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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주님의 재림이 아직은 아니라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

삭개오2 2016. 6. 22. 06:52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존경하고 사랑하는 형제요

친구요, 친구중에도 죽마고우(竹馬故友)인 서목사에게!

 

 

자네에게 다녀온후 자네에게 들었던 말,

부화태 김화성집사님이 방바닥을 치면서 오신다,오신다 했던 주님이

지금까지 않오시고 있다.는 말이 귀에서 뱅뱅돌아 견딜 수 없어서

몇 자 적는바이네.

 

1969년도 아마도 그때 당시에 교회에서나 또 구역 인도자였던 자네가

(자네 입대 직후 나도 군입대 전에 부화태 4구역 인도를 맡은적이 있었지)

주님 오심에 대한 설교를 많이 했었던 그 원망이 아니었나 싶네.

즉 주님이 오신다는 말을 초대교회에서부터 귀가 닳도록 들어 왔는데

오시지도 않은 주님이 오신다고 하는 말들이 이제는 지겨워 죽겠다,는

뜻으로 내 뱉는 원망이요, 다시는 그따위 소리는 하지말라는 뜻으로

집사님이 방바닥까지 두들겼다고 미루어 생각이 되네.

 

그때가 벌써 46년도 더 지난 일이기 때문에 아마도 그때의 김집사님은

세상을 떠나셨으리라, 생각이 되는데

이제 내가 고인이 되셨으리라 생각되는 김집사님의 말이 마음에 걸려서

붓을 든것이 아니라 그 옛날의 기억을 서목사가 나에게 했다는 것이

목에 걸렸던 것이네.

 

자네도 김집사님이 했던 말과 생각이 어느정도 같으니까

김화성 집사님이 했던 말을 나에게 하게 되었고,

오늘 자네의 목회 현장에서 주님이 오신다는 급보를 외면하고

그날그날 깨어서 예수만 잘 믿으면 된다는 오늘날 많은 목사들의

말과 동일한 말을 하고 있음이 안타까워서 자네를 만나고온후

자네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음이야.

 

자네는 학식이나, 학력이나, 믿음이나, 인물이나, 목회나, 설교나,

언변이나, 성품이나 그 외 것도 다 나보다 낫다고 생각이 되는데

오늘 이 시대를 깨우는 파숫군의 사명을 저버리고 많은 목사들처럼

그날 그날 깨어서 잘 믿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는가?

 

자네도 자녀들을 키워보아서 익히 경험을 해 보았지 않은가?

아침에 아이들이 스스로 일어나서 학교를 가기도 하였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가 깨워주어야만 겨우 일어나서

학교에 허겁지겁 늦어서 먹는둥 마는둥 갈때도 많았을거야.

요지음 엄마들의 고민이 아침에 아이들을 깨우는데 힘들다고

하는 말을 들은적이 있네

나도 지금은 사십이 넘은 자식들이 어렸을때 아침에 깨웠던

일들이 생각이 나고, 또 중학교 3학년 초등학교 6학년 손주들을

지금도 깨울때 여간 힘이 들더구먼,

 

“애야, 일어나라” 조금 있다가는

“학교 늦는다 일어나라” 그래도 조금만 더 하며 늦장을 부릴때

“통학버스 올 시간이 5분밖에 않남았다”

그러면 허겁지겁 일어나서 아침도 우유도 못마시고 신발도

거꾸로 신은채 뛰기가 일수였고,

어떤 때는 내가 직접 학교에 태워다가 주기도 한적이 많네.

 

오늘날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성도들의 모습과 학교에

가기위해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에 가는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다고

보여지네.

 

나는 1996년도 안양선교교회 개척교회 예배의 사회를 할적에

자네가 대표기도를 마칠때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라는 짧은 한 마디가 너무도 은혜로와서 지금도 잊지않고 기억한다.

그래서 나도 지금까지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마치네.

