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양 한경직 목사(1902.12.29 - 2000.04.19)의 생애와 사상
한경직 목사는 선교를 통해 수많은 기독교인을 양육하였을 뿐 아니라 여러 교육기관과 사회봉사기관을 설립하여 교육자로서 또 사회봉사자로서 사회복지에 기여하였으며, 국가의 위기시에는 우리 사회의 갈 길을 제시함으로써 사회 현실에 큰 관심을 기울이기도 하였다.
일찍이 기독교를 받아들인 그 지역에서 그는 어려서부터 기독교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그 당시 이미 그곳에 세워진 자작교회와 초대 선교사의 한 분인 마포삼열 목사가 설립한 진광학교가 어린 한경직에게 기독교와 선진지식을 배우게 한 터전이 되었다. 진광학교를 졸업한 후 한경직 목사는 평북정주의 오산학교에 입학한다.
청년 한경직의 학구열은 숭실대학에서의 면학만으로는 충족되지 않았으며 또 그를 아끼던 스승들도 온 힘을 기울여 그에게 유학의 길을 열어 주었다.
특히 역사, 철학, 심리학에 관심을 가졌다. 이 학교에서 문학사 학위를 받은 후 계획대로 프린스톤신학교에 가서 신학을 공부하였다. 이곳에서 그는 그가 평생동안 설교한 성서중심의 복음주의적 신학을 확립하였다. 프린스톤신학을 마친 후 그는 뜻하지 않은 병을 앓는다. 예일대학으로 가서 박사학위를 위한 공부를 계속하려던 그의 꿈은 그 당시에는 쉽사리 고칠 수 없었던 폐결핵으로 좌절되어 버린다. 뉴멕시코의 한 요양원에서 요양하는 동안 그는 개인적인 야망을 벗어 던지고. 목회와 봉사의 길을 택할 것을 서약한다. 이에 따라 그는 병이 치유되자 곧 귀국하여 민족에 대한 봉사를 시작한다.
선진 지식을 쌓은 한경직 목사는 교육을 통해 민족에 봉사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일본 경찰은 그의 사상을 의심하여 그가 숭실대학의 교단에 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목회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으며 첫 목회지는 신의주 제2교회였다.
일제의 철수에 따른 치안 공백을 메우기 위해 그는 일본인 지사의 요청을 받아들여 평안북도 지역의 치안을 담당하기도 했고 또 민주사회의 건설을 위해 기독교 사회민주당을 조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는 정치적 야심에서가 아니었고 단지 건국의 틀이 민주주의적이어야 한다는 소박한 일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런데 소련군의 진주와 더불어 내려진 그에 대한 체포령은 그를 월남하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그의 일생의 사역은 역시 목회자의 사명인 양육과 선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영락교회의 강단을 통해 수많은 성도들을 영적으로 양육하였으며 또 온갖 경로를 통해 한국인과 세계인에게 선교의 메시지를 전했다. 학원, 군, 농촌, 도시공장지대, 그 외의 모든 그늘진 곳 그리고 해외 등 그의 선교의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어림잡아 그는 이 지구상에 약 500여 교회를 세웠다.
그는 영락교회와 교계 그리고 사회에 크게 기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은퇴 후 영락교회가 마련한 남한산성의 조그만 외딴 집에 기거해 왔으며 6평 남짓한 그의 방에서 기도로 그의 여생을 보내왔다. 그가 남긴 것은 오직 그의 양육과 선교의 열매요 그의 기도를 통해 드러난 우리 교계와 민족의 소망 뿐이라 하겠다.
B. 신학 사상의 배경
한경직 목사에게 있어서 신학과 설교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다. 그는 모든 사상을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시켜 이해하고 있다. 즉, 삶의 기준이 예수님 자신이요 그의 가르침의 행위이다. 한경직 목사는 이러한 내용들을 집약하는 표현으로 “ 그리스도 중심 ” 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한경직 목사는 근본적으로 성경에 나타나는 십자가에 대한 바울의 이해를 하고 있다. 그러므로 바울과 같은 마음으로 십자가를 신앙의 눈으로, 그리고 그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의 통합적인 조망에서 이루어지며, 그 핵심은 십자가의 사건에 있다.
여러분 십자가를 무심히 바라보지 맙시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와 같이 내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섬기려 하고, 자기의 목숨을 많은 사람 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라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생명을 대신 바쳐서 우리의 죄를 구원하여 주신 분입니다.
