“단기적으로 한·미 양국은 북한 레짐체인지 등을 주장하며 강하게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박근혜정부는 정말 북한이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미국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레짐체인지가) 그렇게 간단할까’ 하는 약간의 회의가 있다. 지금 박근혜정부 입장에서는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보수를 결집해야 하기 때문에 진짜 타격하지 않더라도 북핵 강경 대응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중요할 거다.”
―미국이 결국은 북한과 대화와 협상을 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인데.
“당분간 북·미 간 대화 재개는 안 될 것이다. 북·미 양쪽 다 기본입장이 있어서 둘 다 원하지만 못한다. 그런 상황에서 우발적 충돌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선 한국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야당 측에서 대북 쌀 지원안을 내놓은 데 대해 일축하면서 북한 레짐체인지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지금은 그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내년 대선에서 정권을 재창출하려면 보수층을 결집하고 중도층을 끌어들여야 하는데 그것을 위해서라도 박 대통령의 주장은 타당한 게 사실이다.”
―우발적 충돌을 피하기 위해 한국정부가 노력해야 한다고 했는데 향후 남북관계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는가.
“앞으로 남북 긴장관계가 상당히 오래 지속될 것이다. 워낙 상황이 심각한 상태라 북한은 물론 미국도 사실 제재 중에도 대화채널을 열어놓길 바라고 있다. 미국도 북한도 공개적으로 시도를 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에선 북한이 미국과 대화를 원치 않는다고 분석하는데 이건 정확하지 않다.”
―어떤 의미에서 그렇다는 얘기인가.
“북한은 미국과 대화를 원한다. 그런데 그 협상은 미국이 자국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 상태에서 북·미 간에 평화협상과 군축협상을 하자는 거다. 그래서 내가 북한 사람들에게 ‘그렇게 대화를 원하면서 왜 워싱턴을 칠 수 있다고 함부로 주장하는 것이냐, 그런 상황에서 미국이 대화에 응하겠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북측 인사들은 ‘국내 사정상 이유가 있다’며 말을 흐리더라.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김정은은 아직 북한 군부를 다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북측 인사들이 ‘북한이 대화에 나올 수 있도록 미국이 명분을 줘야 한다’는 식의 얘기를 하는 것 같다. 북한도 출구가 있어야 나가지, 지금처럼 엄격한 제재와 레짐체인지 주장이 나오는 상황에서는 회담에 응할 명분이 없다는 것이 북측의 주장이다. 북한의 대남선전문건이나 발표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면 항상 조건이 달린다. 그건 국내 정치 때문에도 무조건 달아야 한다고 하더라. 작년에 유엔총회에서 리용호 북한 외무상의 연설에도 미국이 한국과의 공동 군사연습을 그만두라는 조건이 달려있다. 그것에 대해 내가 ‘그런 조건은 수용 불가능한 것’이라고 했더니 ‘그걸 없애란 게 아니라, 당분간이라도 중단하라는 것’이라고 말하더라. 그렇게라도 성의를 보이면 북한도 핵실험 모라토리엄 선언 등을 할 수도 있다는 얘기로 들렸다. 북측 인사들이 내게 ‘미국은 우리가 좀 나아갈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말을 했다. 그래서 ‘당신들 행동이 미국을 그렇게 만든 것’이라고 답했다.”
―김정은은 올 들어 핵실험을 2차례나 하고 탄도미사일 발사를 10여 차례 했는데 왜 그런 행보를 보인다고 생각하는가.
“국내 장악력이 그만큼 낮다고 지도부가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미국에 대적한다는 사실을 과시하려는 것이다. 북한이 원하는 건 한마디로 미국에 대해 ‘세컨드 스트라이크’(핵 반격)를 할 능력을 갖는 것이다. 자기네는 2년 안에 가능하다고 한다. 미국의 군 고위층에서는 이미 북한이 그런 능력을 가졌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외교 실패로 보일 것을 우려해서인지 북한이 아직 그런 능력을 갖지 못했다고 보고 있다. 김정은에게 세컨드 스트라이크가 절실한 이유는 한국과 어느 정도 충돌이 있어도 감히 미국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미국 도시가 희생되는 걸 감수하면서까지 한국을 보호하려 하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북한 체제는 얼마나 버틸 것으로 보는가.