 

자네는, 기도는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해놓고,

다시 오실 예수님을 설교도 하지않고 외치지도 않는다면

얼마나 주님이 섭섭하게 여기고

자네의 목회나 삶을 주님이 가증하게 보시지 않겠는가?

 

나는 서목사가 요지음 목사들 처럼 잘 먹고, 잘 살면서 좋은차 타고

노후를 잘 준비하는 것을 목회의 성공이요, 최고의 행복으로 아는

목사들의 부류였다면 붓을 들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임이야.

 

서목사는 나를 생각하기 보다는 남을 생각하고 남을 도우려고 하고

이 땅의 행복이나 부요보다는 천국의 상급을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임이 보이기에 진심으로 기도하고 싶고 권하고 싶음이야.

 

나와는 비교할바 아닌 훌륭한 서목사가 김화성 집사님의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을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서 이 못난

친구를 통해 하나님이 깨우신다면 도구로 쓰이리라,는 생각으로

붓을 든 것이야.

 

자네 혹시 아직 급히 깨울 시간이 아니고 좀 더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절대 아닐세.

 

세상에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성경의 가장 기본적인

징조를 우선 말해보자구.

 

나라가 나라를 민족이 민족을 대적하는 문제”

지금까지 세계의 민족분규,인종 청소,등 많은 동족의 대적을

보아왔지만 우리는 같은 민족 곧 동족의 대적을 받고 있네.

 

지금까지 세계 어느 나라가 자기와 같은 동족의 머리 위에다가

세계가 금기시하는 원폭까지 쏱아 붓겠다고 공갈 협박하는 일들이

어디 일찍이 있었던가?

대적 대적 하지만 철천지 원수보듯이 우리가 이렇게 6.25이래로

까닭없는 대적을 같은 민족에게 받아온것은 지금이 성경의 예언데로

주님이 오심이 아주 가까웠다는 징조를 우리가 친히 겪고 있음이야.

 

그 외에도

지진문제, 땅끝까지 복음전파, 미혹하는 일들,등등 이 모든 일들은

우리 카페에 마지막때 징조 코너에 보면 엄청나게 많이 있네.

 

사회적으로도 자식에게 맞아죽는 부모들이 최근 5년간 통계에 보면

평균 일주일에 한 번씩 일어났다고 하고,

 

옛날 소돔에서 범람했던 동성애를 국법으로 정식 혼인으로 인정하여

동성애를 반대하면 쇠고랑을 차는 나라가 20여개의 나라라고 메스컴에

나오더군.

동성애도 모자라서 이제는 집에서 기르는 개나 고양이와 수간을 하고

이것들과 정식으로 결혼식까지 하는 사람까지 있다는 것이네.

 

8년간 함께 결혼생활(?)을 해 온 고양이와 사별한 뒤 새롭게 두 번째 남편인

개와 결혼식을 올린 네델란드의 한 여성이 화제가 되고 있다네.

이미 유럽에선 독일, 덴마크를 비롯한 몇 몇 나라들이 짐승들과의

매춘(Animal Brothels)까지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대로 간다면 짐승들과 결혼한 사람들도 이제 법적인 부부로

인정해달라는 소송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네.

언제부터인가 집안에서 기르던 ‘애완동물’들을 부부 사이에서만 사용하던

‘반려자’라는 단어에서 따온 ‘반려동물’이라고 부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아예 개, 돼지를 진짜 ‘반려자’로 삼는 사람들까지 생겨나고 있다네.

 

오랫동안 금기시되던 동성결혼의 합법화가 결국 개돼지와의 결혼도 법적으로

인정해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이는 판국이네.

이미 주님의 재림이 임박했고 지옥의 문은 열려있지 않은가?!

독일에서는 짐승과 매춘을 하는 업소가 번성하고 있다니

기가막히지 않은가!

 

나는 마지막때의 확실한 징조중에 하나로 보는 것이 적그리스도의

출현이라고 보네

 

 

데살로니가후서 2:3~4을 보면 대적하는자 불법의 사람이 나타나기

전에는 주님의 재림은 없다고 했네.