2) 섬김의 그리스도
한경직 목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것을 통해 솔선수범을 강조한다. 그래서 그에게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는 확신이 있었고, 이 사랑의 종교가 갖고 있는 사랑의 복음은 널리 전파되어져야 하고, 또 그 사랑의 복음은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구체화 되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이들이 발을 씻어주신 그 분입니다. 그런 이가 사실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입 니다. 우리는 그런 이들을 존경할 줄 알아야 합니다. 참 위대함의 표준은 겸손과 봉 사에 있습니다.
십자가 고난 뒤에는 반드시 부활의 아침이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섬김의 주로서의 모습 뒤에는 영광과 승리의 주의 모습이 감추어져 있다. 그는 설교에서 수난의 메시야를 분명히 보아야 할 뿐 아니라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 영원히 살아 계셔서 동행하시는 주님을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기독교는 부활의 능력으로 생겨났고, 또 부활의 능력이 없을 때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사라진 것이고, 이는 교회가 아름다움을 상실했을 때를 가리킨다고 하겠다.
한경직 목사는 이론적 신학보다는 성경적이면서도, 신앙생활 속에서 강조하는 사상을 견지한다. 즉 성경의 그리스도를 깊이 알고, 믿고, 따르자는 것을 강조한다. 그는 성경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한 적이 있고, 십자가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핵심이라고 말하였으니 과연 그가 말하는 복음주의 신앙 내지는 성경적 신앙, 중심이 바로 선 신앙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의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복음주의적 에큐메니칼 신앙을 추론하게 한다. 예수 그 자체를 믿을 것을, 의지할 것을, 따를 것을 강조한다.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무 의심 없이 절대적인 신뢰를 갖고 따르라는 것이다. 다음의 글에서 한경직 목사의 그리스도론의 핵심을 다시 한 번 명확하게 들을 수 있다.
C. 신앙윤리
한경직 목사의 신앙윤리의 출발점은 십계명 강해 중 하나님에 관한 전반부 해설 부분에서 가장확실하게 나타난다. 그는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제일 계명으로부터 해설을 시작하면서 그것을 “우리 신앙의 이론적 근거”로 생각한다. 그는 이 계명이 우리의 신앙을 시작하는 근거라고 증거하고 있다. 한경직 목사는 제일 계명을 출발점으로 삼으면서 하나님을 믿는 것을 먼저 내세우고 있다. 막 11:22절과 히11:6절을 들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신앙의 제 일조 입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것을 따르면 믿는 믿음은 섬기는 실천으로 완성되는 것을 보임으로써 윤리적 사건의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계속해서 제이 계명인 “우상을 섬기지 말라”를 시작으로 제삼,제사 계명은 제일 계명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이것은 모두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경건을 나타내는 해석으로 보여진다. 한경직 목사는 하나님 한분 외에 우상을 만들지 말고, 하나님만을 예배하며, 이름을 헛되이 사용하지 말고 그분만을 경외라고 가르치며, 동시에 선을 행하고, 병자를 고치며 불쌍한 사람을 돕는 실천적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기독교 윤리학에서 이해하는 인간은 요약하여 하나님을 위한 인간과 다른 사람을 위한 인간이다. 한경직 목사에 인간 이해는 철저히 성서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한경직 목사는 우선 인간을 죄인으로 본다. 성경의 말씀을 따라 사람을 죄인으로 보기 때문에 윤리적 행위의 주체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드러낸다.
한경직 목사는 윤리를 말함으로써 인간이해를 전제로 하고 있다. 즉 인간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스스로 있는 존재(存在)가 아니고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이 세상에 나게 된 존재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재이다. 이 하나님의 형상이란 뜻은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며, 하나님의 형상을 인간의 영혼으로 이해 하면서 영혼이 불멸하다고 믿는다. 정리하면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으므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이성과 양심, 도덕성, 그리고 특별히 인간에게만 있는 영혼이라고 하는 불멸의 요소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케 된 거듭난 존재의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 요약하면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고 행동하는 자이며, 이것을 일면 이웃에 대한 봉사의 형태로도 나타날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는 선한 청지기이다. 한경직 목사는 인간이 존재하는 최고의 목적이 다른데 있지 않음을 말한다.