“앞서 말한 비밀서류를 보면 그 체제가 오래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 1만2000장이 김정은 시대의 서류다.”
―대북제재가 성공하려면 중국의 협조가 긴요한데 중국이 북핵 문제 해결에 협력하도록 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중국은 북한이 반드시 존속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김정은 체제가 무너지는 건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중국의 국익에 필수적이기 때문에 북한은 존속해야 한다는 게 기본입장이다. 미군이 압록강 부근까지 진출하면 곤란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중국이 북한 핵문제 해결에 협력해주길 원한다면 미국은 대만에 대한 태도를 고쳐야 한다. 좀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중국이 대만을 어떻게 하든 놔둬야 한다.”
―북한 문제를 대만 문제와 연결지어 해결하자는 구상인데.
“그렇다. 미국은 앞으로 대만에 대한 무기 수출, 판매를 줄이겠다고 중국과 합의한 문서가 있다. 미국이 지금 대만에 무기 판매를 확대하는 건 미·중 간의 합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대만에 대한 무기판매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야당과 진보진영에서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한·미 동맹에 치우치기보다 중국과 우호적으로 지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어떻게 보는가.
“그건 몰라서 하는 소리다. 외교의 대원칙 상 중국이 한국을 배려하는 정도는 한국이 미국, 일본과 얼마나 가까운지에 정비례한다. 미국과의 관계가 강할수록 한국의 발언권은 더 강해지고 중국이 더 신경을 쓴다. 중국은 주머니 속에 들어온 한국을 배려해 줄 리 없다. 중국, 러시아 등에 다니면서 오랜 경험을 통해 얻은 결론이다.”
―이명박정부때 체결 직전까지 갔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에 있어 박근혜정부가 주저하고 있는데.
“북한의 위협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한국은 일본과 군사정보를 교환해야 한다. 지금 국내 반발이 강하더라도 한국 안보를 위해선 해야 한다. 미국도 한국의 협조가 절실히 필요하다. 미국으로선 상당한 대북 정보를 가지고 있지만 한국 인사들만큼 우리말 언어를 이해하기 힘들어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 한국 정보기관이 도와야 하는 부분인 것이다. 그건 한국 안보에도 긴요하다. 북한이 지금 무슨 준비를 하고 있는지, 무슨 조짐이 있는지 미국 정부가 즉각 안 알려준다. 큰 문제가 터져야만 얘기해준다. 한국 안보에 큰 구멍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에 대한 정서적 반감은 극복해야 하며, 일본과 군사정보는 공유해야 한다.”
―위안부 최종 합의 이후 한·일 관계가 호전될 것으로 기대됐는데, 여전히 답보상태다. 현 단계의 한·일 관계를 어떻게 보는가.
“작년만 하더라도 도쿄(東京)에서 혐한(嫌韓) 시위가 잦았지만 일본 내에서도 지금 한국에 대한 태도가 완화됐다. 한국은 일본은 물론 미국에도 중요한 나라다. 미·일 관계가 악화되지 않도록 한국이 주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한국 위상이 이전과 다르다. 오래전 국제회의에 나가면 미국 측 인사들은 ‘솔직히 우리에게 한국이 중요한 이유는 일본 사람들이 한국을 중요하게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젠 일본과 관계없이도 미국에 한국이 긴요하다. 따라서 미국은 일본의 의도와 관계없이 한국과 관계를 강화할 거다. 중국이 자꾸 크는 가운데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이 커지는 거다. 그러니까 중국도 한국에 민감한 거다.”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시대에 미·일 동맹이 한층 격상하는 기류인데 향후 미·일 관계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일본에 가면 신간 서적을 보러 늘 서점에 간다. 지금 중·일 관계에 대한 책이 홍수같이 일본에 범람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에 대한 일본의 불신론도 뜨겁다. 일본 신문사에서 열리는 토론회에도 참석해봤다. 요즘 일본사회의 관심은 미·중 관계의 장래에 쏠려있다. 그것이 일본에 어떤 영향을 줄지 굉장히 민감해져 있다. 그런 현상은 결국 미국에 대한 불신론이 점차 커지는 기류로 볼 수 있다. 일본이 핵무장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는데 이런 논의가 정부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얘기가 아니다.”
