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요즘 성령에 관한 글을 많이 올립니다.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우리 회원님들에게 간절히 바라고 꼭 원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교회 첨 다니기 시작할 때 무슨 의식처럼 하는 영접기도 말고
진짜 성령님을 영접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입니다.
그저 몇 분짜리 영접 기도로 성령님이 내게 오신다면
그건 성령님을 너무 모르고, 신앙을 너무 가볍게 만드는 일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성령)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마태복음 7장 7절~11절)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인간의 육을 만족시키는 복을 구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와 똑같은 말씀이 누가복음에 기록되었는데
좋은 것은 성령님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과정이 간단하리라 생각하십니까?
그런데 교회에서는 초신자를 세워놓고
단 몇 분 소요되는 영접 기도로 성령을 받았다고 선포합니다.
너무 간단합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예수님을 인정했기에 영접한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인정하는 것과 영접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거라사 군대 귀신도 예수님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인정했습니다.
그럼 그 귀신도 성령님을 영접한 것인가요?
그런데 귀신은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외칩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인정하기만 하는 것은
주님과 아무 상관 없다는 것을 귀신이 말합니다.
그(군대귀신)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막5:6-7)
분명히 해둬야 합니다.
하버드 대학이 세계 일류대학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내가 하버드 다니는 것과 인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란 것입니다.
인정하기만 하는 것과 영접하는 것은 전혀 차원 자체가 다른 말입니다.
영접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아무에게나 달라고 주시겠습니까?
성령님을 영접하기 전까지 인간의 순수한 엄청난 노력이 필요합니다.
주님이 알아서 다 하시는데 교만하게 왜 자기 노력으로 하냐고요?
오해하지 마십시오.
주님의 이끄심은 성령을 받는 시점 부터 입니다.
그 전에는 자기 노력으로 최선을 다하여 찾고 찾아야 합니다.
그냥 찾으면 되냐고요?
아닙니다.
마음이 청결하고, 심령이 가난하여 영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주십니다.
주님은 더러운 그릇에 성령님을 부어주시지 않습니다.
더러운 자의 구함은 오히려 마귀가 기뻐하고
성령으로 가장하여 그자에게 마귀가 들어갑니다.
구하는 자는 청결한 맘으로 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저의 경우를 예를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교회 오래 다녔습니다.
영접기도도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리스도인이 아닌 교인으로 다녔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내 정체성과 신앙에 대한 복잡한 생각이
내 신변의 어떤 어려움을 계기로 신앙에 대하여 고민하는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평범한 교인으로 있다가 어떤 어려움을 당한다든지
과거 누구에게 생명력 있는 복음의 말씀을 한번 스쳤다면
힘들 때 하나님을 한 번쯤 떠올리게 됩니다.
이때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더욱 알고 싶어지고
그 거룩한 호기심으로 성경을 정독으로 읽다 보면
어느 순간 하나님을 찾게 되고 구하게 되는 날이 옵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간절하게 눈물로 하나님을 구하게 되고
성령님은 응답하시어 찾아오십니다.
그 순간 엄청난 회개가 동시에 이뤄집니다.
회개는 전적으로 성령님이 하게 하시는 것인데
내 안에 더러운 오물(죄)을 청소(회개)하지 않고는
성령님이 거할 수 없기에 회개시키는 것입니다.
이제 영접이 되었으므로 이 순간부터 진짜 신앙생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내게 오시면 기계적으로 구원받을만한 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구원받을만한 환경을 만드셔서 고난과 연단으로 무르익어가게 만듭니다.
그냥 주님이 알아서 척척 성령의 9가지 열매가 나타나도록
우리에게 입력하는 게 아니고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도록 계속해서 환경을 조성하시면서 연단해 간다는 뜻입니다.
대장장이가 대충 생긴 쇠붙이를 요술 부리듯 변해라! 뚝딱! 해서
순식간에 기가막힌 연장으로 바뀌는 게 아닙니다.
뜨거운 불 속에 달궜다가 두드리고, 펴고, 담금질하고, 숫돌에 갈아
날이 잘 선 연장으로 서서히 만들어간다는 뜻입니다.