한경직 목사는 이 세상은 파괴되어 가는 세상이고, 부패한 행위로 가득찬 세상이며 죽은 세상, 썩어져 가는 세상, 냄새나는 세상으로 이해 되었다. 이러한 세상은 방지되어야 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경직 목사는 영락교회 창립 10주년을 맞아 “拾周年의 恩寵”이라는 글을 통해 사회 봉사적 사명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한경직 목사는 사회는 빛과 소금이 필요한 것이므로 기독교인이 그 역할을 하라는 것이었다. 세상이 어둡기 때문에 빛이 필요하고 죽었기 때문에 소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장 근본적인 가치는 생명인데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보전하는가 하는 것일 것이다. 한경직 목사는 이 생명은 하나님께 속해 있기 때문에 존귀하고 신성하다는 것이다. 특히 이 생명은 영원히 사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사실은 생명을 도덕적인 면에 연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생명의 길을 보면서 새로운 가치의 전환을 촉구하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자고 설교한다. 이 가치를 고려하면서 한경직 목사는 자유를 강조한다. 이 자유는 인간의 기본 권리로 본다. 그리고 한경직 목사는 자유를 평등과 연결시켜 이해한다. 즉 자유로운 인간은 평등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별히 한경직 목사는 영적 자유에 대해 강조한다. 영적 자유는 인간이 죄로부터 먼저 자유롭게 된 것을 의미한다. 또한 자유를 진리와 연결시켜 이해하고 있다. 이 진리로서 자유롭게 되는데 이 진리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유는 네 가지 책임을 따른다고 말한다. 첫째, 자유의 책임은 그 자유를 바로 쓸 책임이고, 둘째, 성장과 발전의 책임이고, 셋째, 봉사의 책임이고, 넷째, 자유수호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이 모두는 윤리적 성격을 확실히 띠고 있다.
한경직 목사는 노동의 개념을 성경에서 네 가지로 정리한다. 1) 일과 노동은 인간의 천직 또는 천부의 의무이다. 2) 일과 노동은 신성한다. 3)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하고 정의의 대우를 요구한다. 4) 모든 일과 노동을 하나님과 동사(同事)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하라. 한경직 목사는 일한다는 말을 구체적으로 “땅을 정복하라”와 “모든 움직이는 것들을 다스리라”고 두 가지로 지적한다. 정복하라는 것은 무력이나 폭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당하고 섬기고 죽임을 당하는 데까지 나가 속죄양 또는 고난의 종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다. 둘째로 일이 신성하다는 것은 눈가림만을 하지 말고, 성실한 마음으로 일하고, 주께 하듯 하며, 맡은 일을 옳게 성실하게 부지런하게 바로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셋째로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서는 노동의 정당한 요구를 강조하면서 네 가지로 말한다. ① 노동을 하고 대가를 받는 것은 권리이다. ② 노동을 하고 대가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③ 노동을 하고 대가를 받을 때 정당한 삯을 받아야 한다 ④ 노동을 하고 대가를 받을 때 제때에 받아야 한다. 넷째로 모든 일은 하나님과 동사하고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는 것은 노동의 성격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하나님과 동역한다는 의미를 구체적으로 세 가지로 말한다.① 일하는 사람이 할 것을 하면 즉 인간이 책임을 먼저 이행하면 하나님께서 도와 주신다는 것이다. ② 일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바로 깨달아 하나님의 법대로 따라야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는 것이다. ③ 일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과 경륜을 바로 깨달아서 그때 그때 꼭 할 일을 바로 해야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는 것이다.
1) 국 가
한경직 목사는 기독교적 이상의 국가를 건국하되 유물론적 지배하는 나라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의 확신을 가지고 건국의 ‘머릿돌’로 기독교 이상을 지적한 그는 국법도 제정도 하나님의 법을 따라야 할 것을 말하고 기독교 신앙으로 국가가 초석이 되야함을 주장하였다. 한경직 목사는 교회는 국가의 정신적 기초이며 국가는 교회의 기초위에서 살아나고 활동하는 형식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 신앙이 민주국가의 요소로서 첫째는 개인 존중의 관념철저, 둘째는 정당한 평등의 관심, 셋째는 정당한 자유의 관념, 넷째는 질서와 법의 존중사상이며, 다섯째는 자유를 바로 쓸 수 있는 국민의 도덕적 품격의 형성인데 모두 기독교 신앙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국가에 대한 기본적 요소인 ①민주주의 근본사상인 인간의 존엄, 자유, 평등사상 ② 질서와 법의 존중사상 ③자유를 바로 쓸 수 있는 국민의 도덕적 품격, 이 세 가지의 정신적 배경이 성경과 기독교 사상에서 왔다고 말하고 있다.