―일본이 핵무장으로 갈 것으로 보는가.
“과거 일본의 주요 인사들을 만나 물어봤는데 가능성이 있다고 보더라. 단, 조건은 한국이 핵무장을 하면 일본도 반드시 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북한의 핵개발이 고도화되면서 자체 핵무장론이 제기되고 있는데 미국 정부가 이를 용인할 것으로 보는가.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케이토연구소 등에서는 북한이 핵개발을 지속하는 상황에서 미국은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케이토연구소의 덕 밴도 연구원 등은 주한미군 철수, 한·일 핵무장 용인 등을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현시점에서 반대한다.”
―박근혜정부는 임기 1년여를 남겨두고 어떤 외교정책을 취해야 하나.
“미국과 중국, 일본, 북한이 얽힌 교착지점에서 한국이 할 수 있는 선택지에 대해 재작년부터 얘기를 해왔다. 외교적 이니셔티브를 쥐기 위해선 한국이 추상적인 신뢰 프로세스 등을 말하는 대신 동북아 전체의 평화와 안보, 경제 개발에 관한 정부 차원의 고위급 회의를 제안할 필요가 있다.”
―사실상 정지된 6자회담 재개에 집착하지 말고 새로운 정부 간 다자회의를 만들라는 말씀인가.
“그렇다. 처음엔 차관급 레벨부터 시작해 각국이 돌아가면서 하다 보면 평양에서 할 때쯤 장관 레벨로 격상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미국의 고위급 인사가 김정은과 만날 수 있는 공개적인 모멘텀이 생긴다. 지금 근본적 문제는 북한의 어느 레벨과 얘기해봤자 김정은한테 정확하게 얘기가 전달되지 않는다는 거다. 미국의 진짜 생각, 무엇을 양보해줄 수 있는지 아닌지 얘기해도 김정은에게 전달이 안 된다. 왜냐면 지금 누가 김정은에게 직언할 수 있나? 없다. 그런 분위기가 안 된다. 내가 얘기한 방법대로 하면 리셉션도 있을 거고 악수하고 밥 먹을 때도 있을 거다. 그럴 때 아주 핵심적인 미국의 조건, 미국의 보상에 대해 다 얘기해주라는 것이다. 그럼 기회가 있다고 본다. 그렇게 함으로써 동북아회담이란 테두리 안에서 양자회담도 할 수 있고 3자, 4자회담도 가능하다. 그럼 미국도 상·하원의 비판을 듣지 않고 정부 간 레벨 논의가 가능해진다.”
―한국이 그런 것을 제안한다 해도 북한이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데.
“한국이 아무리 노력해도 지금은 북한이 호응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미국이 북한의 핵 위협이 커질수록 무력 공격을 하거나 극적으로 대화를 하거나, 둘 중 하나다. 그런데 후자의 가능성이 더 크다. 지금 상황에서 미국이 대화를 개시한다면 한국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다. 대화에 대비해 우리의 조건을 미국에 주지시키고 공조를 해야 한다. 현 단계에선 미국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 박 대통령과 사이가 좋을 것이고, 의회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니 지금 그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지금 한국 입장을 주지시켜 주는 게 한국의 장래를 위해 중요하다.”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등이 고립주의 주장을 펴면서 대중적인 바람을 일으켰는데 한·미 동맹에 미칠 영향은 어느 정도 된다고 보는가.
“민주당의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 측근들은 고립주의로의 선회 가능성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클린턴은 원래 국제주의자이고 외교적으로 강경론자다. 그러나 이번 선거를 통해 클린턴도 고립주의적인 국민 정서의 변화를 절감했을 거다. 또 세계화 때문에 경제적 불이익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유권자들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반대하는 것도 클린턴에게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러나 클린턴의 측근들, 그리고 그에게 정보를 올리는 기관들은 여전히 국제주의, 동맹주의적 조언을 하고 있다. 많은 정치 전문가들은 클린턴이 당선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트럼프의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고 신중하게 덧붙여 얘기하는 수준이다. 또 트럼프가 진짜 대통령이 되더라도 방대한 미국의 관료조직에 부딪혀 입장이 변화될 수밖에 없다.”
인터뷰 = 이미숙 국제부장 musel@munhwa.com
정리 = 손고운 기자 songon1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