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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구원의 확신, 어떻게 볼 것인가..

삭개오2 2016. 7. 24. 04:26

 

구원의 확신, 어떻게 볼 것인가..

 

 

 

카톨릭 교회는 사람은 누구도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사람이 도중에 영적으로 실패하면 구원을 잃게되기 때문에
아무도 천국을 확신할 수 없다고 주장 합니다.
따라서 끝까지 가봐야 자기가 구원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반해,
기독교 교회는 믿는 자가 온전히 구원을 확신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즉, 확신이 믿음의 본질이라고 주장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확신 합니까?"라고 질문하면,
상당수 카톨릭 교인들은 얼버 무리며 "하나님만 아시지"라고 답변하고,
상당수 개신교 교인들은 "믿고 확신한다"고 서슴없이 답변 합니다.

이들중 과연 누구의 말이 옳을까요?

함부로 쉽게 구원을 확신하면 영적으로 교만에 빠질 수가 있고,
구원의 확신이 없으면 얼마나 무미건조한 신앙생활이 되겠습니까.

상당수 그리스도인들이 "믿기만 하면 구원 받는다"라고 가르침을 받아왔고,
또한 이 말을 쉽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거듭나야 한다고 우리 주님은
분명히 말씀 하셨습니다.(요한복음 3장 3-7절)

다시 말해서,
가벼운 입으로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영적으로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말씀 입니다.
사람이 구원 받기 위해서는 변해야 하고 또한 변화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변화가 무엇이겠습니까?
변화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회개하고 거듭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회개하여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촉구 하였으며,
사도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여 죄없이 함을 받으라고 언급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세번 부인하고 난 다음에 통곡하며 참회하였고,
오순절 날 성령충만 받고는 그리스도를 증언하다가 로마에서
거꾸로 매달리는 십자가 형에 순교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기 위하여 지금의 시리아
다마스커스로 가던 도중에 하늘에서 번쩍이는 빛과 함께
예수님을 만난 체험후에 참회하고 그리스도를 이방나라들에게
전파하다가 로마에서 최후의 비참한 순교를 당합니다.

성경의 구약과 신약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곳곳마다 "회개하여 거듭나라"라는 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위에 오셔서 최초로 말씀하신 것이 "회개하라"였으며,
베드로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최초로 설교한 말이 "회개하라" 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많은 교회들이 "회개의 중요성"을 어린 양들에게
가르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 안에서 회개만이 사람을 변화시켜 거듭나 거룩의 길로
나아가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데도 말입니다.

사도들이 말한 회개란,
그리스도 앞에서 자기의 모든 죄를 자복하고,
앞으로 모든 죄에서 단절하고,
그리스도를 향해 온전히 돌아서는 것이며,
마음과 행동의 철저한 변화 입니다.

회개란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이 절대로 아니고
하나님이 주시는 "회개의 은혜"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께 "회개의 은혜"를 달라고
부르짖고 기도 하여야 합니다.
찾고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 하십니다.

진실된 회개는 자신을 180도 방향전환을 일으켜
"옛사람"에서 "새사람"으로 변모되어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세상과 나를 더 사랑하는 자는
아직까지 회개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진실된 회개만이 마음의 변화를 일으켜
주님의 말씀을 깨닫고 순종하며 따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죄인 한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누가복음 15장 7절)

우리가 진실된 눈물의 회개를 하여야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람은 자기 유익이나 목숨을 구하고자 하나,
주님은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사람은 자기를 최고로 만들고 싶어하나,
주님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느니라"

사람은 높아지고 싶어하나,
주님은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 지리라"

사람은 대접을 받고자 하나,
주님은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느니라"

사람은 자기를 자랑하고 싶어하나,
주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사람은 자기 욕심으로 가득하나,
주님은 "너희의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은 배부르고 웃고 싶어하나,
주님은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사람은 원수를 미워하나,
주님은 "너희의 원수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라"

사람은 시시덕 거리며 남을 의심하고 판단하기 좋아하나,
주님은 "너희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남을 판단하지 말라"

사람은 편하고 넓은 길로 가고자 하나,
주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사람은 교만해 지기 쉬우나,
주님은 "나에게서 겸손을 배우라"라는 등등.....

사람의 가치추구와 하나님의 말씀은 상당히 정반대의 길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우리의 힘으로는 절대로 하나님 뜻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야만 우리가 변화되어
성화되면서 하나님 뜻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와 심판"이라는 양면의 쌍날칼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구원하기 위해서 은혜를 주시기 원하시지만,
한편 사람들 각자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은혜를 받을만한 때에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크게 "믿음, 회개, 구원의 은혜"가 있습니다.

사람이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고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무런 은혜도
베푸시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나중에 죽어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겸손해지고 스스로 주님 앞에서 낮아지고 예수님만을 간절히
사모하고 바라보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하게될 때,
사랑이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반드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교만한 자의 편을 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여러분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위를 꿰뚫어 보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숨기고 감추려 하십니까.

솔직히 우리의 심장을 그대로 끄집어내서 예수님께 모든 것을
자복해 보십시요.
우리의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반드시 우리에게 회개의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회개의 은혜와 함께 주님 앞에서 눈물 콧물을 펑펑 쏟으며
회개해 보십시요.

진실로 회개하고 난 다음에 죄사함 받았다는 위로와 함께
마음속으로부터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행복감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회개한 후부터는 나도 놀라울 정도로 마음의 변화를 일으켜
세상것 보다는 하나님만을 더 사랑하게 됨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은 이 세상의 그 어느것과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사랑을 느껴봐야 우리는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사랑이 있기에 우리는 서서히 거룩한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거룩해서 하나님이 택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회개시켜 거듭나 거룩해지도록 도와 주면서
마침내 구원해 주기를 원하십니다.

결론적으로 볼때,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중대한 문제들 중의 하나가
바로 성화 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인이 된 때부터 죽을 때까지
우리의 삶은 영적인 완전함을 향해 항상 전진하는 변화들의 연속입니다.

지금 자기 자신의 영적인 변화는 어디쯤까지 와 있습니까?

우리는 가벼운 입으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고 착각하면서 쉽게 구원의 확신을 말할 수 있을까요.

여기에 사도 바울이 말한 내용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 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하나님은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러렀든지 그대로 향할 것이라" (빌립보서 3장 13-16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택하시고 부르신 사도 바울도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의"에 대하여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라고 말하였습니다.

이거 얼마나 겸손된 신앙의 자세입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결이 어디까지 와 있는가?

물론 성결은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것이지만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나는 날마다 내 육신을 죽이고 예수 그리스도 푯대를 향해
결코 쉬지않고 달려가노라"

이것이 가장 정확한 답변이 아닐까요.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


출처 :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
글쓴이 : 랑별파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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