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적 행위와 순종의 차이-새벽 시간 성령께서 주신 말씀
지금 한국교회뿐만 아니라
서구의 교회에서 만연하고 있는 값싼 은혜의 교리는
주로 바울 서신을 잘못 해석하는 데서 기인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동등함을 취하지 않으시고
종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사 대속 죄물이 되셨습니다.
율법하에서는 우리가 구원에 이르기가 불가능하기에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유월절의 흠 없는 어린 양으로
우리에서 보내셔서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가 구원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후서3:16에서 경고하신 일이
이 땅에서 일어나 4복음서 보다도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더 붙잡는 현상이
만연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서신을 받은 사람들은
이미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해 4복음서의 내용을
삶에서 실천하고 있었던 사람들로서
바울은 이들에게 실족하지 말고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벗어나지 말 것을
부탁하는 것입니다.
4복음서 대신 바울 서신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4복음서가 교과서라면 바울서신은
4복음서의 해설서 또는 참고서라고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그러니 4복음서 대신 해설서만 공부한다면
당연히 예수님의 가르침에 이를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새벽 성령께서 비춰주신 본론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던 중 성령께서
'실천과 순종'이라는 단어를 주셨습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쓰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7:21-22)
바울 서신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은
여기서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것'
즉, '실천'을 '율법적 행위'라고 규정하며
우리가 절대로 율법적 행위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 새벽 성령께서 주신 감동은
여기서 말하는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것'은
율법적 행위가 아니라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통해서 즉 내안의 성령님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행하라고 명하신 것을 실천하는 것은
순종이지 율법적 행위가 아닙니다.
따라서 4복음서를 실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성령을 받지 아니한 사람의
지식적인 지적일 뿐이며
순종이란 영적 현상도 지식적으로 이해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령님이 없으므로
진정한 의미의 순종을 모르는 것입니다.
성령받은 자의 순종을 자기 모습의 기준으로 재단하려니
남도 그럴 것이라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도 없이
내 스스로의 의지로 애써서
우리가 아무리 많은 봉사를 하고
선한 것을 하는 것은 헛된 행위가 맞습니다.
또한
전에 성령님으로부터 은사와 은혜를 받았더라도
삶에서 주님께 순종하지 않는다면
결코 좁은 문 좁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을 주신 성령님의 사랑을 찬미합니다.
깨달음과 나눔을 허락하신 여호와 엘샤다이 나의 하나님,
나의 신랑, 나의 성령님을 경배합니다.
부족한 종을 통하여
사람들을 옳은 데로 인도하시길 원하시는
성령 하나님께
세세토록 나라와 영광과 권세가 있나이다. 아멘!
(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