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머리로 사랑하는 자와
가슴으로 사랑하는 자의 차이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와
말로만 주님을 사랑하는 자의 차이는
그의 순종의 열매(행함)로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주님을 믿는 크리스찬이라면
누가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라 하기 전에
스스로 지킬 것이지만
예수님을 사랑하지도 않고
지식으로만 성경을 배운 종교적인 신앙인들은
자신도 계명을 지키지 않을 뿐더러
남의 행함을 율법적 행위라고 손가락질합니다.
누군가를 정말 열렬히 사랑한다면,
그리고 그 사랑하는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 지 알고 있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은 더 열심히 행하고
싫어하는 일은 끊어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증오하는 지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이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며
그 분의 은혜를 이해함으로써
저절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같은 행위를 하더라도
예수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이 바탕이 된 것이 아니라
그저 성경에서 하라고 하니까 한다면
결과는 정반대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이나 물으신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 세번의 물음은, 물론 말로 세번 예수님을 배신한
죄책감 빠져 침체된 베드로를 회복시키려는 의도도 있지만,
지식적으로, 입으로만 하는 형식적인 사랑이 아닌
너의 그 진심을 나에게 달라는 예수님의 애곡입니다.
누가 행함을 강조할 때
그 동기를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동기가 예수님을 위하여 목숨도 드릴 수 있는
사랑과 믿음에서 비롯되었다면
그 누구도 그를 율법주의자라고 욕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라야 순교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크리스찬들은 입으로만 순교를 합니다.
칼날이 내 목을 겨눌 때에도
주님을 시인하는 것(행함)은 주님을 향한 사랑 때문입니다.
마음에도 없으면서 하라고 하니까 마지못해 하는 것은
사랑에서 비롯된 순종이 아니라
억지로 하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순종과 행위의 차이는 그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에서 비롯된 동기인지
보이기위한 혹은 하라고 하니까 마지못해 하는 것
이 차이인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이 스며든 순종이 필요하지
사랑이 없는 형식적인 행위는 아무 의미 없는 것입니다.
전도를 하더라도 내 안의 성령님으로 인한
영혼들이 지옥가는 것을 막고자 하는 긍휼한 마음이
내 가슴을 못견디게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전도입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목사님이 하라고 하니까 하는 것은
그냥 내 노력으로 하는 단순한 행위일 뿐입니다.
봉사, 사명등 우리가 하는 모든 경우의 것들이 이와 같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동반된 가슴에서 나오는 동기인지
사랑도 없이 머리에서 나오는 형식적인 동기인지
분명히 해야합니다.
주님은 늘 이 부분을 지켜보시고 판단하십니다.
"네가 날 사랑하느냐?"
예수님의 이 물음에 답해야 합니다.
순종인지 행위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