2) 정 치
한경직 목사는 정치윤리에 있어서 세 가지 틀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민주주의를 위한 정신적 기초를 말하면서 그 요소는 개인 존중 개념, 정당한 평등의 관념, 정당한 자유의 관념, 질서와 법의 존중사상, 자유를 강조한다. 한경직 목사는 철저히 독재국가나 전체주의 국가를 반대하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모든 사람들은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함을 말한다.
둘째는 도덕정치를 말하면서 모든 정치인들은 덕과 신의와 의리와 도덕적 품성을 가져야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사람됨을 강조하면서 주님의 성품을 닮아서 민주국가를 건설하는데 기여하려고 한 것이다.
셋째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정치로서 그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자류로 인도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즉 자유를 지키기 위하여 법과 질서를 존중해야 하고, 적은 부패와 부정이라고 기억하고 삼가야 한다는 것이다.
3) 신앙과 애국
신앙은 애국심의 원천이며 결국 애국심으로 승화된다는 것이다. 그는 진정한 애국은 조국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요. 조국에 그리스도를 통한 새 사람 운동을 일으키는 것이요, 조국을 신앙의 터 위에 세우는 것으로 믿었다. 또 한편, 우리가 참된 신앙에 더 깊이 들어갈수록 민족에 대한 사랑도 더해 간다고 믿었다. 기독교 신앙은 균형 잡힌 애국자를 만들어 낸다. 애국사상은 나라와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경직 목사는 공산주의에 대해서 이론적으로도 실제로 나타나는 현상으로도 신랄하게 비판하는 입장이다. 공산주의는 비 성서적이고 비 신앙적인 요소로 구성되었음을 지적한다. 그래서 그는 공산주의의 사상을 유도하는 악한 구호를 지적하는데 그것을 정리하면, ① 이중인격을 가지라(거짓말하라) ②다른 계급은 모조리 숙청하라(강도, 강탈을 감행하라) ③무자비한 투쟁을 하라(테러, 살인, 방화 무엇이나 좋다) 이다. 이같은 악한 사상은 오래가지 않아 쇠퇴하고 멸절될 것을 기독교 2000년의 산 경험을 통하여 확신한다고 말하였다. 통일관에 있어서도 그는 민주 통일을 강조한다. 그 어떤 통일도 용납될 수 없음을 확실히 말하면서 자유 민주주의에로의 통일이라는 분명한 입장을 보여준다.
경제 생활에 있어서 한경직 목사는 국산품 애용, 막걸리, 담배 피우는 것을 비난하면서 검소하고 절제된 생활을 강조한다. 사유 재산을 인정하면서도 분배의 정의를 말한다. 이런 속에서 한경직 목사는 경제 생활의 관계되는 원칙들을 발견한다. 첫째로 믿는 자들은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는 것이며, 둘째로 믿는 자들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믿고 실천해야 한다. 셋째로 믿는 자들은 천국의 법칙과 그 정의가 우리 사회에 실현되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로 믿는 자들은 자족의 비결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다섯째로 믿는 자들은 탐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목표는 ①진리수호의 사명 ②민족교화 곧 복음전파의 사명 ③사회봉사의 사명 이었다. 여기서 영락교회의 목표는 전도, 교육, 봉사로서 신앙의 노선을 네 가지로 본다. 첫째, 성경중심의 복음주의적 신앙, 둘째, 청교도적인 생활훈련, 셋째, 에큐메니칼 정신, 넷째, 올바른 사회봉사와 사회 참여를 강조한다. 사회봉사는 자선, 교육, 문화사업으로서 기도원, 성경구락부등을 건축하였고, 보이스카웃, 교회 안 보건실 등을 만들었다. 한경직 목사는 교회생활을 “거룩한 공회”와“성도의 교통”에서 이끌어 내면서 이것이 공교회 전체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같은 한경직 목사의 교회 생활은 곧 기독교 윤리학적으로 보면 통체성과 유기체성을 동시에 살린 생명의 보존 양식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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