 

 

물론 적그리스도는 옛날부터 있어 왔네,

아기 예수님을 죽이고 자기의 왕위를 지키려 했던 헤롯도

적그리스도의 예표였고,

그 이후에 역사적으로 많은 적그리스도가 나타났었지,

대인을 600만명이나 죽인 히틀러도, 소련의 스탈린도,

이태리의 뭇소리니등, 북한의 김씨 일가의 사람들,

중동이나 아프리카의 독재자들도 적그리스도의 모형으로 나타나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던 것은 어디까지나 예표일 뿐이니까.

 

 

실제로 마지막때 그리스도를 대적하여 성도들을 많이 죽이어서

순교자의 숫자를 채우는데 일조를 하고 세계의 교회를 배도하도록

하는 적그리스도가 실제로 나오는 것이 요한계시록에 나와있네.

 

지금 나는 미국의 오바마를 우선 주목하여 보고 있네.

그렇다고 오바마가 적그리스도라고 단정을 짓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미국의 학교에서 성경과목을 없애고, 채플을 폐하고,

전도를 금하며, 동성애를 온 나라에 전시파키는데 공헌을 세운

것과, 오바마가 상원의원 시절에 단상에 올라가 하나님과

성경을 조롱하는 동영상을 오래전부터 우리 카페에 가지고 있네.

 

그래서 혹 오바마가 적그리스도인가?

아니면, 예수님에 대한 세례요한처럼

적그리스도의 첩경정도만을 준비하는 사람인가? 하고

주시하고 있음이야.

 

사람들은 초대교회에서부터 “마라나타”라고 말세를 말해왔다고

오늘의 마지막때를 증거하는 것을 식상해 하는데 너무도 잘못이야.

주님은 재림을 약속하시고 승천하신 이후부터 계속 마지막때를

향하여 시대가 흐르고 역사가 흘러서 오늘에까지 이르게 된것이

아닌가?

 

왜? 오늘의 시대가 주님이 오실때라고 확신하는 것은 주님이

말씀하신 모든 징조가 하나도 빠짐없이 성취되고 있는 사실을

자네도 알고 나도 알고 알만한 사람은 다~아는 것이 맞잖은가?

 

사실 자네에게 지금은 다 밝히지 못하고 있지만 때가 되면

자네에게 속 시원하게 말할 수 있을때가 있기를 기도하네.

 

나는 몇 년 전부터 요한계시록을 하루에 한 번씩 읽으면서

계시의 주체자이신 주님께서 직접 열어주시기를 기도해왔지.

주석이나 참고서를 의지하지 않고 직접 열리면 좋겠다고

사모하면서 기도하다가 응답을 받고 계시록을 많이 이해하게 되었네.

많은 곳에서 많은 부분이 막히었는데 시원하게 뚫리길 시작하였지.

내가 가장 걸린 부분은 계시록 12장의 해 입은 여자와 낳은 사내아이문제.

또 10장6절에 나오는 작은책, 또 22장17절에 “성령과 신부가 말씀

하시기를“에서 성령은 하나님이시니까 존칭어가 당연하지만

왜, 신부에게도 존칭어가 적용되었는가? 좀 궁금했었지.

 

지금 계시록에 대하여 좀 많이 알게 되었지만, 지금 나가서 설교하고

선포하는 시기가 아니라 좀 능력을 받고 권세를 입기까지 더 기도하고

있을뿐이야, 내가 우선 자네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이네.

 

앞으로 좀더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기도하며

소망하네. 내가 우리 카페에 있는 칼럼의 공간에 기초적인 것들을

좀 써놨네 읽어 보길 바라네.

 

추신~

자네도 설교한편 올려 놓았더군, 고맙게 보았고

기도중에 좋은 메시지 기대할게.

편지가 좀 길어졌지. 오늘은 여기서 줄일게. 마라나타, 아멘.

출처 : 내영혼의 마지막부흥
글쓴이 : 마지막부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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