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면 하나님을 본받은 자처럼 살라!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숭배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엡5:1-3절)
위의 말씀에 보면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은 정말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을 다 받았습니까?
그렇다면 너희는 하나님을 본 받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시는데
여러분이 하나님을 본 받았느냐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을 본받으려는 자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교회는
예수님에 대해서 머리로 배우려고만 노력하지,
진정으로 예수님을 마음과 행동으로 본받으려는 자가 많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살겠다는 예수쟁이가 아니라
그저 예수님을 (머리로) 배우겠다는 것은
성경이 말씀하는 의미와는 다른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천사의 말을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는 말씀은
내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많이 증거하고 떠들고 다녀도
내 삶에서 하나님을 본받는 삶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 능력도 없고 무익한 것입니다.
'사랑' 가운데 행하라고 하셨지
사랑을 배우라고 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드리셨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분명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우상숭배하는 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유업이 받지 못한다는 말 자체는
하나님 나라에서 내가 앉을 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내가 거할 처소가 없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누구에게 합니까?
분명히 이것은 예수를 믿는 자들을 향하여 하는 것이지
불신자들을 향하여 말하는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사
이와 같은 삶을 살라고 기록한 것이 성경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는 하지 않으면서 내 주위 사람들을 향해서는
내가 다 받기만을, 그들이 나에게 대접해 주기만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떠나가라." (딤후 3:5)
경건은 내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서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 능력을 나타내셔야
우리 안에 그리스도에 의한 경건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으로써 이해할 수 있는 삶입니까?
신적인 삶을 살았던 예수님을
우리는 결코 인간적인 것으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삶, 성령의 삶은
경건의 능력이 나타나는 영적인 삶으로 돌이켜 살지 않으면
천국엔 결코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수군수군 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역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러한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롬 1:28-32)
과연 여기에 속하지 않는 자가 얼마나 될까요?
하나님은 이런 일들을 행하는 삶을 사는 자들은
아예 사형에 해당한다고 죄목까지 정하셨는데
왜 이런 성경구절은 마음에 두지 않고 외면하느냐는 것입니다.
남이 사기치니 나도 사기친다는 식으로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사는데
그럼 사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돌이키지 않고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각사람에게 행한대로 보응하시되" (롬2:6)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결코 이의를 제기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딤전 4:1)
내가 예수 믿었다고, 구원 받았다고, 직분 가졌다고, 모태 신앙이라고 자랑해봤자
내가 세상을 향하여 고집부리는 죄들을 회개하고 끊어내지 않으면
끝내는 믿음에서 떠나 예수를 버리는 자가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는데
여기에 많은 사람들의 눈이 열려지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 외식함으로 거짓말 하는 자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냥 한번 구원 받았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구원을 위해 예수를 구주로 시인하고 믿었으니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자로써 바른 삶을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바울의 이 고백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고백이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나는 벌써 그리스도와 함께 못박혔다는 것입니다.
바울과 같은 이 고백이 우리 속에 똑같이 있어야 하는데
과연 이런 삶의 고백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십자가에 못박혔다면
절대로 나는 그 십자가에서 내려올 수 없는데,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하는 내가
못을 빼버리고 십자가에서 내려온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본 받는 것이 어렵다면 바울을 보십시오.
바울은 성경에서 예수가 육신을 덧입고 우리와 똑같이 살았지만
누구든지 예수와 같이 살 수 있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는 예수고 나는 나다"라는 식으로 묵인합니다.
우리의 삶이 낮아지고, 겸손해지고, 섬기고, 베풀며,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삶을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내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지 못하고,
거룩하고 구별된 삶을 나타내지 않고,
내 속에 더럽고 추한 것들이 꽉 찼는데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구절은
성경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정말로 내가 거룩한 성전인가?, 아니면
더럽고 추해서 하나님이 멸하실 성전인지...
자기 스스로의 영적인 상태를 점검해 보아야만 합니다.
아직도 우리에게 주님은 마지막 때까지 참고 기다리시며
말씀이 선포될 때 돌이켜 회개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바울은 너희가 정말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느냐?
그러면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말하며 우리에게 도전을 줍니다.
하나님을 본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입니다.
예수님을 본받는 자의 삶이 누굽니까?
바로 바울이요, 다른 제자들의 삶입니다.
이들은 성령의 능력과 권능에 충만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살았습니다.
땅의 것보다 하늘의 것이 추구해야
생명을 던지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더럽고 추한 것을 버리고 모든 죄를 토설하며
성령의 충만함을 채우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과 능력을 통해서 세상을 이기며
하나님을 본받는 자,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성령님의 운행하심을 따라 살 수 있는 자가 되어야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한번 구원받았다고 영원히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말씀에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말씀을 받아들여 끝내는 승리자가 되고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수 있는 모두가 되시길 부탁드립니다.
(박경진 목사)