뜨거운 불 속에 넣었다가 빼서 두드리고, 펴고, 담금질하는 게
간단한 게 아닙니다.
이 과정이 신앙인에게 제일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입니다.
주님인들 고통스러워하는 내 자식을 보고 맘이 편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해야 영적인 사람으로 체질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성령님도 안 계시는데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다 하여
아무 생각 없이 죄를 지어도 죄책감도 없고, 간절히 회개할 생각도 없이
지식적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만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공로 이야기는 성령께서 함께하는 그리스도인에게만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성령님도 없이 종교생활만 하는 분이 십자가 공로와 무슨 상관입니까..
성경 말씀에 이제 십자가의 공로로
내가 죽고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신 것이라는 성경지식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힘입어 아주 강력하게 모든 것은
내 노력이 아닌 주님의 인도로 하신다고 주장합니다.
이 말씀은 백 퍼센트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귀한 말씀은 성령을 받은 분들에 해당하는 말씀이지
성령도 안 받고 지식적으로만 성경 구절을 아는 분들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말씀이라는 것을 거듭 강조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성령 받은 척 가장하는 일은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척하는 숨김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어떤 계기가 생기면 바로 들통납니다.
교회에서 혹은 믿는 사람끼리 있을 때 웃으며 온화한 표정으로 억지로 위장해도
어떤 상황이 닥치면 바로 분노하고 얼굴이 찌그러집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사람은 누구로부터 우리의 하나님이 능욕당할 때 빼고는
어느 상황에 놓이더라도 크게 분노하는 법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주님의 강력한 연단으로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가
나의 영에 잘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받지 않은 자에게
예수님이 좁은 길, 좁은 문, 십자가의 길을 가라고 하셨을까요?
성령이 없는 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면
순전히 너희들 노력으로 구원받으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그런 말이 아닙니다.
성령 받은 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순종 그 자체가 너무 힘들기에 하나님을 백 퍼센트 믿고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그게 바로 십자가의 길이요, 좁은 길이요, 좁은 문이고 고난의 길입니다.
성령이 없는 사람에게는 이 말씀은 전혀 무의미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기 전에는 육신으로 직접 동행하시면서
힘들고 힘든 좁은 길을 가라고 가르쳐 순종하라 한 것이고,
승천 후, 성령님으로 오셔서, 성령 받은 자와 직접 동행하시면서
예수님이 승천 전에 말씀하신 그 말씀은
지금 현시대를 살아가는 즉
성령과 함께하는 자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이 예수님이시라 성령 받은 자 안에서
승천 전과 똑같은 말씀을 하시거든요.
즉, 우리의 구원을 위한 것이니 힘들어도
성령님을 믿고 따라오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 성령을 받지 않았다면
예수님과 상관없는 사람이요, 이방인일 뿐입니다.
그저 육체적으로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종교활동만 하는 것이고,
머릿속에는 성경지식만 가득한 지식 주의자일 뿐
주님과는 아무 상관 없는 사람입니다.
이 말에 분노할 분이 많겠지만 안타깝게도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행하라는 그 모든 말씀은
다 성령을 받은 자들에게 순종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성령도 받지 않은 사람에게 행하라고 한다면
그거야말로 성경과 정면 위배되는 말씀입니다.
즉 자기 노력으로 천국 가라는 소리와 같은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자기 노력이 아닌 주님의 인도 하심으로
구원받으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결국, 성령을 받는 자에게만 해당된다 하는 말씀도 다시 한번 드립니다.
그래서 구원받으려면 성령을 받는 것은 당연한 수순입니다.
기도를 왜 합니까?
내 힘으로 안 되니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기 전후 기도는 누구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기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이며
성령을 받은 후에도
성령께서 나를 잘 인도해 주시고,
주님의 거룩한 뜻이 나를 통하여 잘 이뤄지게 해 달라는 기도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성령을 받으라고 하시는지 기록된 말씀을 나누면서
글을 접겠습니다.
반드시 모두 성령 받으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3장 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